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백제 관계
[clearfix]
1. 개요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를 다루는 문서이다.
2. 역사
2.1. 초기
백제의 창업군주인 온조왕과 동명성왕의 관계는 여러 전승이 있지만, 온조가 고구려에서 왔다는 것에 대한 높은 가능성은 변치 않는다. 어쨋든, 나라가 세워진 이후 두 나라의 초창기 때는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일단 한사군이 막고 있었으며, 옥저와 동예도 위치해 건국 초기 압록강과 두만강 위쪽에 있던 고구려가 한반도 중심부에 있던 백제와 교류할 수 없었다. 백제 2대 국왕 다루왕부터 8대 국왕 고이왕까지 직접적인 교류, 충돌은 없고,[1] 제9대 국왕 책계왕 때부터 시작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대방이, 고구려의 공격을 받자 구원을 요청해[2]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온조왕 이후 접점이 없던 두 나라가 맞붙은 첫번째 기록이다. 이 사건 17년 후, 고구려 미천왕이 한사군 중 한반도 내에 남아았던 낙랑군과 대방군을 공격하여 멸망시키면서 두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갈등이 시작된다.
2.2. 중기
백제의 최전성기인 제13대 국왕 근초고왕 때, 두 나라가 전쟁을 시작한다. 고구려는 북서쪽인 요동 지방의 전연이 너무 강해 그쪽으론 영토를 넓힐 수 없어 떠오르는 백제를 공격하기로 한다. 고국원왕은 친히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치양을 기습 점령한다. 이후 벌어진 전투가 치양 전투로, 양 국간의 직접적인 물리적 충돌이 처음으로 역사에 기록된 전투이다. 이때, 고구려를 배신한 사기의 말을 듣고 백제는 붉은 깃발의 군대를 집중 타격했고, 저들이 정예 군대였는지 고구려군은 대패한다.
2년 뒤, 두 나라는 평양성에서 다시 맞붙는다. 이 전투를 평양성 전투라 일컫는다. 백제는 평양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지만, 고국원왕이 백제의 눈 먼 화살에 눈을 맞아 죽는 등 엄청난 전과를 올렸으며, 이 전투로 대동강 주변까지 영향력이 미치게 되지만, 고구려는 정복전쟁을 중단하고 피해 복구에 열중하게 된다. 이 전투 후에도 두 나라는 국경에서 계속 싸운다.
결국 광개토대왕이 즉위하자, 진사왕의 백제는 지금의 황해도와 경기 북부를 잃고, 아신왕 때는 백제가 군사를 일으킬 때마다 발렸다. 이후 (광개토대왕-)장수왕-문자명왕으로 이어지는 고구려 최전성기 때, 백제는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아직도 백제의 굴욕은 끝나지 않았는지, 21대 국왕 개로왕은 북위에 국서를 보내 고구려를 쳐달라 하다가 3년 뒤, 위례성에서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탈출하다 참수된다. 장수왕이 죽은 뒤, 고구려는 나제동맹 및 가야의 연합 격퇴에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고 거의 10년 이상 같은 지역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고구려는 중흥군주 무령왕의 등장에 현재의 고양시까지 영토가 밀리게 되었다.
2.3. 후기
나제동맹은 한강 지역 공격 이후 깨졌으나,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아니였다. 백제는 양나라와 수나라에게 고구려를 협공하자고 제안까지 했고, 고구려는 성왕 사후 불과 3개월만에 다시 백제로 쳐들어왔다.
2.3.1. 여제동맹?
7세기, 더 구체적으로는 642년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막기 위해 세워졌다는 동맹으로, 그 증거는 구당서 백제전에 있으나,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
642년 의자왕은 신라를 치는 동시에 고구려에겐 화친을 제안했고, 당항성을 공격해 신라의 사신이 당에서 원조를 구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에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나당 중 한 나라가 자신의 나라를 공격하면, 여제 중 한 나라는 나당 중 다른 나라를 공격해 앞뒤로 전쟁을 벌이는 일을 없게 하자며 맺었다고 한다. 또한, 여제동맹은 백제가 망한 660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김춘추는 백제의 공격에 도움을 청하러 고구려에 갔으나, 실패하고 돌아왔다. 여제가 동맹을 맺었다면, 김춘추는 청병 시도조차 못 했을 것이다. 또한, 여제가 동맹을 맺었다고 나온 책인, 구당서, 신당서와 삼국사기 모두 신라의 대당 외교문서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김춘추가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했다 실패한 후 여제동맹이 맺어졌을 가능성 또한 있으며 설령 동맹을 맺지 않았다고 해도 당시 백제의 영토가 신라에 감싸져있는 형태였기 때문에 고구려와 백제가 서로 싸우지 않고 신라와 싸우는 상황이었던건 같다.
학계는 신라가 나당동맹을 빨리 이루려고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2.4. 종결
삼국 중 백제가 660년 신라와 당의 공격으로 멸망하며 관계가 끊어졌고, 고구려 역시 8년 뒤 두 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하며 두 나라의 관계는 끊어졌다.
3. 관련 사건
- 여제동맹
- 삼국통일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