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식(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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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규식(鄭圭植)
일본식 성명
烏川圭植
자 / 호
선행(善行) / 효봉(曉峯)
본관
연일 정씨
생몰
1920년 11월 4일 ~ 1950년 10월 21일
출생지
경상북도 영천군 자양면 삼귀동
(현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1]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정규식(鄭圭植)은 1920년 11월 4일 경상북도 영천군 자양면 삼귀동(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에서 아버지 정연량(鄭淵亮)과 어머니 경주 김씨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38년 3월 임고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오사카공학교(大阪工學校)[2]에 입학하였다.
오사카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1년 8월 오사카 북구의 신문배달원 민춘기를 만나 민족 해방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고 민족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방편으로『한국근대정치사』·『삼민주의』 등 민족운동 관련 서적을 탐독하면서 쑨원삼민주의에 착안한 민족운동 전개를 목표로 삼아 조선 민중을 자각시키려는 노력을 했다.
1942년 8월 최문전(崔文典)이 민춘기가 일하던 신문점에 고용되자 그를 동지로 가담시키고 그해 9월 사쿠라노미야(櫻宮)공원에서 회합을 가지면서 "한국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중략)…한국 청년층의 의식 선봉분자를 결집하여 독립혁명의 중핵 모체가 될 비밀결사를 조직해서 내외에서 조국 독립에 정진하고 있는 동지, 그 중에서도 만주 지방을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독립군과 연락하고 일본이 대동아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한국 민중으로 하여금 독립혁명투쟁에 궐기시켜 일거에 목적을 완수해야 한다"는 근본 방침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동지 획득과 동포에 대한 지도 계몽을 당면 목표로 설정한 그는 오사카 지역 한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세계 정세와 한국 통치 문제를 설파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8월 대구사범학교에 재학 중 독립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던 서산옥제(西山玉濟)와 연락을 하고 그가 9월 초 오사카로 오자, 그와 회합하여 독립 혁명의 모체인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군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다가 발각되어 그해 10월 2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후 1943년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12월 10일 형기가 종료되어 출옥하였다.
이후 1950년 12월 21일 별세하였다.
사후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 인근의 용산리와 함께 연일 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전응팔도 이 마을 출신이다.[2] 현 오사카공업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