가황중

 


1. 개요
2. 상세


1. 개요


가황중(賈黃中)은 송나라 창주(滄州) 남피(南皮) 사람. 생몰년도 941-996. 자는 왜민(媧民)이고, 가진(賈玭)의 아들이다.

2. 상세


어릴 때부터 총명해서 6살 때 과거 시험의 일종인 동자과(童子科)에 합격했다. 그리고 15살 때 후주(後周)의 진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저작랑(著作郞)과 직사관(直士館)을 역임했다. 거기다가 송나라 태조 건륭(建隆) 3년(962) 좌습유(左拾遺)가 되어 그렇게 매우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참고로 끔찍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가황중의 부모는 가황중이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고기를 먹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아동학대지만[1] 그때는 인권이고 나발이고 좆도 없었던 중세시대라서 이런 만행조차도 추억으로 넘겨버리고 되려 교훈이 되어버리는 그런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다만 가황중의 경우 지나치게 신중하여 그에 따른 일처리가 매우 늦어졌다. 그래서 황제에게 "신중한 것은 매우 좋은 태도이나, 그것이 지나치면 되려 화가 되느니라."라고 직접 충고를 해 줬을 정도. 그 증거로 개보(開寶) 8년(975) 태상예원(太常禮院)을 관장하면서 예문(禮文)을 심사하고 결정했는데, 손익이 적절하다고 평판을 들었다. 태종 순화(淳化) 2년(991) 급사중(給事中)에 오르고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 문사(文士)들을 자주 천거했지만 너무 허물을 범할까 조심했고 시론(時論)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4년(993) 단주지주(澶州知州)로 나갔다. 지도(至道, 995-997) 초에 예부시랑 겸 비서감(秘書監)에 올랐다. 일찍이 신의보구방(新醫普救方) 1천 권을 편집했다. 문집이 있다.
고사성어 소심익익(小心翼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 당연하게도 성장기인 청소년기때에는 고기 섭취를 매우 많이 해야 된다. 단백질 섭취를 많이 해야 나중에 어른이 되어 몸이 튼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