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생애

 


1. 개요
2. 입대 이전
3. 현역 시절
4. 전역 후


1. 개요


이근의 생애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이다.

2. 입대 이전


1984년 3월 22일, 한국에서 태어났다. 생후 1개월, 부모를 따라 외국으로 이민했으며 3살 때부터 미국에서 자랐다.[1] 뉴욕 주 퀸스 프레쉬 메도우(Fresh Meadow)에 살았다. 백인만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며 인종차별을 당했고,[2]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던 중 네이비 실을 다룬 책을 읽고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때 처음으로 네이비 실과 군인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6살 때부터 수영을 배웠고,[3]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영 국가대표에 뽑혔다고 한다. 한 때는 전미 16위권 내에 들기도 했다고.[4] 또, 고등학교 시절 주니어 ROTC 대대장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어릴적 꿈이었던 네이비 실 장교가 되기 위해 미국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지만 국적 문제 때문에 낙방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자신이 미국 국적자가 아님을 알았다고 한다.[5] 생각을 바꿔 2002년, 버지니아군사대학에 지원, 입학했다고 한다.[6] 대학 시절 마이클 펠프스와 수영 경기를 치른 적도 있다고 한다. 학부의 전공과 부전공은 현대언어문학과 국제정치학이다. 교환학생이 필수였기에 한국과 모로코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했다.[7] 2005년 고려대학교 교환학생 시절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많이 배웠고, 검도 동아리에도 가입하고 친구와 술도 마시는 등 대학 생활 가운데 가장 즐거웠던 기간이었다고 회상했다.[8]
2006년, 버지니아군사대학을 졸업하고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3. 현역 시절



한국의 네이비 실에 해당하는 UDT/SEAL에 지원하기 위해 2007년, 대한민국 해군사관후보생(OCS) 102기로 입대했다.[9] 입대 4개월 후에 소위임관했고, 선서식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 나라, 정체성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어서 자랑스러웠고 애국심이 끓어올랐다고 한다.
해군사관후보생(OCS 102기) 시절 최상위권 성적으로 임관하여 당시 최고 구축함인 문무대왕함(DDH-976)으로 인사명령을 받았다. 2008년 함정근무 중 UDT/SEAL 54-1기에 지원했고,[10] UDT/SEAL 선발과정인 초급반을 차석으로 수료했다.[11] 기수는 가짜사나이 교관으로 같이 참여한 에이전트 H야전삽 짱재의 다음 기수이자 로건의 이전 기수.[12]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1특전대대 공중작전대(AIROPS)에 중대장으로 부임하였고, 복무 중 최우수 특수전 장교 상장을 받았다. 해상대태러과정(MCT) 수료 후, 2009년 특수임무대대(SMB)에서 중대장으로 복무하며 대테러 전문성을 갖췄고, 청해부대 1진의 검문검색(VBSS) 작전팀장으로 발탁,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 파병되었다. 1진에서의 임무수행 완료 후, 복귀 없이 바로 2진에 합류하여 연이은 임무수행을 했다. 파병 기간 중 2회의 인질 구출작전 및 다수의 해적 퇴치 작전에 투입되었고, 그 공으로 여러 표창을 받았다.[13]
파병 복귀 후 2010년, 한미연합 교환훈련(JCET)[14] 미 네이비 실 저격수과정을 수료했고, 특전팀이송정과정(SDV)을 차석으로 수료한 뒤 1특전대대 해중작전대(SDV) 중대장으로 복무했다.[15] 2011년, 육군 특전사 항폭유도과정(SOTAC)을 수석으로 수료했다. UDT/SEAL을 소개하는 기사와 방송 등에 다수 출연했으며 특히 KBS 다큐 '금요기획 - 세계최강 UDT/SEAL, 불가능은 없다' 편에 당시 이근의 실제 작전팀이 나왔다.[16]
2012년. 비 해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로선 처음으로 미국 Navy SEALs 초급반(BUD/S 294기)에 입교하여 뛰어난 기록으로 수료 후, 외국군 최초[17][18]로 미국 Navy SEALs 장교과정(JOTC) 및 전문화과정(SQT 295기)까지 수료[19]하고 Navy SEALs 휘장(SEAL Trident)을 DEVGRU 지휘관으로부터 수여받았다.[20]
2013년 미국 Navy SEALs 전문화과정(SQT)을 수석으로 수료한 뒤, 한국으로 복귀하여 해군 특수전전단의 교육훈련대대 전문교육대장으로 발령받아 여러 전술전파 및 부대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미국 Navy SEALs 파견교육 중 가장 핵심적이고, 한국 UDT/SEAL이 필요로 했던 교육 내용인 SQT과정을 부대에 도입하려고 했는데, 교육과정 범위나 행정 소요 등의 문제로 부대 내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21] 또한 미국 Navy SEALs의 대테러 부대인 DEVGRU와 비슷한 체계로 한국의 DEVGRU를 만들려고 하였고, UDT/SEAL의 기존 대테러 및 소부대 전술도 Navy SEALs의 표준작전절차(SOP)대로 바꾸려고 했지만 부대에서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많이 부딪혔다고 한다. 이근은 2014년 장기자(2009년 장기 선발)를 위한 5년차 전역기회에 지원서를 내기로 결정했다.[22][23][24][25]

4. 전역 후


2014년 EBS에서 제작한 '두뇌게임: 천재들의 전쟁'에 출연했고, '세계견문록 ATLAS: 서바이벌 어드벤처'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각종 생존 기술로 다양한 오지에서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역 때의 특수전 전문성을 살려 경찰특공대에서 대테러 교관을 맡았으며, 2015년 세계 경찰특수부대 전술 대회인 '어반쉴드(Urban Shield)'[26]를 위한 국가대표팀인 경찰특공대 합동팀을 교육하여, 경찰특공대가 참가 첫 해 35개 팀 중 8위[27]의 성적을 내는 데 기여를 했다.[28] 이를 계기로 전술사격 및 대테러 교관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점차 국내외로 인정받는 전술 교관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특수전부대에서 고공강하(HALO/HAHO)도 교육했다.
2016년, 군사보안업체(PMC)인 G4S에 입사하여 작전팀장으로 이라크에 전투파병을 갔다. 1년동안 모술이 한참 IS 테러리스트들에 점령되어있을 때 다양한 실전에 참여했다고 한다. 2017년 BBC ‘Special Forces: Ultimate Hell Week’에 출연하여 교관으로서의 카리스마를 뽐냈다.[29][30]
이후 미국 국무부에 스카우트되어 안보수사관으로 입사했고, 2017년 트럼프 대통령방한 당시 경호 임무를 수행했다.[31] 또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주한미국대사관과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간의 가교 역할을 하며 보안 코디네이션 업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대통령경호처(PSS)에서 전술사격 교관을 맡아 교육했으며 이 공로로 경호안전교육원 교관단 감사장을 수여받았다.
국무부 퇴사 후, UN에 입사하여 안보담당관(Security Officer)[32]으로서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유엔 서울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보안 전반을 담당하고,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인권 특별보고관의 경호 임무를 맡는 등 해외 파견 업무도 수행했다.[33] 2018년 MBC 두니아 ~ 처음 만난 세계에 출연하여 다소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통해 예능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34] 2019년 Discovery ‘Ed Stafford: First Man Out’[35]에 출연하여 에드 스태포드와 오지 생존 및 탈출 대결을 펼치며 생존 전문가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었다.[36]
글로벌 보안 전문 회사인 MUSAT의 전무이사직(MD)을 맡아 활동했다. 이때 레드셀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하였고, 2020년 MUSAT와 피지컬갤러리가 함께 기획한 가짜사나이에 교육대장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각종 방송과 미디어에 출연하게 되었고, 여러 광고도 찍었다. 또한, 안보전략 컨설팅 회사인 ROKSEAL을 설립하고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가짜사나이에서의 신선한 캐릭터로 방송계의 블루칩으로 떴으나 전 부대원과의 빚투 문제와 성추행 처벌을 받았던 전력이 드러나 방송가에서 퇴출되었다. "성추행 처벌을 받았지만, 명백히 어떠한 추행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현재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1] #[2] 태권도로 보복했다고 한다.[3] 어머니가 수영 배우기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4] 대학교 시절 수영 기록 참조.# #[5] 미국에서 자랐으므로 자연스럽게 본인은 미국인이라고 여기고 살아오다가 이때 지금까지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왔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해외 여행을 간 적이 없어서 여권을 만들어 본 경험도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로, 미국은 주민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신분을 증명할 이유와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6] 버지니아 군사대학은 1839년에 개교한 명문 군사학교로, 2020년 기준 입학율이 51%이며 평균적인 SAT 점수는 1100-1300, ACT 점수는 24-30이다.[7] 이때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한국 군인이 되기 전에 미리 알고 준비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고 한다.[8] 버지니아군사대학은 사관학교이기 때문에 생활에 제약이 많았다고 한다. 고려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일반 대학교를 다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9] # #[10] 교육생 시절 인터뷰 기사 참고.[11] 체력평가와 교육평가는 늘 1등이었는데 당시 한국말을 잘 못했던지라 잠수학 필기시험을 망쳤다고 한다. 수석 수료를 놓친 걸 상당히 아쉬워 하는듯 하다.#[12] 에이전트 H와 야전삽 짱재는 부사관으로, 이근은 장교로 복무했지만 UDT 기수는 공유한다.[13] 기사 하단 참고. # # #[14]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KR/FE)[15] 특전팀이송정(SDV) 파일럿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16] # #[17] SQT 전과정을 수료한 동맹국 장교는 이근이 '''최초'''이자 '''유일'''하다. 기사 하단 편지 참고. Markus Aarnio의 Navy SEALs 교육 수료 연도는 1987년도이고, SQT과정은 2001년 쯤에 개설되었다.[18] 엄격한 보안규정으로 외국 군인은 JOTC 과정이나 SQT 과정에 초청하지 않기에, 모든 Navy SEALs 외국군 위탁교육생은 BUD/S 과정을 마친 후 자기 나라로 복귀하게 되어있다.[19] SQT는 '''수석'''으로 수료.[20] 이는 미국 Navy SEALs 교육체계(약 3년)중 일부로, SQT 과정까지 수료를 해야 공식적인 Navy SEALs 대원으로 임명되어 휘장을 가슴에 달게 된다.[21] 그리고 이근의 전역 이후, SQT과정은 전문화과정이라는 명칭으로 개설되어 얼마간 운영되었다.[22] 2020년 9월 5일 ROKSEAL 채널에 업로드한 Q&A에서 상부와 마찰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군 조직을 떠나 대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쪽이 한국 안보전략체계 발전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데 더 도움되리라 생각했다고.[23] 밀덕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이 시절에 대해 평가가 갈린다. 즉, "부대에서 밀어줘서 해외로 보내 기껏 온갖 훈련시켰더니 그대로 전역해 버리는 건 먹튀 아니냐" VS "이런 인재를 제대로 써먹지도 못해 스스로 전역이라는 선택을 하게 만든 군의 책임이 크다"로 의견이 엇갈리는 것.[24]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할 점은 미국 Navy SEALs은 DEVGRU를 따로 조직하는게 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국내로 예를 들면 육군 예하 특전사는 6개 여단을 구성할 정도로 인원이 많다. 그 안에서 707특임단을 따로 조직하는게 가능할 정도로 인적공급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UDT/SEAL 인원은 DEVGRU와 같은 부대를 따로 창설할 만큼 인원이 많지 않다. 현실적인 여건이 일단 뒷받침되지 못한다.[25] 이근의 경력 탓에 소령 진급에 실패하고 전역을 선택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해군 주력은 함정 직별이지. 특전이 아니며 3급함을 맡는 소령을 달려면 최소 한번은 대위 계급으로 정장을 해보는 것이 진급에 있어서 유리한데 장교는 특전 직별이 따로 없어 승함 경력이 없다면 진급 인사에 있어 불이익이 있으며 해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탓에 소령 진급에 악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전역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라는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근은 전역사유로 언급 조차하지도 않았으며 사실 해군은 육군과 다르게 함상근무 부적격자로 분류되는 함정 병과 장교나 큰 사고를 친 경우를 제외하곤 소령진급에 어려움이 없어 설득력이 낮다고 볼 수 있다.[26] 매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재난/대테러 훈련 대회이다.[27] 수치상으론 대단해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어느 정도 경험있고 잘나가는 미국팀도 처음 참가하면 쩔쩔매고 10위권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경찰특공대는 그 고정관념을 깨버리며 첫 참가에 당당히 10위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당시 해외팀들은 첫 참가임에도 10위 안에 진입한 한국 경찰특공대에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2015년도에 참관만 했던 대만팀에서도 한국 경찰특공대에 합동 훈련을 강하게 제의해 왔고, 어반쉴드에서 1위를 한 SFPD SWAT팀은 "한국 경찰특공대와 훈련할 수 있다면 언제나 O.K"라고 말했다.[28] #[29] 가짜사나이 참가자들에게 한 훈련과 유사하게, 팀워크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인성과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조한것도 완전히 동일했다. 그러나 지원자들이 각 나라의 특수부대 출신이 많고 또 모두가 선발된 사람들인 만큼 훈련 강도는 가짜사나이보다 더 높은 편. 여담이지만 이근이 교관으로 출연한 회차에서는 첫날 오전에만 4명이 탈락하는 등 스페셜포스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탈락자가 나오기도 했다. 어떤 내용인지 대략적으로 알려면 요약 영상 참고.[30] # # # #[31] 기사 중반 국무부 질문 참고.[32] 이근의 공식 직책인 Field Security Assistant는 UN의 엄연한 Security Officer(안보담당관) 직책 중 하나다. 담당자 공식메일 참고.[33] 로힝야 파견 업무에 대한 영상, 몰디브 파견 업무에 대한 기사 참고.[34] # # # #[35] 디스커버리 서바이벌에서는 이 시리즈를 '고독한 생존가'라는 제목으로 업로드 했다.[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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