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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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허봉학(許鳳鶴)
이명
허옥(許鈺)
생몰
1917년 2월 11일 ~ 1995년 5월 21일
출생지
제주도 제주군 제주면 삼도리
사망지
경기도 인천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허봉학은 1917년 2월 11일 제주도 제주군 제주면 삼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 아일랜드인 선교사 패트릭 도슨과 함께 중일전쟁 이후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깊게 관찰하는 한편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이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는 중일 전쟁의 발발로 일제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모슬포 일본 해군 비행장의 군사시설을 관찰하는 등 1938년 이후 일본군의 군사상 비밀을 탐지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모슬포 비행장에 지하 격납고가 있어 비행기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우도(右島)에 설치된 해군무전시설 내용 등 군사비밀을 캐내어 손신부를 비롯한 천주교도들에게 알려 주는 한편, 정전(停電)이 잦은 것은 일제의 전쟁물자 동원에 따른 중유의 부족현상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상기시키면서 항일의식을 고조시켜 갔다.
1941년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벌인 후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천황을 풍자하고 조롱하거나 야유하는 발언을 했다. 1941년 12월, 그는 패트릭 도슨의 집에서 동지들에게 “일본이 한국인에 대하여 지원병을 모집하게 될 것이고, 그 수가 매년 3천여 명에 달하게 되면 그 가운데 민족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지도하여 지원병들을 단결시켜 봉기하면 독립 달성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역설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군기보호법(軍機保護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그리고 소위 육군형법(陸軍刑法)·해군형법(海軍刑法)에 의해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인천으로 이주해 가톨릭 포교를 지속하다 1995년 5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허봉학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