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평가
1. 개요
날씨의 아이의 평가에 대한 문서.
날씨의 아이는 별의 목소리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 이은 신카이 마코토가 꾸준히 추구하던 장르의 세카이계 작품이다. 참고로 한국 정식 개봉 버전은 자막 퀄리티가 나빠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점을 참고하자.
2. 평점
제작사실이 발표되자마자 야후! 재팬 영화에 문서가 생기기도 전에 IMDb(미국)와 도우반(중국)에 항목에 생겼다. 도우반이 먼저 생겼다.Beautifully animated and narratively engaging, Weathering with You further establishes writer-director Makoto Shinkai as a singularly talented filmmaker.
'''아름다운 작화와 매력적인 내러티브가 있는 날씨의 아이는 작가이자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를 독특한 재능의 영화 제작자로 더욱 확고히 시킨다.'''
로튼 토마토 총평
야후! 재팬 영화에서는 신카이 마코토의 여성에 대한 관점이나 과거 야겜 제작사에 있었던 경력으로 인해 일본 페미니즘 계열로부터 대대적인 평점 테러(1점)를 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반대로 5점 만점을 주는 사람도 예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이전 작들과 달리 '''평점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신카이 감독 작품 중에 야후 재팬 평점이 5점 만점에 3점이 안 되는 작품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결국 야후 재팬 측에서 평점 테러로 인한 민원에 시달렸는지, 7월 18일 21:00부로 '''이 영화의 평점을 리셋하고 평점 등록을 금지'''시켰다. 개봉 이후인 2019년 7월 19일 11:00부로 평점 등록이 가능해졌다. 평점 등록 이후에는 3점대 후반 이상의 점수를 받고 있다. 다른 평가 사이트에서도 3점대 후반을 기록중.
대체적으로 작화나 음악은 신카이의 작품 답게 더없이 훌륭하다는 평이나, 스토리와 서사에서 개연성이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평. 기존의 신카이 작품들이 받았던 평가를 계승한 셈이다.
3. 영화 평론가 평
'''신카이 마코토 월드, 100% 맑음'''
신카이 마코토 세계의 총 합체이면서 한 차원 높아진 퀄리티와 깊어진 주제가 감정을 움직인다. 전작 <너의 이름은.>(2017)의 흥행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자신감은 ‘신카이 월드’의 시공간을 확장하는 자양분 역할을 한다. 이전 작품들에서 특징으로 드러났던 하늘에 대한 동경, 비에 대한 묘사, 운명과 매듭을 뜻하는 ‘무스비’라는 키워드는 반복과 진화를 거쳐 세계관을 든든히 떠받친다. 여기에 신(자연)과 인간(일본)의 영역을 오가는 판타지가 현실을 비추면서 예상치 못한 기분을 체험하게 된다. 신카이 마코토가 거장인 까닭은 소년소녀의 가슴 찡한 사랑 이야기를 뛰어난 작화와 감성적인 음악으로 표현해서가 아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면서 현실 세계를 직시하는 공감력. 이것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형태를 바꿔버린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진짜 능력이다.
'''미래를, 아이를, 관객을 향한 선물'''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날씨’는 항상 인물들에게 심적, 물적으로 큰 영향을 끼쳐왔다. <날씨의 아이>는 그 영향권을 한층 더 가시화한다. 도심의 자연재해는 낯설다고 느꼈던 지구촌 사람들, 하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와 침수되는 도시의 이미지는 일본뿐만 아니라 지금 전 세계가 당면한 기후변화, 대재앙이 닥칠 미래를 상징한다. 신카이 마코토는 이 묵시록적 세계관의 바탕에, 집 없는 어린 소년, 소녀를 위치시킨다. 전작의 타임워프 형식에 비해 한층 단순해진 플롯, 스토리 전개 면에서 영화적 재미가 약화된 플롯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맑음소녀’ 히나가 맑게 한 눈부신 하늘의 작화를 스크린으로 보는 건 분명 작화의 신, 신카이 마코토라서 줄 수 있는 관객을 향한 아름다운 선물이다.
- 이화정 (씨네21) (★★★)
'''아름답고 서정적인 화면 위에 펼친 희망의 온기'''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정밀한 묘사와 섬세한 화면은 여전하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장면들 위에 애틋하게 펼친 감성도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일본의 현재를 담아 희망의 미래를 전하는 위로도 더없이 따뜻하다. 주인공의 운명과 의미의 확장을 떠받치는 개연성이 부족한 점은 다소 아쉽고, 가끔 불편하게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관음적 시선도 시대의 바람에 빗나간다.
- 심규한 (씨네플레이) (★★★)
'''맑은 하늘에게로 보내는 비로 쓴 러브레터'''
- 허남웅 (씨네21) (★★★☆)
'''신카이 마코토의 개성과 감성을 극으로 밀어붙인'''
'''황홀하게 뜬구름 잡기'''
'''맥없이 재활용하는 전작의 모티브들, 심지어 단점까지도.'''
4. 관객 평가
4.1. 긍정적 평가
지금까지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은 《너의 이름은.》 이외엔 모두 현실에 의해 타협하거나 상실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주인공이 완전히 현실을 부정하고, 오직 아마노 히나 하나만을 위해 달려나가는 모습에서 신카이 마코토의 가치관이 가장 직접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이는 아래의 부정적 평가에서 노골적이라서 싫어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인상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연출과 비주얼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영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조차 인정하는 장점이다. 영화 장면 하나하나는 마치 잘 연출된 일러스트를 보는 듯 하며, 영화 후반에 반쯤 물에 잠긴 도쿄의 모습은 몽환적이기까지 한 느낌을 준다.
이번 영화에서는 좀 더 젊은 세대의 관점에서 현실과의 대립을 그려냈다. 영화에서 현실은 직간접적으로 주인공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또한,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희생해야 현실이 나아진다는 것을 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를 책임져야 하는, 혹은 주변의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는 상황과 어느정도 맞물려 있다. 특히, 이러한 일본의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감독의 관점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에게 더욱 와 닿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현재 10대 ~ 20대는 2명당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며,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 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역할도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결국, 물에 반쯤 잠긴 도쿄에서도 나름대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감독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해준다. 결국 우리 사회는 누군가 나서서 책임지지 않더라도 결국 모두가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각자 짊어지게 되며,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좀 더 자신의 길을 찾으라며 응원을 해주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세상은 원래 미쳐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라며 말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선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다르게 주인공과 현실사이에서 현실을 대변하는 역할의 인물인 스가 케이스케가 나왔다는 것이다. 전작인 너의 이름은.에서 기성세대인 미츠하와 요츠하의 아버지 미야미즈 토시키는 마지막 선택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형적인 기성세대의 방해요소로서만 나타났다. 하지만 스가 케이스케는 현실을 위해서 주인공을 제어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을 응원하며, 주인공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존재이다. 관객들에게 있어서 이상과 현실을 조정해야 하는 기성세대의 역할을 이해하게 해주는 의미가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케이스케 말고도 스가 나츠미와 아마노 나기 역시 신카이 영화의 조역 캐릭터치고는 유례가 없을 만큼 입체적이고 주체적인 캐릭터상을 보여주었고 스토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여 호평을 받고 있다. 남녀 주인공에게만 철저히 집중하던 지금까지에 비해 확연히 발전된 점이다.
RADWIMPS가 만든 OST에 대해서는 너의 이름은.때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편이라는 의견이 많다. 특히 극중 삽입곡이자 엔딩 곡인 愛にできることはまだあるかい(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와 클라이맥스 삽입곡 グランドエスケープ(그랜드 이스케이프)의 인기가 엄청나다.
4.2. 부정적 평가
직전작 《너의 이름은.》보다는 대중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대체적으로 신카이 감독 특유의 감성이 전작보다 진해, 《너의 이름은.》보다 호불호가 강한 작품이다.
평론가들과 일부 네티즌들의 감상을 살펴보면 《너의 이름은.》의 서사와 연출을 그대로 답습했으며[1] , 짧은 단막극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무리하게 담아내려고 했다는 공통적인 평이 자주 보인다. 몇몇 사람들은 난잡하다고 느낄 정도.[2]
그런데 이 부분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너의 이름은이 워낙에 성공적인 작품이다보니 본 작품이 이 작품과의 비교가 많이 이루어지는 면이 있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1999년작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2001년작인 별의 목소리 시절부터 서사와 연출이 '''그냥 원래 이랬다'''는 것이다. 한국의 영화 평론가들에게까지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극히 최근이긴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실제로는 십수년이 넘게 감독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베테랑이라는 말이다. 본인 명의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는 게임 애니메이션 오프닝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있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그의 연출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분야는 사실 극장용 애니메이션보다는 TV 광고 쪽인지라 짧고 강렬한 느낌을 전하는 것에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더 길게, 혹은 여러개를 붙여서 완성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는 젊은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단점들이 오히려 커버가 잘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원래부터 장단점이 극명한 아티스트였고 애니메이션 매니아들만 그의 작품을 즐기던 시절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일반 영화 관객들까지도 커버해야 하는 규모의 시장으로 올라오자 이제서야 이 문제에 대한 제기가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50대를 눈 앞에 둔 신카이 감독이 평생을 고치지 못했던 이 문제를 앞으로의 작품에서 해결할 수 있을거라 기대하기는 힘든 이유이다.
엄연히 해야할 일을 하고있는 경찰[3] 을 주인공과 대립하는 위치에 두는 것에서 불만을 느낀 이들도 있다. 작품 내에서 특별히 경찰들을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이미 무기를 잃은 주인공에 대해 경찰 장비 등을 사용해서 무력 진압을 시도한다는 면은 다분히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4]
한국에서는 작품에서 중요한 사건을 촉발하는 매개체가 권총이라는 것에서 총기 소지 금지 국가인 현대의 일본 사회에서 권총이 등장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인 일본 도쿄 가부키초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면 총이 등장할 개연성은 충분한 수준이다. 가부키초는 원래부터 환락가로 유명한 곳인데다가 야쿠자들의 손아귀에서 놀고있는 곳이다. 2018년 한해에 알려진 총기사건만 해도 6건[5] 이 되는, 일본 치고는 상당히 치안이 불안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일본 사람들은 현실 반영이 되었다며 납득한다. 외국 관객들은 그런 현지 상황을 잘 모르니 다소 뜬금없이 느껴졌던 것.[6] 일본에서는 한국과 유사한 수준으로 총기 규제 법률이 있긴 하지만 실제 집행에 있어서는 좀 허술한 구석이 있어서 미국만큼 총기 사고가 빈발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만큼 어지간한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군대가 아니면 실제 총기는 구경도 못 해볼 정도의 단속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2007년에도 나가사키의 시장이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의 총격 테러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고 아예 20세기로 가면 1968년 재일 한국인 권희로의 인질극 사건, 1970년 요도호 사건 1972년 아사마 산장 사건 등 세계 테러 역사에 길이 남을 흑역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수준이다.
개연성, 그리고 미회수 떡밥에 대한 불만도 상당히 있다.[7] 처음 주인공이 가출하는 것을 제외하면 주인공들의 행동에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곤 하지만, 상당히 불친절하여 한 번 봐선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8][9] 미회수 떡밥의 경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즉, 맥거핀의 형태로 쓴 것이다. 대표적으로 비의 소녀(아메온나)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영화 후반에 비의 소녀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리고 미회수 떡밥들을 분석하여 추론할 수 있는 재미를 위해 만들어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전개가 복잡한 영화에서 맥거핀의 사용은 보는 이들의 머리를 아프게도 한다. 맥거핀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뜩이나 영화의 구성이 복잡하다든 평을 듣는데 떡밥마저 맥거핀으로 남겨두어 전개가 난잡하다는 평을 듣는 데에 일조했다.
또한, 관객들이 주인공들에게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묘사나 스토리 전개가 부드럽지 않았다. 개연성 보다는 각본상의 스토리 전개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 안그래도 가출한 이유를 모르는 주인공인데, 심리에 따른 상황묘사가 부족하다 보니 몰입에 방해가 된 것이다.
또한 작품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것도 단점 중 하나이다. 앞서 말했던 대로 각본상으로 꽤나 혼잡한 전개와, 관점에 따라 주인공에게 공감하기 힘들다는게 그 이유이다. 작품의 핵심은 사회를 배려하고 책임질 것인가, 혹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 것인가하는 관객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핵심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자극적인 소재[10] 들로 인해 작품의 본질적인 주제가 흐려진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것을 알고도 '날씨 따윈 계속 미쳐 있어도 돼. 세상은 원래 미쳐 있으니까.' 따위의 말로 퉁치며 정당화 하는 주인공의 태도도 관객들을 어이없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물론 주인공이 철없는 사춘기 소년 이라고는 하나, 자신 때문에 최악의 경우 수만명 이상 의 사람들이 죽거나 수재민이 되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를 감정에 치우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결정 짓고 이를 미화하는 연출 방식을 보여주는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가 힘들다.
5. 번역
5.1. 자막판
국내 개봉에서는 극장 자막의 질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너의 이름은.》보다도 훨씬 나쁜 평가를 받으며 불만이 많이 나왔다. 해당 번역가 특유의 원문에 없는 단어를 집어넣는 보충 설명, 아예 내뱉은 말과는 다른 문장을 만드는 등의 의역이 있어 원어가 들리는 사람을 거슬리게 하기도 한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호다카가 히나의 진짜 나이를 아는 부분에서 "내가 제일 연상이었잖아..."라는 부분이 "오빠인 내가 지켜줬어야 했는데!"로 의역한 부분이다. 어머니 사별 이후에 어린 동생 나기를 책임져야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이를 속여야하는 소녀가장으로 살아왔음을 의미하지만, 후자는 마치 어린 사람은 무조건 연상인 사람이 지켜야 한다는 듯한 유교적이고 마초이즘적인 대사가 되어버렸다. 특히, 영화 초반에 '17세?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하는 호다카의 대사와 이어지는 대사이기에 굳이 의역을 한다면 '역시'를 붙이는 정도가 적절하지 해당 의역은 대사의 의도를 번역자 주관으로 바꿔 본래 의미를 해친 의역의 오용에 해당된다.
그 외에도 존댓말과 반말을 굳이 반대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호다카가 히나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 정서상 어쩔 수 없지만 점쟁이랑 철도공사직원이 존댓말로 말하는 부분은 왠지 반말이다. 호다카가 히나상이라고 부르는 부분[11] 도 생략해서 후반부의 요비스테 부분을 살리지 못했다. 아이맥스 버전에서는 단 하루만 개봉한다는 것부터 반발을 불러오더니[12][13] , 자막의 싱크가 안맞는 부분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넷플릭스 자막판에선 대부분 수정되었다.
5.2. 더빙판
2020년 5월 '''너의 이름은.과는 달리 전문 성우를 기용한 더빙판 개봉이 확정'''됨에 따라 더빙의 번역의 질이 어떨지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자막판보다 뛰어난 번역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
더빙판 녹음제작은 CIC미디어에서 맡았다. 하지만 더빙판의 대사 스크립트는 그대로 강민하 번역가가 맡았고 자막판의 번역을 거의 그대로 따라갔다. 성우들은 호연을 펼쳤으나 정작 그 호연의 기반이 된 대사 스크립트가 의역이 넘쳐나는 자막판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지라[14] 대체로 관람객들은 성우 연기의 퀄리티는 매우 호평하는 편이나 대사 스크립트가 어색하다고 비평하고 있다.
특히 더빙판의 특성상 한국어의 구어체로 번역되어야 할 부분이 자막에 더 어울리는 문어체로 번역되어서 심각하게 어색한 부분이 많다. 스가 케이스케가 한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인칭대명사로 '''전혀''' 쓰이지 않는 '소년'이라는 인칭대명사를 그대로 사용하는 등. 굉장히 어색한 부분이 많다.[15][16] 또한 맑음 소녀 부분은 히나가 말하는 부분에서는 소녀, 점쟁이나 나츠미가 말하는 부분에서는 여자로 더빙되는 등 일관성이 없다.[17]
그리고 일부 파트에서 더빙이 아예 누락되어 일본어 원판을 그대로 사용한 부분이 존재한다. OST야 뭐 미디어캐슬이 RADWIMPS에게 한국어판 제작을 의뢰하거나 국내 밴드를 섭외해서 현지화할만한 여력은 없었을 것이므로 당연히 참작되는 부분이지만,[18] 작 초반의 바닐라 아르바이트/만화 카페 광고 역시 더빙되지 않았다! 이외에도 호텔에서 호다카와 히나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 호다카의 졸업식 노래는 삽입곡으로 간주된 것인지 더빙에서 짤려버렸다. 호텔 씬은 극중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지라 이 파트가 더빙이 되지 않고 일본어 그대로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관객이 많았던 탓에 더빙판의 몰입을 해친 주요 포인트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다. 다만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이, AKB나 호시노 겐의 판권료는 인기가수인만큼 비쌀 뿐더러 만부나 바닐라 CM송도 엄연히 저작권이 존재하는만큼 개사를 하려면 저작인격권 문제가 있어 판권료를 따로 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어색한 번역 문제가 있었지만 이번 더빙판은 전반적으로 좋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너의 이름은.의 연예인 더빙으로 인하여 바닥으로 추락했던 미디어캐슬의 이미지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6. 총평
신카이 마코토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영화는 본래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제작하였다고 한다.인터뷰 내용 이 영화에선 도전적인 시도를 여러가지 했는데, 특히 주인공에 관해서 그런 부분이 컸다고 한다. 주인공을 응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좋은 평가를 줄 것이고, 감정적인 주인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좋지 않은 평가를 줄 것을 예상하고 만든 것. 물론 개인이 중요하다, 그래도 사회를 위해 배려하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지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구조적으로 세카이계 작품이다. '세계냐 히로인이냐'라는 질문을 전제로 한 연애물에 가까운 세카이계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신카이 마코토가 꼽혀왔다. 《별의 목소리》에 비하면 《날씨의 아이》는 좀 더 확연한 세카이계이다. 어른들을 삐딱하게 보는 청소년스런 시선들, 세계의 평온을 중시하는 어른들의 강압과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대립, 어른들도 나름대로 아이들을 인정하지만 현실을 위해 어쩔수 없다고 결론짓는 것, 미성년자란 한계에 갇혀 수많은 제약에 시달리는 아이들, 히로인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여 세계를 멸망시켜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주인공, 세계의 운명을 결정지을 존재지만 어디까지나 수동적인 위치인 불우한 히로인 등은 모두 세카이계적인 특징이다. 주인공의 선택과 그로인한 여파(세계멸망 or 히로인의 희생)도 세카이계적으로 당연한 전개. 충격적인 도쿄 수몰도 세카이계가 대체로 더 가혹한 양자택일(진짜 세계멸망)을 밀어붙이는 것을 생각하면 말랑말랑한 편이다. 이처럼 《날씨의 아이》는 세카이계로 성립되고 있다.
주인공이 이루고자 했던 목표 중 히나를 구한다라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결국 히나를 구함으로서 도쿄의 비는 그치지 않는다. 도쿄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물에 잠기는 모습이 나오기까지 하기에 감독의 전작 《초속 5센티미터》처럼 마지막에 패배한 주인공을 연상케 해 뒷맛이 찝찝하다는 평가와, 도쿄가 큰 피해를 입었더라도 히나를 구했다는 것에서 감동을 느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다만, 홍수로 인한 피해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도 '도쿄는 원래 바다였다'며 원래 모습을 되찾은 것 같다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부분 등 도쿄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한 묘사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19] 다만 이부분은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의 문명은 무력함을 나타내는 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일본의 선조나 어른들이 처음부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식의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침수 상태를 자연스럽게 여기며 거기에 적응해오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어째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가 연상되는 부분. 다만 애초에, 판타지적인 재난은 소재일 뿐이지 재난 자체에 주제의 핵심이 들어가 있진 않다.
또한, 이 결말이 세계(도쿄)가 멸망하는 걸 긍정하는 무조건적인 배드엔딩은 아니다.[20] 반영론적 관점에서 본 작품은 '공동체주의적 평온'을 당연시하고 '소수의 작은 가치'에 대한 희생은 당연시하는 일본 사회에 대한 쓴소리가 상당히 강력하게 드러나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에 대해서는 감독이 인터뷰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작중 어른 캐릭터들의 대사라든지 넷카페에서 호다카가 라면을 먹을 때 옆에 무슨 책(스포일러)이 있는지를 보면, 작품 속에 굉장히 직접적으로 묘사한 셈이다. 현대 일본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넘긴 짐을 젊은이가 떠안아야 한다는 불만'이 사회적 갈등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작중 히나와 호다카라는 캐릭터는 그 '책임을 떠안은 젊은이들'이 '자신을 희생함에 따라 비를 그치게 할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결말은 '''던져진 물음에 대한 감독 자신의 대답을 말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도쿄는 물에 잠기더라도, 두 사람이 재회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두 주인공의 대사가 더없이 희망적인 분위기로 묘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실 도쿄 침수는 주인공 등이 책임을 질 문제가 아니다. 이상기후의 원인 자체에 주인공과 히로인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기 때문. 작중의 이상기후는 쓰나미, 지진, 폭풍, 기온상승 등의 일반적인 자연재앙의 연장선[21] 이며 그러한 재앙을 겪으면서도 그걸 극복하고 사는 것이 인간이다. 작중의 평온한 태도의 사람들을 보면 도쿄의 피해와 일본의 혼란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여느 자연재해와 사실 큰 차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22] 그렇게 보면 도쿄 침수를 인간 제물로 막아야만 하는 이유는 다수의 편익 뿐이다. 다수의 편익을 위해 무관계한 제3자의 희생을 요구하고 그렇지 못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소수의 공리주의적 희생이 아니며 내용도 전혀 관계 없기 때문에 착각하면 안된다.[23] 작중에서 두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그 사회를 책임지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이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것인지가 핵심 주제이다.[24]
신카이 마코토의 인터뷰에 따르면, 영화 마지막에 세계가 돌아온다고 한다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른 세대가 후대에게 원래대로의 세계를 넘겨줄 수 없다는 것의 죄의식의 표현이라고 한다.[25]
전체적인 플롯은 《너의 이름은.》보다는 감독의 초기작인 《별의 목소리》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 가까운 편이다. 신카이 감독은 이전부터 현대 사회, 정확히 말하면 '감성이 메말라 버린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부정하면서 이에 대비되는 청소년들의 순수함을 다루곤 했는데, 이번 작품은 특히 그런 작가의 의도가 스토리 전반에 좀 더 진하게 얽혀있다.[26]
전체적으로 호불호가 다소 갈리나, 전반적으로 좋은 영화임에는 이견이 없다. 많이 발견되는 단점만큼이나 장점도 많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의 전작 너의 이름은.이 무난한 스토리로 호평을 받은 것과 꽤 큰 차이가 있고, 위에서도 얘기했듯 감독의 초기작과 같은 성향을 보인다.[27]
외부적인 요인으로 보면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인해 일본과 국제적인 상황이 심각해졌기 때문에 인터넷을 제외한 TV 등 각종 대형 매체에서 예고편광고 등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여러모로 불운한 작품이긴 하다. 서브컬쳐에 한해서는 불매운동의 여파가 거의 없는 수준이지만 이런 애니메이션 영화는 오타쿠만을 타겟으로 하는 게 아니므로[28] 관객수 자체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또한 많은데, 3대 멀티플렉스 극장 현장에선 예고편이 잘만 나오고 있었고, CGV의 경우 키오스크에도 날씨의 아이 포스터와 예고편이 뜨고 있었으며, 특전[29] 과 굿즈, 행사 홍보와 진행까지 원할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관련 정보가 외부로 잘 새지 않기 때문에 원활히 진행된것처럼 보일 뿐이며 실제로도 너의 이름은. 감독의 후속작이라는 말만 듣고도 앞다투어 콜라보를 요청했던 업체들이 불매운동이 터지자 다함께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동시 다발적으로 이를 취소하기도 했다는 미디어캐슬 이사의 증언도 있다. 또한 부정적인 평가에 서술한 것처럼 한국에서는 공감하기 힘든 요소들[30] 도 상당수 있었고 전작에 비해 호불호가 강해지고 더불어 시기적인 상황과 개봉일시 선정이 썩 좋지 않은 점 등으로 일본에 비해 성적이 저조할 만하다는 사람들도 있는 편이다.
작품의 평과는 별개로 등급이 15세라는게 이해가 안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나 같은 해에 나온 조커가 같은 15세 등급이라는 점에서.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딱히 15세를 받을만한 요소는 전무하다. 서류조작이나 미성년자의 범죄묘사들은 이미 12세 영화에서도 많이 나왔으며, 폭력적인 장면도 전무하다.[31] 다만 이는 실제로 1999년 2월 상주시에서 고교생이 여고생을 인질로 잡고 그 과정에서 경관 2명을 사상에 이르게 하고 인질 여고생을 죽인사건이 일어난적이 있어서라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