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제/등장인물
1. 역대 군주
춘추시대 강제의 마지막 군주. 전제의 초대 군주인 전화에 의해 낙양으로 쫓겨났다.
전제의 초대 군주. 원 역사대보다 일찍 제강공에게 제후 자리를 찬탈하고 즉위. 중원 국가들 중 맨 처음으로 조선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조선에 유학과 손자병법을 비롯한 중원의 선진문물을 전수하였다. 또한 주 천자를 통해 조선이 기자의 후손임이 확인 되었을때 이를 두고 기쁜 오산이라고 평했다.
전제의 2대째 군주. 전화의 장녀로 모략에 능한 아버지나 동생과는 달리 인덕을 갖췄다. 친조선 노선을 밟았으며 동맹국을 비롯한 인접국가들과의 도리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줘 스레민들의 호감을 산 유일한 제나라 군주. 다만 전오를 비롯한 제나라 귀족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영 눈에 차지 않았던지 결국 원 역사대로 동생인 전오에게 찬탈당했다. 다만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던 원 역사와는 달리 유폐생활[1] 을 하다가 천수를 다했는데 자신을 군후의 자리에서 쫓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전오를 원망하지 않는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였다.[2]
전제의 3대째 군주. 전화의 차녀로 인덕을 갖춘 언니와는 달리 아버지인 제태공 전화를 쏙 빼닮은 천부적인 모략가. 조선과 월이 합세한 노나라 정벌을 총지휘한 것은 물론, 송나라와 진나라를 움직이게 해서 거의 중원대전 스케일로 확장시킨 것을 시작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또한 직문을 넓혀서 인재풀을 늘리고 전기와 순우곤을 등용하는 등 제나라 전성기의 밑바탕을 닦은 명군. 다만 그 과정에서 인접국가나 동맹국을 상대로 인성질[3] 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제나라 혐성의 극을 달리기도 하였다.[4] 다만 조선과 관련해서 몇번 물먹은 적이 있는데, 조선이 제나라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위나라와 동맹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자리에서 졸도한 적도 있었으며, 조선후의 장례식과 천도 건에서 월나라의 결례 때문에 본의 아니게 제나라가 욕을 먹은 적이 있기도. 말년에는 의사를 믿지 못해 병세가 악화되어 병사했다.[5] 언니였던 전섬이 유폐되었지만 편하게 세상을 뜬 것과는 대조적.[6]
전제의 4대째 군주이자 제나라의 현 군주. 전오의 아들로 능력은 뛰어난데 너무 뛰어나서 세상만사가 지루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게으른 니트성향을 지니고 있다. 다만 능력 하나는 원 역사 답게 진퉁이라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2차 중원대전에서 한, 위, 조선과의 전후처리협상을 주도하고 제나라의 패권을 확립하였다. 전오의 뒤를 이어 제나라의 군주가 된 이후에는 규구(葵丘)[7] 에서 회맹을 열어 중원 열국의 제후들에게 패자로 추대되었다. 이후 주나라 천자로부터 정식으로 패자로 제수받음으로 제나라의 황금기를 열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제멋대로인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원 제후들을 달래고 중재하느라 팔자에도 없는 고생길이 활짝 열렸다(...) 추기와는 말이 잘 통하는 지 자주 붙어서 나온다.
진의 서하 완전 병탄 이후 조선을 참관인으로 내세워 위나라에게 요구한 조공은 철회시켰지만, 이후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조선-위 관계에 대해서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이후 초나라에 합종군을 동원해 완을 한에게 할양시키거나 진의 동진을 완에서 막아내는 등 패자로써 소위 전인제 체제를 유지했지만, 328년 낙양에서 트집을 잡아 굴욕을 줄려는 천자에게 종놈 자식이라고 욕하면서 패자 체제는 끝이 난다.[8] 이후에는 칭왕회동을 주최하거나 위나라의 내전에 관여하는 등 굵직한 일에는 참여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다 320년에 사망한다.
진의 서하 완전 병탄 이후 조선을 참관인으로 내세워 위나라에게 요구한 조공은 철회시켰지만, 이후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조선-위 관계에 대해서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이후 초나라에 합종군을 동원해 완을 한에게 할양시키거나 진의 동진을 완에서 막아내는 등 패자로써 소위 전인제 체제를 유지했지만, 328년 낙양에서 트집을 잡아 굴욕을 줄려는 천자에게 종놈 자식이라고 욕하면서 패자 체제는 끝이 난다.[8] 이후에는 칭왕회동을 주최하거나 위나라의 내전에 관여하는 등 굵직한 일에는 참여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다 320년에 사망한다.
전제의 5대 군주. 호탕한 성격과 원역사에서 제나라 전성기를 이끌고 나간 군주답게 일선에서 물러난 아버지 전인제를 대신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고 재위 초기를 잘 보냈지만, 패자 체제의 종언 이후 주변 정세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관성적으로 이어진 신뢰가 화근이 되어 푹풍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고요에서 대비를 할 거의 모든 때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산동대전 이후로 믿었던 동맹에게 나라가 반토막 나고, 수도 임치를 빼았긴데다, 곡부 전투의 패배로 자기 딸뻘에게 치욕을 당하고, 아버지가 맡겨놓은 동생들을 인질이나 희생양으로 쓰고 완전히 멘탈이 나가서 170어장 기준으로는 남자를 끼고 놀고먹는중.
죽기 전 정신을 차리고 죄책감에 동생 전영에게 사과하러 갔지만 전영이 허물이 왕의 것이라면 공적도 왕의 것이라고 격려했고 이후 전문에게 죽기 전 고밀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면 조선이 합횡 때문에 위를 경계할 것이니 제가 안전할 것이라 했는데 그 예측대로 조선은 제의 움직임을 보고 위를 의심해 한단에 전력을 집중하면서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 후 합횡과 조선의 전쟁이 벌어질 즈음 사망한다.
결국 산동대전 이후로 믿었던 동맹에게 나라가 반토막 나고, 수도 임치를 빼았긴데다, 곡부 전투의 패배로 자기 딸뻘에게 치욕을 당하고, 아버지가 맡겨놓은 동생들을 인질이나 희생양으로 쓰고 완전히 멘탈이 나가서 170어장 기준으로는 남자를 끼고 놀고먹는중.
죽기 전 정신을 차리고 죄책감에 동생 전영에게 사과하러 갔지만 전영이 허물이 왕의 것이라면 공적도 왕의 것이라고 격려했고 이후 전문에게 죽기 전 고밀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면 조선이 합횡 때문에 위를 경계할 것이니 제가 안전할 것이라 했는데 그 예측대로 조선은 제의 움직임을 보고 위를 의심해 한단에 전력을 집중하면서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 후 합횡과 조선의 전쟁이 벌어질 즈음 사망한다.
산둥 대전에서도 어떻게든 정신을 붙들어맸지만, 곡부 전투의 결과로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어머니 전벽강을 대신하여 제나라의 실세가 되었다. 그의 치세 때에는 안 그래도 법가 위주였던 조선에게 나라가 반토막 난 뒤 그녀 자신부터 법가를 이러저러한 식으로 장려하는데다 이를 백성들이 쉬이 받아들이는 등, 제나라의 기풍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돌변한 시대였다.
이후 하남대전 시점에서는 제의 왕으로 즉위한다. 그러나 하남대전에서 조선이 패한 후 3만의 군대를 이끌고 바로 순우를 공격하지만 패배, 변법으로 간신히 긁어모았던 제나라의 공세 능력이 날아가버리고 그 동안 눌려 있던 유가와 도가를 비롯한 다른 제자백가 세력들이 변법을 비난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고 내부의 불만세력의 힘을 빼기 위해 가장 위협적이었던 맹자의 명성을 떨어트리기 위해[9] 조선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보낸다.
이후 하남대전 시점에서는 제의 왕으로 즉위한다. 그러나 하남대전에서 조선이 패한 후 3만의 군대를 이끌고 바로 순우를 공격하지만 패배, 변법으로 간신히 긁어모았던 제나라의 공세 능력이 날아가버리고 그 동안 눌려 있던 유가와 도가를 비롯한 다른 제자백가 세력들이 변법을 비난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고 내부의 불만세력의 힘을 빼기 위해 가장 위협적이었던 맹자의 명성을 떨어트리기 위해[9] 조선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보낸다.
2. 공/왕족 전(田)씨
제나라의 공족인 전씨 일족의 일원. 17세의 젊은 나이로 중앙군 원수가 되어 제나라의 군권을 잡았다. 방연이 등장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출연 빈도가 올라갔는데, 원 역사대로 방연에게 물먹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그러나 2차 중원대전에서 방연을 상대로 판정승을 따낸 것을 보면 원 역사보단 나름 스펙이 올라간 듯. 추기와의 악연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이며 전인제가 추기와 가까이 하면서 슬슬 갈등이 불거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여담으로 위나라 내전 때 구원군을 이끌고 갔다가 조선의 대장군 악자와 잠깐 만난 적이 있었는데 기회만 된다면 한번 전장에서 겨뤄보고 싶다고 라이벌 플래그를 세웠나 싶었지만 악자가 먼저 세상을 뜨면서 없었던 일이 되었다. 전오 시절에 중용되면서 그녀의 파벌이 상당히 증식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본인의 아랫사람 관리 소홀로 인하여 전인제가 작정하고 시도한 감찰 결과 파벌 구성원들이 털지 않았는데도 먼지가 떨어지는 정도로 부패가 있어 이에 대한 쓴소리 또한 들었다.
대 조선 주전론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인물로, 전인제가 이를 경계하는 것을 겸해서 군통수권 등을 제한하려는 것에 반발해 쿠테타를 시도했지만 너무 비상식적인 행동이라 호응하는 병사가 없어 그대로 좌절되고 역모의 죗값을 받는다.[10]
대 조선 주전론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인물로, 전인제가 이를 경계하는 것을 겸해서 군통수권 등을 제한하려는 것에 반발해 쿠테타를 시도했지만 너무 비상식적인 행동이라 호응하는 병사가 없어 그대로 좌절되고 역모의 죗값을 받는다.[10]
- 정곽군 전영(AA:나키리 에리나)
제선왕의 동생으로 제선왕과 일부 성향 차이는 보이나 대체적으로 제선왕의 브레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산동대전 직전 광장과의 대립으로 보급을 줄이는 보복을 하였고 이후 산동대전에서 제나라가 참패하면서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난다.
- 전교사
- 맹상군 전문(AA:나에기 마코토)
정곽군 전영의 아들. 본거지인 설에서 송나라에 지원을 해주면서 명성을 얻었다. 위나라에 천거받아 상방으로 임명되기도 하는 등 잘 나갔으나 산동대전 이후 위나라의 낌새를 알아채지 못 헀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다. 제선왕 칩거 후 다시 정국의 중심에서 제나라의 브레인이 되어 이끌고 있으나 제민왕이 일방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 광장(전장, 광자) (AA: 카츠라 히나기후)
맹자를 스승으로 두고 있던 제나라의 장수. 제나라의 두 개의 칼 중 하나로 불린다. 산둥 대전에서 조선을 가장 고전시킨 장군이었으나,[11]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조선군이 지역을 장악하고 우군을 와해시키는 예상치 못하는 상황 때문에 결국 결정적인 순간 완전히 뒤를 잡혀 패배하였고, 최대한 많은 이들이 전장을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퇴로를 지키다 숨을 거둔다.
- 전반(반자) (AA: 하쿠멘)
제나라의 두 개의 칼 중 하나. 제위왕 대 제나라의 사실상 에이스로 오랜 기간 동안 대조선 방어를 맡고 있었다. 이후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여 화남대전에 연합군에 군량대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군량대 200명[12] 으로 종횡무진하며 대활약을 한다. 그러나 다리를 다치면서 사실상 은퇴 상태가 되었다가 곡부 전투 이후 사망한다.
- 전거(거자) (AA: 아나스타시아 룬 발레리아)
전반, 광장만은 못 하지만 매우 뛰어난 장군.
- 전단(AA:잔 다르크(Fate 시리즈))
처음에는 태산 전역에서 제가 조선에게 패전한 후 암울한 상황에서 학생으로 등장한다. 이후에는 하남대전 후 순우를 공격할 때 전문의 백업으로 등장, 극신이 패주하는 전문을 잡으려고 무리하게 도하를 하려 하자 반대편에서 도하하는 조선군을 격파하기 위해 대기하고 잇었으나 순우성주였던 진개가 극신의 도하를 막아내 역습에 실패한다.
3. 기타 이름있는 자
전인제와 거문고로 친해진 사이로 본래 전기에게 찍혀서 관직에 못나올 뻔 했으나 순우곤이 뒷배를 봐준 덕에 직하학궁의 학사로 중앙에 진출할 수 있었다. 전인제 즉위 이후론 둘이 자주 붙어서 나오며 조만간 전기와의 갈등이 불거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여담으로 조선의 어사대부 문인과 나름 연줄이 있다. 패자의 지음으로써 남은 평생을 보냈으나, 명이 다하여 죽기 전 본인이 아끼던 악기를 연주하고 싶어했지만 끝내 때를 놓쳤다.
- 순우곤(AA:에반젤린 A.K. 맥도웰) 직하학궁 학사
제나라의 외교 담당. 원 역사대로 달변가이며 타국과의 외교를 거의 성공시킨 유능한 외교관이다.[13] 다만 자신의 실책이 아닌 월나라의 심각한 외교적 결례의 결과로 제나라의 이미지가 망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직하학궁의 학사들이 유출되는 사건에서 고생을 했다. 이후 중원대전 때 조선에 선택을 강요하는 등 외교관으로 대활약했지만, 은퇴 이후에 훗날 제민왕이 되는 전지에 의해서 짤리고 나서는 맹자를 만나고 페이드 아웃.
장자에서 장자의 친구로 나오는 그 사람. 위나라가 비록 밀리고는 있지만 한때 크나큰 나라이기에 원역사에서처럼 자신이 임관해 다시 한번 부흥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위나라에 출사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위나라가 시간이 갈 수록 더욱 더 세가 줄어들고 있었던 탓인지 원 역사에서 재상까지 지낸 위나라 대신 제나라로 생각을 바꾸었다. 자기 이상이던 열국의 힘의 균형을 이용한 평화를 이루기 가장 적합한것이 전인제였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는 듯. 이후 조선에서 형명론을 전파할려고 했고, 조선은 실용에 미친 귀신들이 붙었다고 질색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외교셔틀(...) 업무를 잘 수행하다 308년에 사망.
- 맹가(맹자)(AA:앨리스 마가트로이드)
전인제 시기부터 등장해 여러 대담을 통하여[14] 안면을 튼 사이이며, 이 때문에 내치를 보는 시선 위주에 성선설 기반의 이상론이라는 논파도 당하긴 했지만 어찌되었던 당시 태자 전벽강의 스승(반강제...)까지 되었다. 그러나 후일 산둥대전과 곡부대전을 통해 자신의 두 제자가 각각 죽고 폐인이 되었으며, 자신의 학당에서 가르치는 어린이들까지 본인이 제지를 하건 말건 하필왈인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정도로 운수가 사납게 되었다.
- 상경 저자(AA:페리 로스)
- 대부 장축(AA:세바스찬(심쿵! 프리큐어))
- 식객 제모변(AA:유메미 리아무)
그 맹상군도 재주가 있는 건지 의심할 정도의 행보이긴 하지만 아직은 전영의 식객이다.
4. 기타 이름없는 자
공자의 적통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안회가 죽었으므로 딱히 정통 유가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일단 유가의 총본산에 해당한다. 다만 법가 계열은 철저하게 배척하여 제나라에 법가가 존재하기 힘들게 되었다... 만 조선이 제나라의 절반 이상을 빼앗아 간 후에는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 양주 및 양주학파 (AA:스즈미야 하루히)
서문표를 암살하는 공을 세웠다. 끝(...)
- 구 즉묵대부(AA:이토 카이지)
강대가 축출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강제 쪽의 사람이었던 자. 결국 얼마 못가 세력이 일소되었다.
- 제나라 귀족(AA:P헤드(아이돌마스터))
- 무성성주(AA:민화(포켓몬스터))
태도만으로 보면 제나라 제일의 충신이자 인망이 넘쳤던 인물. 당시 시대적 관념 상 성 하나의 국지전을 위한 규모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악자와 고거의 7만 군대의 도강을 목격하고는 조선이 황하를 건너 추가적인 영역 확보를 노리며, 부족한 방어 설비와 병력이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 판단하고 2차 방어선의 형성을 급박하게 요청한다.
결사의 의지로 모든 것을 불살라 고거의 발목을 붙잡았지만(?) 애초에 규모 차이에 방어시설 미비로 인해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모든 게 끝나자 주군을 뵐 면목이 없어 자결한다. 이후 그 인망의 영향으로 조선령이 된 무성 지역의 안정화에 즉각적으로 손을 보지 않으면 반란이 터질 정도의 상당한 차질을 주었으며, 전기와 평원현령의 친척이기도 해서 전기와 평원현령이 이 일을 만든 고거 등에게 악감정을 약간 가지게 하는 단초가 되기도 하였다.
결사의 의지로 모든 것을 불살라 고거의 발목을 붙잡았지만(?) 애초에 규모 차이에 방어시설 미비로 인해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모든 게 끝나자 주군을 뵐 면목이 없어 자결한다. 이후 그 인망의 영향으로 조선령이 된 무성 지역의 안정화에 즉각적으로 손을 보지 않으면 반란이 터질 정도의 상당한 차질을 주었으며, 전기와 평원현령의 친척이기도 해서 전기와 평원현령이 이 일을 만든 고거 등에게 악감정을 약간 가지게 하는 단초가 되기도 하였다.
- 평원현령(AA:명희(포켓몬스터))
- 전 중앙군 원수(AA:시트론(포켓몬스터))
위나라가 제나라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몇 번의 군사행동을 벌일 때 위나라에게 몇 안되는 성과를 안겨준(...) 인물. 능력 자체의 부족으로 충분히 합공으로 격퇴할 수 있었던 일을 성을 내주는 것으로 끝내서 제후 전오의 명에 의해 중앙군 원수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졌다.
- 제나라 학생(AA:소악마(동방 프로젝트))
직하학궁의 문하생들이다. 조선이 민간 풍문을 얻는 과정에서 자주 출현하는 편이며, 월나라의 외교적 결례 2연타로 인해 일부는 조선으로 빠져나갔다.
- 아대부(AA:로로라이나 프릭셀)
원 역사에는 아예 주도적으로 나라를 팔아먹다시피한 매국노이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좋은데 어딘가 모자라서 한나라의 공작에 속아넘어가 영역을 넘겨주기도 할 뻔한 것 등으로 인해 고의성과는 별개로 죄를 문책당하여 가택연금 당하는 결말을 맞았다.
- 래이(이민족)(AA:키타카미(함대 컬렉션))
[1] 자식을 보는 것을 금지당했지만 인질로 잡혀온 노나라 공자와 교류할 정도로 감시가 느슨했다.[2] 사후 조카인 전인제는 "그 사람이 특정 대상을 진심으로 미워하는 것, 나는 본 적이 없으니까."라고 밝혔다. [3] 특히 송나라의 경우는 아예 속국으로 삼아버렸다.[4] 더군다나 다이스가 잘나오던 제나라가 전오 시절부터 꾸준히 고다이스 행진을 밟아서 얄미울 정도로 스레민들이 짜놓은 판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망쳐놓는지라 제나라와 전오를 덮어놓고 싫어하는 스레민들도 있었다.[5] 참고로 원 역사의 제환공 전오 역시 신의라 불리던 진월인을 믿지 못해서 사망했다.[6] 이를 두고 전인제는 "빼앗은 사람은 병으로 고통스럽게 죽었는데, 정작 빼앗긴 사람은 천수를 누리고 편하게 죽었나."라고 평했다.[7] 강제의 제환공 소백이 회맹을 열어 첫번째 패자로 공인받은 장소. 사실 맨 처음 회맹을 연 곳은 견(甄)이지만 천자에게 정식으로 인정받은 때는 규구 회맹.[8] 참고로 천자한테 종놈자식이라 욕한건 원역사에서도 그런걸로 추정된다(...)[9] 조선은 중원에서도 법가의 나라로 이름이 알려져 있어 조선 내 법가세력들의 공격으로 맹자를 깎아내려 그의 학파를 약체화시킬 의도였다.[10] 참고로 전투는 잘하지만 정보통제능력이 개판이라 사전에 새어나갔다(...)[11] 이러저러한 사정이 겹쳐 조선군 17만, 제군 15만에서 제군측의 총대장으로써 조옹을 상대하였다. 조선은 산둥 대전에서 공자의 입장이었기에 병력 또한 자연스럽게 가려 뽑은 것들이며, 수비측이 동일 규모였더라도 국력상의 부담 자체가 한 수 위인 상황이었다. [12] 물론 전반의 최정예 부대였다.[13] 왜 '거의'냐면 진헌공 재위기에 진나라에 간 적이 있는데 마침 간만에 위나라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시기였는지라 진헌공 본인을 포함한 진나라 관료 전체가 축하 파티를 벌이고 있어서...[14] 전인제 본인의 성향도 있어 특유의 거친 태도 또한 대충 넘어간 편이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