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여담
1.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
전성기 때는 화려한 성적으로, 전성기가 지난 후에는 KIA 타이거즈의 정신적 지주라는 점과 여러 가지 사건으로 유명한 이종범이지만, 특히 2009년부터는 야갤과 정사갤을 중심으로 퍼진 홍어드립을 비롯한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항목에서 나열한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살펴보면 이종범이 잘못한 부분은 거의 없다. 오히려 피해자인 경우도 있을 정도.
2. VS 양준혁
3. 94 이종범 vs 14 강정호
강정호가 MLB로 진출하여 적응에 성공함으로서 포지션 불문 KBO 출신 야수들중에서는 최고임을 증명이 되었으나[1] 다만 '''역대 KBO 기록으로 단일 시즌 최고의 유격수는 누구였는가'''라는 떡밥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2]
고전 스탯으로 보면 타율, 도루만 빼면 타격 부분에서 강정호가 확실히 좋아보인다. OPS도 1.198 vs 1.033으로 강정호가 앞선다.
파크팩터를 계산하고 리그 평균치를 100으로 해서 조정한 조정 OPS를 보면[5] 이종범이 OPS+가 195이고 강정호는 193으로 이종범이 크게 차이가 안 나는 이종범의 근소 우위. 자, 그럼 이제 공격 부분 세이버메트릭스 스탯상 가장 대표적인 wOBA(가중 출루율)을 보자. 강정호 0.504, 이종범 0.463으로 강정호가 좀 우위다.[6]
이 wOBA를 가지고 득점생산력을 계산한 wRC를 다시 리그 기준을 100으로 계산한[7] wRC+를 보면 이종범이 193, 강정호가 189으로 이종범이 근소 우위라는 걸 알 수 있다. 세이버메트릭스 지표상 94 이종범이 근소하게 우위이므로 이종범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순수하게 압도적인 출루율+장타율이 높은 강정호의 손을 들어줄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루지표인 wSB가 이종범이 11.1으로 단순히 도루 갯수만 많은 게 아니라 득점으로도 연결을 많이 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으므로 도루지표 때문에 이종범에게 무게가 실릴 수도 있다.
수비는 당시 에러 산출 방식의 문제가 있었고, 90년대 보살 및 자살 기록이 전무한 상황이라 수비지표에 딱히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 수비라는게 실책 갯수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많은 바[8] , 정확한 수비에 대한 부분은 영원히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WAR이 94 이종범이 역대 야수 WAR 1위[9] 임을 생각하면 이종범이 유격수이자 야수로서 더 낫지 않은가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딱 잘라 말해서 '''둘 다 KBO에서 1, 2등하는 역대 유격수임은 틀림 없다.''' 세이버메트릭스상 타격지표는 비슷하므로 취향대로 뽑으면 된다.
그래도 누적은 강정호가 위가 아니냐라고 할지도 모르는데 이종범 유격수 5년 누적 WAR이 강정호 유격수 누적 WAR보다 높다.
4. 투명드립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 등지에서 틈만 나면 까이고 있으며, 투명드립의 필수요소로 쓰이고 있다. 단, 선수 본인의 잘못은 전혀 없다. 게다가 세이버스텟이 국내에 보급되면서 고전스텟으로 "보이지 않는 스텟"을 세이버스텟이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 재밌다.
본인도 안다는 듯. 이종범을 만나서 싸인받은 어떤 팬이 슬쩍 운을 떼 봤는데 현역 때부터 넉살 좋기로 유명했던 이종범답게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안다고 했다는 말이 있다. #
5. 흑역사
이종범의 3대 흑역사는 기쎈비타 TV광고, 금종범, 선동렬/ 양수경과 같이 Two&One으로 낸 음반이 있다(...)
- 기쎈비타
기쎈비타 광고 영상(1994년) 심지어 2탄도 있다...(1997년)
기쎈비타는 1994년 9월부터 해태음료에서 판매하던 에너지 드링크 음료이다. 이 광고는 숀 헤어, 무등경기장 물방개 사건과 함께 타이거즈 3대 흑역사로 남아있다. OTL
'16년 MBC 스포츠플러스의 엠스플 텔레비전 9화에 이종범이 출연하여 직접 이 CF의 제작비화를 설명했다. 시즌 중 CF촬영을 너무 싫어했던 코감독님의 눈을 피해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새벽 5시부터 24시간 동안 촬영했다고 한다. 김선신과의 깨알같은 재연은 덤. 2017년 MBC every1의 비디오스타에 출연해 김숙과 또 한 번 재연했다.
기쎈비타는 1994년 9월부터 해태음료에서 판매하던 에너지 드링크 음료이다. 이 광고는 숀 헤어, 무등경기장 물방개 사건과 함께 타이거즈 3대 흑역사로 남아있다. OTL
'16년 MBC 스포츠플러스의 엠스플 텔레비전 9화에 이종범이 출연하여 직접 이 CF의 제작비화를 설명했다. 시즌 중 CF촬영을 너무 싫어했던 코감독님의 눈을 피해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새벽 5시부터 24시간 동안 촬영했다고 한다. 김선신과의 깨알같은 재연은 덤. 2017년 MBC every1의 비디오스타에 출연해 김숙과 또 한 번 재연했다.
- 금종범
금종범 사진 중에서 다이빙 캐치하는 사진은 일간스포츠 해태 타이거즈 전담 기자였던 박승현 씨[10] 의 조력으로 탄생했다.
금종범은 불암콩콩코믹스에 소재로도 나왔다. 그것도 4번씩이나. 2009년 8월 20일, 2010년 6월 10일[11] 6월 16일, 이종범 은퇴만화(옷을 벗기는 남자 편), 마구마구 레전드 열전 은퇴 기념 레전드 카드 발매만화.
- 음반 발매
93년 우승 당시 모기업 해태는 우승을 해도 포상금을 두둑하게 챙겨주지 못했고 결국 이상국 단장이 김응용 감독 몰래 추진한 일이 음반 발매였다. 연습과 녹음을 병행하느라 코피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재고만 3만장 쌓였고, 감독에게는 두고두고 까였다고 한다. 선동열, 이종범이 다치기만 하면 코치에게 '나이트 자리 알아봐라'고 했다고. 그래놓고서 김응용 본인은 앨범을 사주는 츤데레 기질을 보이기도.... 그룹 이름은 'Two&One'이다. 당시 인기 가수였던 양수경씨가 같이 한 앨범. 앨범 보기.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6. 사구와의 악연
몸에 맞는 공으로 부상도 많고 헤드샷도 많이 당한 선수. 장나라를 시타할때 맞춰서 다치게 할뻔했다. 끝내기 헤드샷을 맞은 적이 있다면 믿겠는가.
7. 기타 이야깃거리
- 등번호 7번은 원래 김종모가 쓰던 번호였다. 1992년에 그가 은퇴하면서 물려준 것. 일본으로 갔을 때는 대형 유망주였던 외야수 장일현이 달았으나, 이후 장일현이 폭망하고 그가 돌아오면서 7번은 다시 원 위치로 돌아왔다.
- 우투우타이기에 오른손잡이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왼손잡이이다. 그 이유는 야구를 익히던 초기에 왼손으로는 유격수 수비가 힘들기에 오른손으로 바꿔서 했다는 얘기도 있고 바람의 아들 MLB 버전인 이분처럼 야구는 당연히 오른손으로 해야 하는 줄 알고 오른손으로 야구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야기 쇼 두드림에 출연해 당시 오른손 글러브 밖에 없어 오른손으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야구 이외의 생활은 왼손을 주로 사용한다. 필기는 오른손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 해태 타이거즈에서 구타를 제거한 인물이다. 당시 프로구단에서 선배 선수가 후배 선수를 구타하는 일은 빈번했다. 하지만 이종범이 하지 않으니 아래의 후배들(김종국 등)[12] 도 안 하게 되니 저절로 사라지게 됐다는 듯. 다만, 기아 특유의 엄격한 선후배 문화는 유지되었다.[13][14]
- 위의 구타는 사라졌지만, 엄격한 군기를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상당히 욕도 걸걸하게 하고 말투가 거친 타입이다. 무한도전 초창기[15] 때 정준하가 전화를 걸자 방송인줄 모르고 이야기 하다 무한도전 촬영중이란 말에 그럼 말을 해야지 새X야소리가 나오고, 박명수에게도 아~ 그 닭장사 하시는 양반?투로 이야기를 한다. 물론 유재석은 친분이 있어서. 아따~ 메뚜기 오랜만이쇼잉~이라며 넉살좋게 말하는걸 보면 정말 사투리 많이쓰는 전라도 아재가 뭔지 보여주는 타입.
- 이종범 별명 중 가장 대중적인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은 서수남과 함께 콤비를 이뤄 코미디를 했던 가수 하청일이 지어준 별명이라고 한다. 당시 하청일 씨가 야구용품점을 운영했는데, 하청일 씨 매장의 단골이었던 이종범에게 그러한 별명을 지어준 이유는 도루할 때 바람을 일으키면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이종범 본인은 이 별명이 제일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고 한다.
- 과거 일본에 진출할 때 언론에서 한국의 스즈키 이치로라는 별명을 붙였으나 일본에서의 부진 후 일본프로야구팬들에겐 ’발을 제외하면 비슷한게 하나도 없지 않느냐’며 비아냥 당하기도 했다.[16] 사실 이종범의 플레이 유형은 이치로보다 마쓰이 가즈오의 타입에 가까운 편. 실력은 물론 일본에서 역대급 유격수라는 평을 들으며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카즈오 마쓰이와의 비교는 무리지만, 그 플레이스타일과 행보는 제법 유사한 편이다. 자국리그 내에서는 훌륭한 피지컬을 이용해 뛰어난 호타준족 유격수로 활동했으나 상위리그에 진출하자 똑딱이로 전락하고, 자국리그에선 좋은 평을 들었던 강한어깨와 넓은 범위의 수비가 진출당해년도에 상당한 혹평을 들으며 포지션까지 변경당했던 모습, 그럼에도 어찌어찌 빠른발을 살려 주전으로서 플레이오프까지 경험한 후 자국리그에 복귀했다는 행보까지 어느정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 해태 타이거즈 선수 생활 당시 이종범의 응원가는 펩시맨~!!! 다만, 펩시맨 음악이 나오고 펩시맨을 외쳐야 할 자리에 그냥 이름 구호만 외치는 단순한 응원 구호였다.
- 원래는 축구선수를 꿈꿨다고 한다. 근데 축구부가 해체돼서 여러 운동부를 전전하다 잘 나가던 동네 형인 김기태를 따라 야구로 바꾼다. 실제로도 축구를 꽤나 했다고 하는데, 해태에서 뛰던 시절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박종환은 이종범이 축구하는 걸 보더니 "1년만 빡시게 굴리면 국가대표 승선도 가능하겠는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순철도 본인이 축구를 제법 했는데 이종범만큼 축구잘하는 야구선수를 본 적이 없다며 준프로급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17] 하일성 해설위원에 따르면 실제로 축구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고 한다. 기사. 그리고 이 축구 실력을 검증이라도 받았는지, 축구 소재 예능인 뭉쳐야 찬다 - 전설들의 조기축구에도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다.
- 이종범은 몸 쪽으로 오는 공을 당겨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몸에 맞는 공으로 두 차례나 큰 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고. 2009시즌 타격폼을 바꾼 이후로는 몸 쪽 공 공략이 나아진 편.
- 2009년 11월 25일,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이종범 편 1부가 방송되었다. 개인사와 프로야구 데뷔부터 일본 진출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했으며 그의 흑역사인 음반 발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강호동을 팔씨름으로 가볍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20]
- 1997년에 결혼하여 이듬해 정후라는 아들을 얻었고[21] , 초등학교때부터 아버지를 본받아 야구를 하고 있다. 좌타를 못한 게 아쉬워서인지 좌타로 가르치려고 하는 듯. 그리고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1차 지명을 받았다. 이정후는 아버지와 달리 우투좌타이며, 이종범이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이라는 점에서 따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가졌다. 이정후는 프로 입단 후 외야로 전향했다.
- 본인에 이어서 아들도 야구선수인 만큼 아버지가 이정후의 타격을 봐주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부분을 터치하지 않고 아들이 다니던 학교의 지도자들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아들에게 몸 관리나 유명인으로써의 자세의 중요성 정도만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다만 유일하게 이종범이 이정후에게 개입한 것이라면 아들을 좌타자가 되라고 말한 것 정도라고 한다고 기존엔 알려져 있었으나 2019년 12월 24일 자 이영미 기자 인터뷰에 따르면 이정후가 먼저 물었을 때 한정해서는 세세한 자세교정은 조금씩 해주긴 한 것같다.팔꿈치가 들리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해줬다고... 기사.
- 아들 정후 뿐만 아니라 2013년 신인드래프트 때 NC 다이노스에 지명됐다가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된 외조카 윤대영도 현역 야구선수다. # 그런데 2018년 10월 이종범이 LG 트윈스 코치로 부임하면서 외삼촌과 조카가 한 팀에서 뛰게 되나싶었지만 조카인 윤대영은 음주운전을 저지르면서 사실상 선수생명이 끝났다.
- 아들이 친구와 장난삼아서라지만 김치녀 발언을 SNS에 적었다가 삭제한 적이 있다. 이를 안 이종범은 매우 화를 내며 정말로 때리기 직전까지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이정후가 언급했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굉장한 아들 바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도 여러 구설수가 있던 적이 있으니 아들은 자기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성애라고 보면 되겠다.
- 2010년 10월 30일(천하무적 야구단 2010년 11월 20일 방영분), 당시 유일한 현역으로 일구회 멤버로서 천하무적 야구단과의 뇌경색으로 쓰러진 기아 타이거즈 김동재 코치 돕기 자선 경기에 출전해 희생 플라이로 1타점을 올렸다. 천무단 멤버들이 전원 경악했다. 일설에는 정말 작정하고 올려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재미있는 선발투수가 2이닝도 못 채우고 강판되었고, 계속되는 실점에 천하무적 야구단에게 5점이나 뒤져 있었으니.[22]
-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 은퇴 기념으로 레전드 카드를 출시하였다. 기본 우익수 카드에 유격수로 듀얼포지션 훈련이 가능하다. 헌데 후에 추가된 블랙카드는 반대로 기본 유격수에 우익수가 듀얼포지션으로 나왔다.
- 은퇴가 발표되자 각종 논란과 루머가 들끓을 때 나온 은퇴 기념 불암콩콩 코믹스 #
- 일본에서의 프로 생활과 대학 생활만 제외하면 전부 광주광역시서 보낸 광주토박이[24] 였으나, 2012년 봄, 딸의 교육 문제 등으로 인해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였다. 엠스플에서는 간혹 現 거주지를 응용하여 '압구정에 살고 있는 이종범(46) 위원' 드립을 간혹 치기도 한다(...). 아들의 소속팀이 서울 연고의 넥센이고, 딸이 연세대에 다닌다는 점, 이종범 본인이 역시 서울 연고팀인 LG의 타격코치인 점을 감안하면 계속 서울에 살 가능성이 크다.[25]
- 빵 사건의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받았지만 은퇴 후 출연한 방송에서 스스로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오히려 누군가 빵을 먹는 걸 봤다면 체하지 말라고 마실 것을 줬을 거라고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빵 사건 범인에 대해 슬쩍 단서를 던져줬는데, 덕분에 이 사람이 진범으로 굳어져가는 분위기였으나 다시 한 번 반전이 일어나며 다른 용의자가 진범으로 밝혀지자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갔다며 까임 아닌 까임을 당했다.
- 프로야구매니저에서는 레전드 이종범 영입 재료로 8그룹에 박재홍과 기아 시절 마해영을 집어넣어 빵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이종범이 프로야구 매니저의 모델이 되었을 당시 한 GM이 공지사항에 이종범과 프야매 측이 모델 계약을 체결하는 사진을 올려놓고 거기다 보이십니다라는 드립을 쳐서 유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염경엽 SK 와이번스 단장과 김기태 KIA 타이거즈 감독[26] 과는 충장중학교 - 광주제일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데, 염경엽 전 감독은 인터뷰에서 1998년에 사망한 그의 아버지가 자신과 이종범을 많이 비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 김기태 감독과는 어린 시절부터 친한 형-동생 사이었다고 하니, 김기태가 그를 기아 타이거즈로 오라고 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 가는 수준.
- 이상하게도(?) 엠스플 해설위원으로 위촉된 이후에는 원형탈모(...)의 대명사로 밀어주려는 느낌이 강하다. 이석재 PD가 평하기를 '이종범의 활약은 원형탈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드립을 칠 정도.
- 2015 시즌 종료 후 뜬금없이 롯데 자이언츠 수석 코치로 들어간다는 꼴갤발 루머가 돌았다. 롯데 구단 측에서 이종운 감독을 성적 부진을 이유로 1년만에 경질하고 조원우 전 SK 와이번스 수석 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코치진도 개편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뭔가 그럴싸했는지 이 루머가 엠팍에까지 퍼졌다. 이렇게 이종범의 롯데 행 떡밥이 잠깐이나마 달아올랐으나 곧 루머로 드러남에 따라 금방 사그라들었다.
- 2016년 3월 20일 복면가왕에 날아라 병아리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원래는 판정단으로 참가하려다가 녹화 하루 전에 마음을 바꿔 복면가수로 참가해서 사랑의 불시착과 같이 장현철의 '걸어서 하늘까지' 를 불렀으며 조용필의 '기다리는 아픔'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참고로 그의 정체를 짐작한 시청자들은 방송에 나온 것을 반가워했고 가왕이 되길 바란 이들도 적지 않았으며 특히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1분에 10페이지가 넘어갈 정도의 엄청난 화력을 선보였다.] 그 뒤 4월 10일 KIA 타이거즈와 kt wiz의 경기 중계 때 오프닝으로 당시 썼던 가면을 착용하고 복면야왕으로 오프닝에 임해서 복면가왕처럼 음성변조를 했다.
- 2016년 7월 10일 베이스볼 투나잇 패널로 출연하여 '우리 기아"라는 말실수를 했다.
- 일간스포츠 김유정 기자가 아내인 정연희씨와 한 인터뷰에서 알려진 사실인데 한때 이혼설이 있었지만, 현실은 아내인 정연희씨가 개명해서 생긴 헤프닝.[27] 그 근거는 이 쪽이다. 인터뷰 2편.
- 해태 입단 당시 계약금 7000만원을 아버지께 드리고 본인은 버스타고 다녔다고 한다. 기사.
- 2017년 카스포인트 어워드에서 아들인 이정후의 노래에 춤을 췄다. 사실 이정후가 카스포인트 어워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 이종범이 춤을 추고 이정후가 남진의 둥지를 부른다는 공약을 했기 때문. 문제의 부자 공연 영상. 여담이지만 이 동영상이 2017 카스포인트 어워드 동영상 중 조회수가 가장 많다.
- 부자 금메달리스트이다. 아들인 이정후가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고 본인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 그것도 동일 종목이다.
- 광주광역시 토박이출신임을 감안해도 사투리가 굉장히 심한 편. 방송에서도 종종 사투리억양이 강하게 드러난다.
[1] 추신수는 곧바로 직행한 케이스므로 논외[2] 역대 KBO 기록으로 놓고 보는 것이므로 이종범의 일본리그진출을 언급한는 건 부당하다고 볼 수가 있다. 당시 최고의 타자였던 이종범조차 힘들어했을정도로 리그격차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걸로 당시 최고의 야수였던 이종범을 폄하하면 당시 KBO 타자들 기록역시 같이 폄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3] 역대 2위. 1위는 82 백인천[4] 역대 2위였으나 15 에릭 테임즈에게 2위를 헌납했다.[5] Baseball lab 기준.[6]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그냥 출루율만 봐도 강정호가 우위다.[7] 타고투저 시대와 타저투고 시대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위해서.[8] 수비율로만 판단한다면 수비범위가 좁은 선수가 오히려 수비에서 고평가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수비범위가 그 예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홍세완과 박진만.[9] KBO, Baseball Lab 및 구 스탯티즈 전부 포함 94 이종범이 단일 시즌 야수 WAR 1위인 건 똑같다.[10] 이국적인 외모로 오바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의 클럽하우스에 드나들 수 있었던 몇 안되는 기자였다. MBC 스포츠플러스의 메이저리그 중계에서 가끔 해설위원을 한다.[11] 안영명을 환영하는 선수들 사이에 끼어있다.[12] 김종국은 고교, 대학 시절 군기반장을 했지만 선배인 이종범이 구타 문화를 없애면서 폭력을 쓰는 일은 없었다.[13] 코미디언 정준하는 2011년 무한도전 '타인의 삶' 기획에서 이숭용과 역할을 바꿔 넥센 히어로즈 선수로 뛰면서 마침 녹화 당일 경기 상대였던 기아 측 식당을 방문했는데, 선후배가 뒤섞여 이야기를 나누며, 심지어는 팀 내 최고참(의 대역 정준하)에게 농담도 치며 식사하던 넥센 식당 분위기와는 정 반대로 대선배인 이종범이 혼자 독상을 하고 다른 선수들도 별 대화 없이 묵묵히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팀 간에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며 놀라워하기도 했다.[14] 이후에 서재응이 이홍구를 불러다가 갈구는 장면이나 얼차려 장면이 기사로 나가면서 여전히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탈피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15] 거꾸로 말해요 아하~ 시절[16] 지금도 일본 넷상에선 1대 한국의 이치로라면서 2대 한국의 이치로라는 이병규와 함께 고통받고 있다(...)[17] 대학 시절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평소 학내 축구부와 친분이 있었던 이종범은 야구부 연습이 없는 날 축구부 친구들과 주먹구구식으로 볼을 차곤 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축구부 감독이 '쟤는 야구분데 왜 축구하고 있지?', '볼은 좀 차네', '입학 정원 할당 때문에 야구부 가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야구부 감독에게 "이종범이 필요 없으면 우리 줘라"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에 대한 야구부 감독님의 답변이 "그럼 우린 뭘로 야구하라고"였다고...[18] 운동 선수들이 단백질 섭취를 한다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란을 소금조차도 없이 그것도 흰자만 주구장창 먹는 경우가 많다. 심정수가 몸을 키우기 위해서 그랬던 것으로 유명하다.[19] 실력이 높은 선수에게 과거의 시합 기록에 기초하여 더해주는 것.[20] 다만, 이건 강호동이 방송계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일부러 져주는 기믹도 감안해야 한다. 강호동이 현역 은퇴를 한지 오래됐고, 전성기만큼 근육량을 갖고 있지 않기도 했지만, 50줄을 넘은 나이인 지금도 여전히 다부진 몸과 괴력을 소유하고 있다. 일부러 허당이나 당하는 역을 많이 맡아서 그렇지 현역 스포츠 선수들과 정말 제대로 힘대결을 할 때 그들조차도 놀라서 긴장할 정도다.[21] 주니치 드래곤즈 소속 때 얻었다. 나고야 시에서 시즌 중 아들을 낳은 것. 그래서 주니치 팬들이 KBO리그에서 성공한 뒤에는 선수뎁스가 안습한 주니치로 오라고 하고 있다. 주니치 팬 반응. 이종범보다는 주니치 레전드 아라키 마사히로를 닮았다는 말이 많다.[22] 여기서 볼 만했던 것이 40년만에 투수로 등판한 그 분이었고, 포수가 김경문 이었다. 당시 두 사람의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름 재밌는 장면.[23] 오히려 몇 가지는 현역 선수들과 비교당해서 저평가되는 감이 없잖아 있다. 만화에서는 최훈이 90년대 이종범의 펀치력을 최진행급이라고 했는데, 데뷔 해인 93년을 제외하고 90년대 이종범 장타율이 최진행보다 높다. 주력이 이대형급이라는데 90년대 이종범은 방위로 풀타임 못 뛰었던 95년만 제외하면 wSB값이 거의 3~7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더 높다. 다만 주력의 경우 만화를 그릴 당시에 가장 빠른 선수가 이대형이여서 그 쪽으로 비교햇다고 할수도있다.[24] 광주동성고등학교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남구 진월동 한국아델리움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단다. 광주동성고 바로 맞은 편에 그 아파트가 있다.[25] 다만, 이종범 본인은 2군 코치인지라 이천시에서 선수단과 생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26] 참고로 두 사람은 충장중 - 광주제일고 동기동창인 절친이다.[27] 참고로 개명 전의 이름은 정정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