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무처
1. 개요
2. 역사
3. 제복
5. 조직 및 차량
6. 평가
6.1. 외국인에게 친절한 경찰
6.2. 친정권 성향
6.5. 병원의 진료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백도어의 악용
6.6. 홍콩 경찰에게 반체제 시위대는 그저 바퀴벌레일 뿐
6.7. 홍콩의 반정부 성향 구민의 가라않지 않는 분노
6.8. 경찰을 일컫는 속어
6.9. STS/특별전술소대
6.10. 엠네스티의 보고서
6.11. 불심검문
7. 반정부 구민의 홍콩 경찰 신상털이
9. 수사권
10. 홍보
11. 매체에서의 등장
12.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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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특별행정구의 경찰 조직으로 정식 명칭은 홍콩 경무처이다.[4]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지휘를 받으나 중국 공안부 소속은 아니며 본 기관의 전신 또한 영국 해병대의 현지 치안유지 활동에서 기원이 시작되어 분위기 및 제복 등의 특징에서 중국 공안과는 다르다. 영국 경찰의 조직 및 지휘체계, 문화 등 많은 모습을 가져와 제복부터 이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며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후에는 중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미국에서 받아들인 요소도 꽤 많다. 당장 새로 창설한 대테러부대인 CTRU도 뉴욕 경찰 대테러 초기대응반 허큘리스 팀의 영향을 받아 창설하였다.
현재 홍콩 경무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과 그 하위기관인 홍콩중국연락판공실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지휘를 받으며 움직인다. 반환 이전에는 총독부를 통해 영국 내무부가 지휘했다. 정확히는 현재 홍콩 내무부 역할을 하는 보안국이 중국연락판공실을 통해 중국 공안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 홍콩 정부의 명목상 실권은 행정장관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이 영국 시절의 총독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단지 국무원이 베이징에 있어 홍콩에 실재하는 행정장관이 사실상 사무를 위임받을 뿐이다.
비록 2020년 5월 홍콩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지만 조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원래 반환 이전에는 영국 내무부가 총독부를 통해 지휘했고 1997년 반환 후 조직이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로 재편되면서 중국연락판공실과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지휘를 받아왔는데 이것이 명문화되었을 뿐이다. 플러스로 그간 주권국가가 아닌지라 따로 보유하지 않고 본국인 영국과 중국에 의지했던 대외 정보기관도 설치될 예정이며 국가안전법 집행을 위한 국가안전처도 창설되었고 국가안전 부처장직이 신설되었다.[5]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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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영국령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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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경찰의 시작은 아편전쟁 때 홍콩 섬을 점령한 영국 해군 육전수병 즉 해병대에서 유래했다. 1841년 센트럴에 상륙한 영국 해군 수병들이 해안선에 요새를 설치해 화포를 배치, 방어에 나서는 한편 육전수병들이 점령지 질서유지에 나선 것이 기원이다.[6]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 시기 왕립 홍콩 경찰(Royal Hong Kong Police, 香港皇家警察)을 두었고, 이 경찰 조직은 최초에는 인도 출신의 시크교 신자들을 고용했으며, 식민지로 파견된 영국 해군 장교들이 간부를 맡았다.
그러다 구룡반도와 신계 등 육지 부분까지 할양되어 영국의 홍콩 영유권이 확실해진 이후 중국인 경찰관을 선발하기 시작했으며, 소방 업무와 구급 업무를 맡는 홍콩 소방처가 경찰에서 분리되어 별도 조직이 되었다.
이 때 해안경비대 역할을 하는 수상경찰(水上警察)과 일반 경찰과 갈등이 있었고 영화 <프로젝트 A>[7] 에서 다루기도 했는데, 당시 해적들이 남중국해에서 깽판치고 다녀서(...) 해안경비대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 해군이 홍콩에 주둔하며 해적을 소탕하곤 했지만 한계가 있었고, 현지 바다를 잘 아는 중국계 경찰관들이 단속을 한 뒤에야 해적들의 횡포가 잦아들었다. 대략 1900년대 초에는 그 흔하던 해적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광동 앞바다가 툭하면 해적들이 나타나던 곳임을 생각하면 이는 홍콩 경찰의 첫 쾌거다.
2.2. 일제 강점기
1941년 일본군의 군국주의적 침공은 중화민국을 넘어 홍콩까지 들이닥쳤다.
1차 영일동맹으로 홍콩의 영국 영유권을 보장한 일본은 갑자기 이 동맹을 일방 파기하고 육군 병력과 해군 육전대로 광둥 성에서 홍콩으로 국경을 넘어 쳐들어 갔다.
영국군은 이 기습에 소수의 해병대 및 수병을 포함한 영국 해군, 식민지 인도 제국 용병대나 캐나다군 및 중국인 수비대로 구성된 역시 1개 사단 급의 소수인 육군만으로 중요한 식민지인 홍콩을 지키려 했으나 역부족으로 방어선은 일본군 해군의 육전대의 홍콩 섬 상륙과 일본 육군의 국경 돌파로 간단히 뚫려버렸다.
이 때 법관 출신이던 홍콩 총독은 일본군의 위세에 겁을 먹고 침사추이 소재 페닌슐라 호텔에서 194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 촛불을 켠 방에서 영국 해군 장교 예복 차림으로 일본군 남양군도 원정대 총사령관인 야마시타 토모유키 장군에게 항복해 홍콩은 일본 점령지로 전락한다.[8]
일본군의 점령 이후 군정 기간 중 당연히 포로로 잡힌 영국군과 현지 영국인과 중국인 등 홍콩 시민들은 고초를 겪었다.영국인 남자들은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으며, 여자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중국인들은 툭하면 감시나 당하고 2인 이상 못 모여 다니게끔 했으며 일본군은 스타페리와 홍콩 트램 좌석 중 백인에게만 허락되던 2층에 앉아 위세를 부렸다.
기독교 교회 또한 전부 폐쇄 조치했는데 기독교 교회들이 저항의식을 선동한다는 이유였다. 당시 성공회 본부교회 역할을 하는 세인트 존 대성당[9] 의 경우 일본 육군 장교클럽으로 전락했으며 일본군은 절대 손으로 그것도 비신자가 먹으면 안 되는 성체를 마구 집어먹는 신성모독을 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군과 함께 저항세력의 한 축이던 경찰은 해체되어 일본의 헌병들이 이 역할을 대신했고, 소방처 역시 해산, 일본군 헌병들이 역할을 대신했으며 일본군 헌병대는 공포 정치를 펼쳐 저항을 난폭하게 억눌렀고 이 시기는 홍콩의 흑역사가 된다.
그래서 이 짧은 일제강점기 탓에 홍콩은 친일 성향이 있는 대만과 달리 반일 감정이 은연중에 있다. 어느 정도냐면 문화는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일본으로 여행도 자주 가며 일본산 브랜드도 흔하지만 막상 역사로 언급이 나오면 날을 세우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대만과는 달리 욱일기는 일식집에서조차 함부로 걸기 힘들다.[10]
이 시기 경찰관들은 중국인들이 조직한 항일 게릴라에 합류해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거나 영국군을 따라 호주로 후퇴한 후 훗날을 기약하며 대일 항전을 지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중국본토의 항일 의용군이나 국부군에 합류하는 경찰관들도 많았다. 홍콩의 호국경찰 시기인 셈인데 실제로 많은 경찰관들이 이때 전사하거나 부상당하고 포로로 잡혔다.[11]
2.3. 다시 영국령으로
1945년 일본이 패배한 후 영국은 홍콩을 수복했으며 왕립 홍콩경찰도 재조직되었다.
2.3.1. 67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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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는 구룡반도 침사추이, 조던, 야우마테이, 몽콕, 자운산 일대에서 대규모의 반영 공산폭동이 일어났다. 일명 67폭동으로 중국 공산당이 사주한 폭동인데 어이없게도 원인이 스타페리 요금을 조금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기라 사람들이 중국의 문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데다, 아직 중국이 개방 안 되던 죽의 장막 시절인지라 문혁의 실상에 대해 대부분 무지했고 홍콩인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이 영국의 식민지이자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했다. 그래서 문혁을 따라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중국 공산당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1967년 한 해 동안 격렬한 폭동이 벌어졌다. 상점이 약탈당하고 멀쩡한 건물에 방화를 하거나 폭도들이 밤만 되면 강도 패거리로 변하는 일까지 비일비재했다. 그 때는 아직 홍콩 경찰에 경찰기동대 같은 조직도 없어 일반 순찰경관들이 나무 방패와 진압봉 등을 들고 나가 진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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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결국 영국령 홍콩 총독부은 보다 못해 경찰에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하는 '''긴급법'''[12] 을 적용했으며 1968년 이후 급속히 정국이 안정되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14]
경찰은 67폭동의 진압 이후 전술부대의 필요성을 느껴 1968년에는 다중범죄 진압과 무장강도 등 특수범죄 제압, 주요시설 경비를 맡는 경찰기동대 PTU가 창설되었고, 1974년에는 대테러부대로 SDU[15] 라는 경찰특공대가 조직된다. 이들 신설 비호대원들은 영국군 SAS에서 교관까지 모셔와 최고의 대테러 기술을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무법 천지였던 구룡성채를 때려 잡는가 하면 홍콩 마피아인 삼합회도 PTU와 함께 때려 잡아서 1990년대 이후 삼합회는 세력이 위축되어 버렸다.
2.3.2. 염정공서의 설치
1974년에는 염정공서가 들어서 부패 수사를 전담하면서 기존 부패로 악명높던 경찰 조직에는 사정의 칼바람이 분다. 서슬 퍼런 감찰에 소위 말하는 '''차 값''' 즉 뇌물 받아 챙겨먹으며 잘 살았던 경찰 간부들 대부분이 나가 떨어져 버렸다. 이때 경찰관 총원의 절반 이상을 '''해고''' 한 후 감옥으로 보내거나 직위해제 조치하고 그 자리엔 20대와 30대의 젊은이들을 불러들여 제대로 된 미국식 경찰교육 후 경찰관으로 임용한다. 그리고 미국 등에서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느와르 영화의 단골소재였던 부정부패는 1979년 무렵이면 완전히 사라진다. 진정한 질적 선진국이 된 것이다.
2.3.3. 과거 식민지에서 항인치항으로
한편 홍콩반환협정이 체결된 1985년 이후 영국은 왕립 홍콩경찰 경무처의 처장 자리를 중국인 경찰간부들에 오픈한다. 원래는 처장만은 백인만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89년 12월부터는 백인 대신 홍콩인 처장이 부임하기 시작한다.
2.4.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
1997년 7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후 홍콩 특별행정구가 설립되어 왕립 홍콩경찰에서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로 바뀐다. 이 때 문장도 홍콩의 특구화인 자형화[16] 로 바뀌며 문장 배경도 과거 한적한 어촌에서 고층빌딩이 즐비한 현재 홍콩의 모습으로 바꾼다.
2014년 발생한 홍콩 우산 시위 당시 진압 작전을 펼쳐 시위대와 충돌해 욕을 먹기도 했다.
2016년 홍콩에서 열리는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 참석한 북한 고등학생이 한국 영사관을 통해 탈북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탈북자 대처에 대한 논의를 거쳐 지금은 탈북자가 나올 경우 북송하지 않고 신변 보호 후 한국으로 보낸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경찰은 또 한번 이미지가 폭락했다. 우산혁명 후 이미지가 나빠진 것을 끝내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중국 정부와 친중파들은 경찰에 대해 거침없는 신뢰와 사랑을 보낸다.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당시 '''홍콩경찰 제복을 입었으나 가짜 배지를 착용하고[17] , 광동어 대신 표준중국어로 대화하는 괴한'''들이 홍콩 시민들을 진압했다는 목격담이 시민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 빈과일보 등에서 중국 본토와 홍콩의 국경을 몰래 넘는 군복 차림 남자들의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이른바 '''중국 경찰의 홍콩 경찰로 신분 세탁설'''이 그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경무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해명했다. #.
그리고 이 주장은 지속적으로 경무처가 해명했으며 현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쉰 떡밥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면에서 의구심이 남는 건 사실이다.[18]
중국 경찰의 홍콩 잠입설을 총 정리한 기사.
이 기사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된 엉터리 번호를 적은 가짜 배지 외에도 경찰관들이 서로 표준중국어를 썼단 증언도 있었다. 홍콩에선 절대 쓰지 않는 표현인 '''동지들(同志们)'''라는 호칭으로 불렀다는 증언[19] 과 일반적인 홍콩 경찰과 다른 모양인 중국 경찰이 취하는 진압자세인 '''기마자세'''를 취하며 봉술을 구사했단 증언 등이다. 이런 증언들을 종합해 볼때 적어도 시위를 벌이던 기간만은 보조경찰로 광동 성 소속 무경대원 일부를 몰래 홍콩경찰에 합류시킨 것만은 사실로 봐야 할 듯 하다. 실제로 시위를 독하게 하던 2019년 당시 경찰들은 대게 국방색 전투복에 복면, 방독면까지 착용해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엉터리 배지가 논란이 되자 쌈빡하게 '''PTU와 휘하 체포조 STS 대원의 배지와 명찰을 없애버리기까지 했다'''.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 번호판을 단 구급차가 시위 현장에서 목격되기도 했다든가 중국 인민해방군 군용트럭이 시내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이들이 주홍콩부대 소속인지 선전에서 홍콩으로 침투한 것인지는 불명이라는 소문도 있었으나 이들은 시위와 무관한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으로 모두 구룡반도 조던 지역에 있는 중국군 통합병원 및 카우룽통 소재 육군부대 등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되었다.[20] 사실 천안문 사태 이후 현역 인민해방군을 절대 시위진압에 투입조차 안하는 중국이 굳이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을 시위진압에 투입하는 모험을 할 리 없었다.[21]
홍콩경찰에 중 무장경찰 투입설…"정체불명 남성들 본토서 넘어와" 목격담.
중국 공산당의 관제를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폭력배들이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데 경찰관들이 30분이나 지나서야 출동했다는 기사까지 나왔는데 이 때 폭력배들 사이에 중국 무경부대원들이 있었던 것으로 강하게 추정된다. 경찰의 소극적 대응도 그래서 설명 가능한 부분이다. 윈롱에서는 이 사건 직후 무경부대 장교 군모가 있던 주인 없는 렉서스 승용차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리고 단순히 동네 폭력배들만이라 보기에는 너무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현재 이 사건은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하자 구의회에서 재조사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실제로 시위를 벌이던 2019년 여름 간 진짜로 중국 무장경찰대원들이 민간인으로 변장하고 밤중을 틈타 몰래 넘어온 후 절반은 보조경찰 모집 때 몰래 홍콩경찰에 합류하고 나머지 절반은 각각 윈롱역 사건 같은 백색테러를 벌이는데 써먹거나 시위대로 위장시켰다고 보면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2019년 8월 31일 시위에서 무려 '''글록 권총을 차고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 참가자'''가 찍혔는데 중국과 홍콩 둘 다 이에 대해 해명조차 없었다.[22]
어쨌든 이래저래 중국경찰의 홍콩 잠입설이 자꾸 나돌자 홍콩 정부는 2019년 11월 교도소를 관리하는 징교서 소속 경비교도대원들과 이민국 소속 특수기동대원 등을 보조경찰로 채용해서 경찰 인력을 증강하였으며 이후 이러한 중국경찰 잠입설은 쏙 들어갔다.
경찰 내에서도 무능한 홍콩 정치권에 대한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본토의 입김이 커지면 커질수록 홍콩 경찰의 자율권은 위축될 테니 경찰관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마음에도 안 드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신들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정치인들이 마음에 안 들 법도 하다.
즉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기점으로 가뜩이나 나빠졌던 홍콩경찰의 이미지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셈이다. 아예 중국과 홍콩의 차이를 설명할때도 '''경찰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라고 에둘러 깔 정도니 말 다 했다.
'''강철 주먹'''으로 불리는 초강경파 크리스 탕은 2019년 11월 총파업 때 용무파라 불리는 과격 시위대를 토끼몰이해 홍콩이공대학에 가두는 신종 전술을 써서 간단하게 과격시위를 무력화시켜 버려 악명을 떨쳤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졸지에 갇혀버려 물도 없고 식량도 없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탈진하는 극한 상황에 몰린 것이다.
이때 경찰은 과격 시위대 일부가 양궁까지 꺼내서 쏘는 등 격렬히 저항하자 굳이 캠퍼스에 진입하기보단 캠퍼스를 봉쇄해 가둬서 말려죽이는(!!!) 고립 포위를 택했고, 대부분 갓 대학에 온 신입생이거나 10대 어린아이들이었던 과격 시위대는 결국 현실적인 공포를 못 이기고 용무파고 뭐고 전의를 상실해 투항했다. 처음에는 홍콩과 함께 타 죽겠다고 큰소리치다가 나중에 막상 고립되고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경찰의 기습이라는 현실적인 공포를 마주하자 제발 집에 보내달라고 울부짖을 정도로 정신이 붕괴되었다. 그리고 활이나 화염병 등 살상무기에 대해서는 헤드샷을 날리겠다고 엄포했고 실제로 SDU 저격수들과 장갑차까지 배치됐으며 장갑차에는 M16 돌격소총을 거치했다. M16은 자동소총이라 산탄총과 달리 실탄을 주로 사용하고 고무탄 어댑터#]]는 장비되지 않은지라 명백히 과격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최악의 경우 '''전원 사살''' 조치에 들어가려고 했다고 봐야 한다.
이때 과격 시위대도 진짜로 군용 자동소총이 나오자 당혹해하고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이미 미칠대로 미쳐버린 경찰이라 실제로 과격 시위대 몇 명 쯤은 헤드샷 날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였는데다가, 그리고 거기에 현실적으로 물과 전기, 식량도 없고 12월이 되어가며 기온까지 떨어져 가는지라 탈진 등 환자도 많이 발생하는 통에 대부분 전의를 잃고 항복했다.[23]
이렇게 강경 오브 초강경 진압을 펼친 크리스 탕은 두고두고 예비 살인자라는 욕을 먹었으나 친중파 진영과 중국 정부는 무한의 신뢰를 보냈다.
중국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시사잡지 환구인물은 '''홍콩 경찰을 201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이후로는 별다른 사고는 치지 않고 뒷북으로 이래저래 폭력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하거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일명 코비드 감염에 대응하며 방역에 협조하는 등의 모습으로 이미지 세탁에 노력하고 있다.
한편 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형사대나 순찰대 등 민생치안에 투입해야 할 경찰 전원이 시위진압에 투입되고 경찰이 시위진압에 정신 팔린 틈을 타 도둑이나 강도 등 잡범들이 기승을 부리자 2020년 3월부터 형사들과 순찰경관 전원을 원래의 순찰임무로 원대복귀시켰고 PTU대의 야간 3인 1조 거리 순찰도 재개했다. 경찰이 시위진압에 정신 팔려 치안공백이 생겼다는 비판이 친중파들에게까지 나오는 등 질타의 대상이 되었는지라 원래 폭동진압 경찰인 PTU만 남기고 나머지 경찰 전원을 원대복귀시켰다.경찰 범죄 해결률 37%, 19년래 최저 수준. 3월부터 시위 진압 경찰관 본업으로 재배치 예정
2.4.1.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지휘권 명문화
2020년 5월 29일, 전날 5월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가결시킨 홍콩 국가보안법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가 홍콩 경찰의 법집행 및 질서 유지를 돕겠다고 천명하였다. 기사
사실 홍콩 경찰은 영국령 홍콩 시절에는 총독부를 통해 영국 내무부의 지휘를 받았고[24] 반환 후에는 중국연락판공실을 통해 중국 공안부의 지휘를 받는다. 그래서 2019년 선전시에서 홍콩 관련 대책은 시진핑 주석이 늘 공안부장을 배석시켰다. 홍콩 경찰의 지휘권은 엄연히 중국 공안부의 관할이었다. 홍콩 경찰이 중국 공안부에 편입된다고 잘못 알고 있던 위키니트들이 있었는데 중국 공산당의 변명이 아니고 진짜로 홍콩 경찰 자체는 엄연히 다른 조직이며 단지 중국 공안부의 지침을 받을 뿐이다. 중국 공안부가 내리는 지침은 중국 국무원 홍콩연락판공실을 통해 내려온다.
민주파는 중국 공안부의 지휘권이 명문화되면서 홍콩 독립운동이 위축되고 외국과 연락하는 민주파 인사들이 탄압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예로 데모시스토 등 미국 정부와 친한 민주파 단체들이나 독립운동 성향의 본토파의 경우는 대놓고 탄압을 받을 구실이 충분하다.
이는 지휘권 명문화인지라 조직 자체가 변화되는 건 아니다. 단지 원래 하고 있던 것을 법적으로 명문화한 건데 민주파의 우려는 이러한 만큼 더 노골적으로 반정부 인사 탄압이 가능해졌다는 것과 무소불위의 권력이 경찰에 주어져 경찰국가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중국은 홍콩의 경제자유를 스스로 강조하는지라 일국양제 지속을 계속 언급하지만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태도가 달랐다. 과거 좋았던 시절인 장쩌민이나 후진타오 때는 정치적 자유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시진핑 대에 들어서 1인 독재를 시도하며 정치적 자유는 되려 본인의 1인 독재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이게 반발을 불러오는 판국이다. 특히 보안법의 경우 시진핑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이로 인한 경제난으로 실각 일보 직전까지 몰리자 일종의 출구전략을 편 면이 강하다.
암튼 일국양제에 대해서 중국은 '''50년 불변 원칙은 이미 끝났으며, 중영공동선언은 역사 속 일일 뿐이고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31조 상 특별행정구 지위가 일국양제의 근거일 뿐이다. 즉 일국양제보다 더 좋은 건 없고 바꿀 생각도 없다'''며 중국화된 일국양제를, 서방은 중영공동선언은 아직 유효하다며 중국화된 일국양제를 일국일제로 평가하며 해석의 차이로 갈등이 벌어진다고 봐야 한다.[25]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경무처 본부에 국가보안국이 새로 생겨서 홍콩 독립운동, 테러 활동 등에 대한 단속 및 첩보수집 그리고 수사 등을 벌인다. 특히 홍콩 독립운동과 과격 시위 등이 주 타깃이며 중국 국적 홍콩인은 물론 영국 국적 홍콩인과 비거주 외국인 등도 과격시위에 참여하거나 홍콩 독립운동에 가담할 시 처벌된다. 삼합회도 이 덕에 활동에 큰 제약이 걸려버려 다시는 설치지 못하게 되었다.[26]
2.4.2. 중국의 영향
홍콩 경찰학교가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단으로부터 (이전에 도입한) 영국군식이 아닌 인민해방군식 제식을 교육받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제식의 도입은 2023년 예정.#
3. 제복
3.1. 근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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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비간부 경찰관의 근무복 및 모자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많이 접하는 근무복과 모자, 점퍼는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답게 영국 경찰의 그것에서 컨셉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순경-경사 급 비간부가 착용하는 근무복으로 모자는 원래 영국 경찰처럼 정모와 근무모를 겸용하다 2010년대 이후 활동이 편한 야구모자 형태 기동모를 도입하고 정모는 정복이나 예복 차림일 경우에 착용한다. 특히 견장과 색배열이 영국 경찰관들과 거의 동일한데 견장걸이를 사용하고 숫자가 부착된 커다란 견장은 런던광역경찰청 경찰의 특징 중 하나이다. 참고로 싱가포르 경찰청도 비슷하게 복제가 구성되나 이쪽은 열대라서 점퍼 없이 하복만 있단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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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용 흰색 근무복이다. 사진의 경찰은 전 경무처장[27] 스티븐 로.
경위 이상 간부급의 경찰은 근무복이 따로 있는데 하늘색만 흰색으로 바꾼 옷이다. 안 그래도 영국 경찰과 비슷한데 이 경우는 완전 판박이다. 과거에는 이 흰색 근무복은 경정 이상 고급간부만 착용했고 그나마 내근직이거나 회의, 행사 등이 있을 때만 착용했다. 현재에도 이 옷은 고급간부 이상만 착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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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에 출현한 유덕화로 2002년이 배경이라 복제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복 역시 영국 경찰과 비슷하나 영국 경찰과 완전히 똑같은 싱가포르 경찰의 정복과는 달리 옷깃에 부착하는 조형물 등은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최신 정복과 사실 더 비슷하다. 다만 시기 상 이쪽이 먼저다.[28] 한때는 동계 근무복으로 입던 적도 있었다. 진짜다.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를 보면 배경이 12월이라 나온다. 이 옷은 1980년대 일본 경찰 동복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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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 콜드 워 2의 곽부성. 여기서 팔에 붙인 완장은 경찰관들의 장례식 때 착용하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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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안의 제복 모방이 질렸는지 최근 정복은 싱가포르 경찰처럼 아예 영국 경찰 정복과 더욱 비슷하게 보이는 방향으로 개정된 듯 하다. 사진은 새 홍콩 경무처장 크리스 탕.
추가로 비간부급 경찰은 제복을 입을때, 흰색 셔츠를 입고 거의 아무 장식도 달지는 않는다.
위의 크리스 탕 경무처장의 옷깃에 붙여진 것은 런던광역경찰청의 경찰 최고 간부만이 착용하는 카라장인데 조리처장~고급조리처장은 꽈배기 모양, 부처장급이상은 월계수 모양으로 된 것을 붙이며 이 검정색 카라장은 총경사[29] 급 고위간부도 착용한다. 총경사는 작대기 하나를 붙이며 근무복에도 붙이고 다닌다.
그리고 위에 유덕화의 제복에 붙여진 카라장은 경서경장[30] 급 경찰간부에서 고급경사 급 경찰간부들이 정복에 착용한다. 이전의 왕립경찰의 구형 카키색, 올리브색 근무복에도 달고 다녔다. 크리스 탕 경무처장 또한 간부후보생 출신이었기에 입직 당시 찍은 사진에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제복의 견식줄 또한 호각줄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 저 호각줄의 색갈이 각양각색인데, 주로 검정색을 많이 사용하며, 특히 경찰기동대(PTU대)나 작전처 소속 경찰관들은 혼합색 호각줄을 패용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약장의 패용갯수 또한 타국 경찰들과 비교해서도 적은데 홍콩 경찰은 왕립경찰 때 많은 약장과 훈장을 수여받았으나 현재는 많아봐야 거의 3개 정도고 예전엔 거의 8개까지도 패용했다. 간부들이 주로 달고 다니는데 비간부들은 경장은 돼야 받는 듯 하다.
3.2. 기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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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자주 보게 된 기동복의 경우 사실 영국 식민지 시절 하계 근무복이 모체로 그 시절엔 특유의 연한 올리브색 베이스에 반바지(...)라는 괴악한 센스를 자랑했다.[31] 당시 영국령 홍콩 왕립경찰의 근무복은 올리브색 상/하의로 된 하복과 흰색 와이셔츠와 네이비 블루 색상의 자켓, 그리고 네이비 블루 색상 바지로 된 동복으로 나뉘었는데 모자는 따로 기동모가 없이 정모를 근무 시에도 착용했으며 홍콩의 덥고 습한 기후 상 특이하게도 하복을 반바지로 한 것이다.
이 구형 근무복은 반환 이후에도 한동안 경찰 제복이 개정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여락 등 식민지 시절의 홍콩 영화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제복이기도 하다. 2004년 이후 교체에 들어가서 현재는 근무복으로선 폐지되었고 현역 기동복과는 전반적인 디자인이 유사하나 색상이 조금 다르다.
참고로 이 국방색 기동복은 경찰학교 생도들의 훈련복으로도 사용된다. 저 검은색 베레모는 가끔 하늘색 근무복에 함께 착용하는 사진이 보이기도 한다. 2020년에 접어들면서 시위가 동력이 꺾이고 과격시위대 용무파가 국가보안법 통과로 소탕되면서 이제는 다시 시위진압 때 기동복이 아닌 근무복을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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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복과 올리브색 기동복만큼은 아니지만 GIGN의 전투복 색상과 비슷한 군청색의 기동복 역시 실전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3.3.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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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경찰 의장대처럼 행사용 예복도 따로 있는데 매년 7월 1일에 열리는 홍콩 국기 게양식에서 보이기도 한다.[34] 위 사진은 하계용 예복이며 그 디자인은 영국 육군의 하계용 예복과 동일하다. 여기서 상의가 흰색에서 군청색으로 바뀌면 동계용 예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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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라우 전임 경무부처장 역시 2018년 12월 퇴임식에서 착용했다. 예복을 입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행정장관과의 만남이나, 홍콩 반환 기념일 또는 취임 및 퇴임식에서 착용을 하며, 간부급 경찰만 착용이 가능하다.
이런 예복은 원래 왕립 홍콩경찰의 근무복으로 사용되었는데 1960년대 무렵부터 넥타이 형식의 제복을 입게 된다. 지금은 각종 장식과 훈장을 착용하여 고위간부들이 입는 예식 복장으로 탈바꿈하였다.
4. 계급[35]
홍콩 경찰의 계급체계는 영국군[41] 을 그대로 본떠서 제복 색깔과 군번에 해당하는 경찰번호 유무 등으로 신분을 구분한다. 장교급에 해당하는 간부급 경찰관은 흰색 제복을 입고 경찰번호가 생략되는 반면 우리나라의 순경-경사급 내지는 영국군 사병에 해당하는 경원-경장급은 푸른색 제복을 입고 경찰번호를 붙여야 한다. 경원의 경우 계급장 자체가 없다.
홍콩 경찰의 계급명칭은 영어/중국어로 되어 있으며 영어 표기는 원조인 영국 경찰이나 미국 경찰, 호주 연방경찰, 싱가포르 경찰청 등과 비슷하고 중국어 표기는 같은 중화권에서 쓰는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중화민국 경정서, 마카오 경찰과 같다. 경원이나 독찰 등의 표기는 청나라 말기 광서제의 변법자강운동으로 기존 주방 팔기군을 근대적 경찰로 대체하면서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며 이후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들어서자 정식으로 널리 쓰이게 됐고 중국 공안과 대만 경찰이 둘 다 계승했다.
크리스 탕 문서의 사진을 보면 계급장이 가려져 있지만 크리스 탕은 경찰 입직 당시부터 견습독찰이었다. 대졸자들의 경우 경찰간부후보생으로만 입직하며 간부후보생 출신이 일본의 커리어조처럼 승진을 꽉 잡고 있어서이다. 일본 경찰의 간부후보생인 커리어조가 승진을 꽉 잡고있듯 홍콩 경찰도 그런 경향이 있다. 이는 대졸자=장교후보생인 원칙에 따라 장교급인 홍콩 경찰간부는 대졸자는 입직 초기부터 간부후보생으로 입직이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면 그 외에는 영미권 경찰들이 다 그렇듯 순경부터 입직이 원칙이다. 스티븐 로 등 전임 경무처장들도 모두 간부후보생 출신으로 입직했고 대게 현장에서 구르는 순경 출신들은 국장급 정도면 많이 올라간 것이다. 그나마 1989년 이전에는 최고위 간부는 영국인만 할 수 있었으며, 간부후보생으로 입직한 중국인 대졸 경찰관들도 처장 등 고위직으로는 못 갔다가 피터 고드버 사건 이후 문호가 개방되었다.
입직경로와 승진 상한선 등은 대한민국 경찰청이나 일본 경찰과 동일해서 경위급인 독찰급 경찰관들은 대졸자를 대상으로 한 간부후보생으로 입직하며 한국의 경찰대나 일본의 커리어조처럼 이쪽에서 고위직을 거의 독식한다. 그리고 한국의 순경, 일본의 순사급인 경원[42] 계급부터 들어온 경찰들은 최대 일본의 순사부장에 해당하는 경서경장 계급까지 진급할 수 있다. 일본 경찰만 해도 비간부 출신들은 순사부장이 최대 상한선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좀 노력하면 경부를 다는 정도다. 당연히 경시총감 등은 커리어조만 독식한다.
물론 상위계급으로 진급할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40대 후반~50대 나이인 현장직의 비간부급 경관들은 해당 계급장을 달고서 시위진압에 참가하거나 순찰을 도는 등의 모습이 자주 포착되며, 장기수배자를 체포하는 등의 공로를 세우는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경서경장이 최대 상한선이다.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만 봐도 일본의 경부급 계급에 해당하는 형사반장 동표는 나이가 꽤 있는 반면 간부후보생으로 입직한 서장은 나이가 젊어서 서장이 오히려 반장을 어려워 한다. 그리고 무간도의 유건명[43] 은 순경으로 입직한 일반직 출신이었으나 삼합회를 때려잡으며 진영인[44] 을 감옥에 쳐넣은 덕에 고속승진하여 30대에 형사반장이 됐다.
5. 조직 및 차량
- 경무처장(CP)
- 작전부청장(DCP OPS)
- 행정부청장(DCP MAN)
- 인사교육부
- 인사관리단
- 인적자원부
- 환경규율부
- 홍콩경찰학교
- 인사관리단
- 운영지원부
- 정보화기술단
- 양질근무단
- 재무기획부
- 행정관리단
- 재무관리단
- 기획개발부
- 인사교육부
- 국가안전처장(DCP)
경무처 산하에는 경찰기동대인 PTU가 장갑차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PTU 휘하에는 다시 대테러부대인 SDU, 대테러 초동조치 부대인 CTRU, 그리고 일명 '''랩터부대'''라 불리는[45] STS라는 시위진압 체포조 부대를 보유한다. STS는 한국경찰이 과거 운용하던 백골단과 같은 과격 시위대 검거 역할을 하며 SDU, CTRU, ASU, PTU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는 우수한 기동경찰들만 여기 배치한다. 이 부대는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후 대규모 시위에 대비해 창설했다.
해안경비대인 수경(水警) 즉 해양경찰대도 경무처 예하부대로 해양경찰 사령부는 홍콩 섬 남부 에버딘에 위치하고 경비정과 함께 고속정 및 고속단정을 다량 보유한다. 고속정 및 고속단정에는 해경 기동대원들이 탑승하며 밀입국 선박이나 마약/ 무기 운반 등 범죄에 사용되는 것이 의심되는 의아선박, 그리고 홍콩특별행정구 영역 내로 넘어오는 전마선 등을 붙잡아 검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타국 해안경비대들처럼 해상사고 발생 시 구조업무도 이들 몫이며 잠수부가 필요하면 홍콩 소방처 심해잠수팀에 도움을 요청한다.
대한민국 경찰청 본청에 해당하는 경찰본부에는 여러 부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서가 미국의 FBI처럼 국가안보 관련 특수수사 기관으로 있는 국가안전처이다. 2020년 7월 국가안전법 제정으로 경찰의 직속 수사기관을 신설하기로 하였는데 이게 국가안전처이며 국가안전 부처장이 지휘한다. 국가안전 부처장으로는 에드위나 라우(劉賜蕙) 고급조리처장이 신임 국가안전 부처장으로 보임하게 되었다. 독자적인 방첩수사 및 국가안전에 관한 광범위한 수사를 이전에 형사보안부에서 담당하던 역할을 국가안전처에서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홍콩경찰의 두번째 여경 부청장으로 오르게 된 것이다. 사실 독립국도 아니고 이렇다 할 적국도 없는 홍콩인지라 국가안보란 곧 테러 대응과 하나의 중국을 뒤흔드는 것인 홍콩 독립운동, 그리고 외국 범죄조직 등을 다양하게 포섭하는 개념이다. 삼합회는 이미 지리멸렬해진 지 오래이고 그렇다고 외국 테러조직이 설치는 것도 아니라 홍콩 독립운동과 (중국 공산당 중앙정부와 홍콩 정부의 관점에서) 외국과 결탁하는 서방주의자들이 그 표적임은 뻔하다.
홍콩 국제공항은 공항 전담 경비대인 공항경찰대가 있고 SDU도 분대 정도 규모가 파견나와 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공항 점거시도 후 공항경찰대는 폭동진압용 장비로 무장하며 24시간 경계 중이며 현재 공항 보안은 거의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김포국제공항 수준으로 격상되어 아무나 못 들어오게 막고 있다
PTU는 전술한 것처럼 경찰기동대로 다중범죄 진압, 은행강도나 인질극 등 특수 강력범죄 진압, 주요시설 경비를 담당한다. 주요 시위진압 사례 중 하나인 2014년 홍콩 우산 시위 당시 PTU는 곳곳에서 홍콩 시민과 충돌했으나 홍콩인은 PTU에게 시원한 물을 가져주고 우산을 씌워 주는 등 신사적인 방식의 시위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 후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는 저번 우산혁명 후 독이 올랐는지 초장부터 무력진압을 서슴지 않고, 시민을 조롱하는 등 좋지 않은 태도로 욕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이 PTU는 다시 전문적 대테러부대를 보유 중인데 SDU와 CTRU가 그들이다.
SDU는 홍콩의 경찰특공대로 1973년에 이미 신창수대(Sharpshooter's Team)라는 이름으로 창시되었으나 제대로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은 1974년 영국 육군 SAS에서 교관이 초빙되어 전문적인 대테러 훈련을 시키면서부터이다. 창설 당시에는 왕립 홍콩경찰, 현재는 홍콩 특별행정구 경찰이며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와 달리 그리 군대스럽지 않고 실력도 뛰어나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테러부대이다. 한 번 이들의 신원이 공개되어 난리가 난 적 있다. 범죄조직이나 테러리스트 등 범죄자들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으나 어떻게 사태를 수습했다.
한편 SDU는 '''삼합회 킬러'''로도 활약했는데 1980년부터 SDU는 PTU 및 본청 형사보안국 심지어 염정공서와 함께 '''삼합회 때려잡기''' 선봉에 나서 현재 삼합회는 거의 무력화되다시피 하였다. 특히. 크리스 탕 경무처장이 80년대 후반부에, 삼합회 소탕작전 담당으로 임명되었던 적도 있다. 이때는 고급독찰로 진급한 뒤였다. 그 외 이슬람 극단주의 폭력조직인 IS나 알 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이나 마피아, 마약 카르텔 등 세계구급 폭력조직 등 각종 국제범죄의 위협으로부터 홍콩을 지키는 역할도 한다. 과거 IRA가 영국을 상대로 끈질기게 투쟁하던 시절 홍콩도 영국령인데다 중요한 식민지인지라 당연히 IRA의 표적이 되었기에 SDU는 IRA와도 싸워야 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IRA가 무장 해제를 선언한 현재는 그저 역사 속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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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홍콩 액션영화에 SDU가 주역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아예 대놓고 제목이 비호대인 영화까지 나왔으니 말 다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도 청바지에 샌들 신고 작전을 나가는 등 좀 지나치게 캐주얼한 차림으로 유명했으나 그것도 옛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SDU는 규정된 전투복이 원래 한국군의 구형 전투복과 같은 우드랜드 전투복이지만, 활동 편의를 위해 사복 차림도 허가했던 것이라 봐야 한다. 당연히 평시에는 다른 경찰들처럼 당연히 근무복을 입는다. 대테러 시범훈련 등에서는 근무복 차림에 기관단총과 방탄모 그리고 방탄조끼만 착용하고는 한다. 그리고 2016년 1월 10일. 인질 구출 훈련 중의 SDU. 2010년대 들어 서방권 특수부대의 표준 장비나 다름없게 된 멀티캠 컴뱃셔츠/컴뱃팬츠, 옵스코어 헬멧, 플레이트 캐리어에 SIG516 자동소총[47][48] 등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더구나 2019년 경찰 개방 행사에서는 멀티캠 트로픽을 착용한 SDU 대원도 목격되었다.# 물론 2014년 발생한 카이칭 단지(Kai Ching Estate) 총격 사건[49] 에 출동한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SDU 대원도 있었던 것을 보면[50] 활동 편의를 위해 여전히 사복 차림도 허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얘네는 한국과 달리 복제에 그리 얽매이지 않고 활동성을 중시해 자율을 보장해주는 면이 있다.
SDU와 더불어 대테러부대 CTRU(Counter-Terrorism Reaction Unit/反恐特勤隊)가 2009년부터 창설되어 활동 중이다. 영국 SAS의 지도를 받은 SDU와 대조적으로 CTRU는 미국 뉴욕 경찰 NYPD의 Hercules Team[51] 을 모델로 만들어졌으며, 테러 위협이 있는 주요 장소와 행사를 보호하거나 테러 발생 시 초동 대처하는 등의 임무를 갖고 있다.
또한 요인 경호를 위한 부대로 일본 경찰의 SP와 유사한 요원보호조 VIPPU[52] 가 있다.
그리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의 공포의 대상이 된 STS 즉 특별전술소대[53] 도 있다.
위의 모든 경찰 작전부대는 PTU 소속이며 PTU 대원 중 우수한 자들만이 까다로운 선발과 혹독한 훈련을 통해 갈 수 있다. 기본적으로 PTU 근무 경력이 3년 이상이고, 신체건강하며 정신에 문제가 없어야 위 부대들에 갈 자격이 주어진다. 조금이라도 결격사유가 있으면 탈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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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로는 벤츠 스프린터와 토요타 프리우스가 가장 흔하다. 시내에만 있으면 경찰차라고는 이 스프린터 및 프리우스와 바이크 뿐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외에 토요타 코롤라나 호송용, 부대 이동용으로 사용하는 토요타 코스터, 르노 플루언스 ZE, 아우디 A6 등도 있으며, SUV로는 랜드크루저 프라도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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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의 바이크.
경찰관들은 권총과 삼단봉, 수갑 등을 장비할 수 있는 홀스터들이 부착된 외근혁대 및 전술조끼를 착용하고 3인1조 혹은 4인1조로 순찰을 돈다. 모자는 범인 추격 등 현장활동 시 탈모가 가능하며 혁대에 모자걸이도 있다. PTU 대원의 경우 평시에도 베레모를 착용하고 전투화를 신어서 단화를 신고 기동모를 쓰는 일반 경찰과 구분된다.
6. 평가
[image]'''"홍콩 사람들은 경찰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과거에도 그들은 하면 안 되는 일을 했고, 또한 홍콩의 법을 벗어나는 일들을 많이 해왔을 것입니다."'''
- 제레미 탐 공민당 의원. 이 사람 말고도 민주파의 경찰에 대한 시각은 대개 이런 식이다.
홍콩 민주화 운동 이후로 홍콩 경찰의 수준이 '''1990년대 시절보다 더 퇴화'''했음을 비판하는 비교 사진. (출처)
표면적으로는 어쨌든 간에 유능하고 부패문제 없는 경찰인 건 사실이다. 이는 영국령 홍콩 시절 닦아놓은 선진 시스템 덕이다. 그러나 영국 식민지 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지만, 특히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의 홍콩 특별행정구 경무처는 영국령 홍콩 때보다 노골적으로 공권력이 남용되는 경우가 많은지라 반정부냐 아니냐에 따라 거의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이중적이다.
친중파는 홍콩 특별행정구 경찰로 넘어오며 완전히 부패문제를 해결하였고 특히 골칫거리였던 '''삼합회 소탕'''을 업적으로 꼽는다. 그리고 민주파에서 제기하는 경찰에 대한 불만들을 단지 불순분자들의 불평불만으로 폄하한다. 반면 민주파/본토파는 과거 왕립 홍콩경찰은 아시아 최고라 표방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불렸으나 중국 반환으로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로 재편되어 중화인민공화국 연락판공실, 일명 중련판에 의해 움직이게 되자 헌신적이며 성실한 모습은 간데 없고 민중을 탄압하고 인권유린도 거리낌없이 저지르며 중공을 위해 헌신하는 민중의 적으로 퇴화해버렸다(...)는 평가를 내리며 이러한 평가는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즉 우산혁명 이전부터 팽배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산혁명 무력진압으로 '''중공의 개'''(狗官)으로 불리던 경찰의 평판은 이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또 한번의 무력진압과 공권력 남용으로 나락으로 추락했으며 '''암흑 경찰'''이라는 뜻의 흑경(黑警)이라는 이름으로까지 불리게 된다.
중국 공안 못지 않은 무자비한 인권탄압으로 악명이 높으며 아예 '''반항하는 자국 시민을 죽여야 할 적으로 취급한다는 의혹까지 있다.'''[54] 안 그래도 홍콩인들은 중국과 홍콩이 다른 점에 대해 설명하는 뉴스조차 '''경찰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경찰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으며, 최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경찰의 폭력 과잉진압 문제가 불거지자 경찰에 대한 시민 의식은 거의 확인사살 수준으로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반항하는 자국민을 적 취급하는 것과 달리 외국인에게는 아주 친절하고 뇌물수수 문제 등도 없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일단 이런저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선 동남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싱가포르와 함께 유이한[55] 높은 청렴성을 앞세워 도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홍콩의 본국인 중국만 해도 부정부패가 상상을 초월하고, 동남아시아 주변 국가들은 말 안 해도 뻔한 수준인지라 그래도 경찰이 할말이 있다고 큰소리치는 게 가능하다.
과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뇌물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삼합회와 결탁한 사건이 빈번했고, 증지위의 아버지 증계영은 경찰 고위 간부를 하다가 문제되자 대만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영국인 경찰 간부인 피터 고드버의 전횡사건이 터졌고 이 때문에 염정공서가 출범하기도 했다. 고드버는 나중에 영국으로 튀었다가 염정공서 설립 후 범죄인 인도로 강제 송환되어 처벌받았고 이후 경찰관 해고 및 염정공서의 경찰조직 대대적 수사에 반대하는 경렴충돌이 1977년 벌어져 염정공서 사무실에 짱돌이 날아오고 수사관이 폭행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외국 전문가 초빙, 젊고 의욕 넘치는 신임 경찰관들의 대대적 선발, 부패방지 3륜법 등으로 부패문제가 사라졌고, 홍콩을 깨끗이 하는 클린 홍콩 운동까지 더해져 지금의 아시아 최고의 경찰이 되었다.
최근 시위 관련 이미지와 본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으로 부정적인 시각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로 있게 된 건 20년 남짓에 불과하며 사회주의 체제는 적용된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중국화 움직임들은 역풍을 맞으며 중국 공산당이 이웃 마카오와 달리 추진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영국령으로는 120년 넘는 세월을 있었는지라 사실상 영국과 비슷하다고 봐야지 중국으로 놓고 보면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작년 시위로 이런저런 손해를 보기는 했어도 국제 금융센터 지위도 런던, 뉴욕과 함께 유지 중이다. 사회 불안이 해소되면서 이런저런 컨퍼런스 등도 도로 많이 유치했다가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주춤한데 이는 어차피 범세계적 재난이다. 되려 작년에 반사이익을 본다고 큰소리치던 싱가포르는 슈퍼전파자를 여럿 양성하며 유럽 등에 지옥문을 열었다.
그러나 도시가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시민들의 복지가 잘 지켜지는 것과 별도로 기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56]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면 전시 등 국가 존망의 위기에도 최소한의 인권은 지키도록 법으로 못박고 있다. 그러나 홍콩 경찰은 폭동적 시위진압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될 민간인에 대한 고문까지 저질렀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으며 당장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확인된 폭력만 해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홍콩의 중국화 움직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며 국가안전법이 적용되고 통제가 강화되면서 더욱 가속화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공직자에 대한 평가는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인데 이미 홍콩 경찰에 대한 현지인들의 평가는 바닥을 뚫고 나락까지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애당초 최근 홍콩 경찰의 인권탄압과 과도한 공권력 행사를 지적하는데 홍콩의 경제적 지위와 과거의 활약을 언급하는 것은 논점일탈로, 적절한 반박이 될 수 없다. 홍콩에 대한 위키의 부정적인 서술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 항목에 가서 수정하거나, 불만을 제기하거나, 토론을 하면 된다. 그러한 홍콩의 우수함은 최근 경찰의 인권탄압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못한다. 애초에 비민주적인 독재정권 하에서도 눈에 보이는 치안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실적이 곧 인권탄압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경찰관의 시위 진압조 편중배치로 좀도둑이 들끓는 등 치안 상태는 더욱 나빠졌고 코로나 등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든 다음에야 다시 좋아지게 되었다. 중국화 움직임으로 홍콩의 눈에 띄는 치안과 통계상의 순위는 좋아질지도 모르지만, 우수한 치안은 홍콩보안법과 같은 반민주적인 체제가 아니라 민주화와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감시, 그리고 인권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홍콩 경무처는 경찰의 본분에 비교적 매우 충실하며 아시아에서 청렴한 정부기관 중 하나로써 지금까지 세계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인권탄압과 폭동적 시위진압, 일국양제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홍콩인들의 의사표현 방식 등을 진압하고 중국 공안부의 지시에 따르는, 이전보다 인권 등의 부문에서 퇴보한 인식을 보임으로써[사례] 범세계적인 인식의 재고를 자처한 것 또한 사실이다. 홍콩 경찰에 대한 비판이 홍콩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의견 역시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경찰의 모습이 만들어지도록 한 것은 다름아닌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지사를 따른 홍콩 경찰의 중책들이다. 경무국의 치안 부문은 공무를 집행하는 기관으로써 상부 (현지 및 중국 정부)의 평가에 반영되는 것이 사실이다.
6.1. 외국인에게 친절한 경찰
그리고 외국인에게 친절한 것도 사실로 경찰관은 영어와 표준중국어, 광둥어는 물론 심지어 일본어로도 모두 말할 수 있어 외국인이 곤란해하면 유창한 영어와 함께 친절히 도와준다. 경찰 말고도 홍콩 소방처의 소방관이나 구급대원, MTR 철도회사 직원, 공항 직원, 세관원, 캐세이퍼시픽 승무원 및 지상직원 등 모든 제복 입은 사람은 전부 다 친절하다. 심지어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본부에 무전으로 물어볼 정도.
물론 이 모든 것은 '''반체제 성향 자국민들에게는 일절 해당사항 없으며, 반체제 성향의 자국민들에게는 감시국가의 경찰 그 자체인 공포의 대상이자 주적 1호이다.''' 애초 이들은 반체제 성향의 자국민을 대놓고 적으로 취급한다[57] . 이 자국민들의 경우도 친중파에게는 한없이 순한 양처럼 친절하며 야누스를 방불케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1980년대~1990년대 영국령 홍콩 왕립 홍콩경찰은 멋지게 테러범을 제압하던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58] 및 정극 영화 영웅본색 시리즈 등에서 보듯 아시아에서 가장 청렴하고 시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믿을만한 경찰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심지어 본국인 중국 대륙의 공안부 간부 등 고위관료들조차 자신들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에 비해 훨씬 낫다고 평가할 정도다. 무엇보다 골칫거리 삼합회를 완전히 무력화시킨 건 분명한 업적이다.
6.2. 친정권 성향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이면으로 대놓고 친중파 경찰간부들이 득세, 홍콩 정부의 말을 안 듣는 인사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인권탄압을 벌이고, 반정부 시위는 중국 무장경찰부대나 러시아 내무군 못지않게 무자비하게 때려잡아 인권탄압으로 악명을 떨치는 모습도 보인다.
이 점은 싱가포르 경찰청도 마찬가지로 리콴유를 인터넷에서 욕하면 바로 24시간 인터넷을 감시하는 싱가포르의 사이버 경찰이 잡아내어 체포, 구속하며 영혼까지 털어버린다. 리콴유가 싫어 호주 등 해외에 도망나와 사는 싱가포르인들도 있을 정도다. 리콴유 사후에도 리콴유 일가를 욕하거나, 리콴유 아들들이 벌이는 소위 왕자의 난 등을 언급하는 그 순간 싱가포르 경찰이 들이닥쳐 연행하고 조져버리기 때문에 안전한 해외로 나와 욕한다. 그러나 드러난 표면으로는 다들 알다시피 싱가포르 경찰은 세계적으로 일 잘하고 청렴하며 신속출동하는 경찰로 이미지가 아주 좋다.
6.3. 강경, 폭력적 시위진압 및 고문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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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경찰의 경고다. 너희들은 (현장에서) 홍콩 국가보안법 하에 (홍콩의) 분리(독립) 또는 전복과 같은 위법행위를 의도로 구성된 범죄일 가능성이 있는 깃발, 현수막을 보이거나 (위와 같은 맥락의) 구호를 하고 있다. 너희들은 (경찰에) 체포 (또는 구금)되며 기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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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를 향해 P250 권총을 겨누고 실탄으로 위협사격을 하는 랩터부대원.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및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전형적인 폭동적 시위진압의 모습을 보여주어 이미지가 매우 실추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친중파 경찰이 득세하고 있다는 소문은 돌았는데 결국 그게 사실로 드러나는 모양새다. 친중파 경찰간부들은 왕립경찰 시절부터 은근히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 내무부의 노골적인 푸쉬를 받았으며[59] 현 경무처장 크리스 탕은 아예 대놓고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미국, 영국, 싱가포르, 스페인,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 경찰의 대테러부대에서 훈련받았을 정도이다. 전 처장인 스티븐 로도 왕립경찰 시절부터 친중 성향을 드러내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중국인 경찰관만 이런 게 아니다. 영국인 경찰관들이나 반환 이후 대거 입직하는 인도인/파키스탄인 경찰관들도 대놓고 친중 성향을 드러낸다.[60]
현재 PTU대 부사령관인 영국계 홍콩인 경찰간부 데이비드 조던 역시 친중 성향 인물이다.[61] 조던은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물론 한국 농민들의 WTO 반대시위 당시부터 지금까지 기자들이나 시위대와의 실랑이와 삿대질도 자주 하며 무력진압의 선봉장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공적을 인정받아 경찰 최고간부인 경무관급 계급인 조리처장(助理處長)으로 영전되었으며,[62] 지금은 경무처 작전처 소속 수상경찰대(水警總區) 사령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외에도 영국계 홍콩인 중에서 친중파 경찰로는 2019년 홍콩 섬 애드미럴티 (Admiralty) 시위에서 맨몸으로 시위대열 앞으로 나와 'I want to see your commander!'[63] 라고 소리치는 민주파 입법회 국회의원 우치와이 (Wu Chi-wi) 의원을 가리키며[64] 부하에게 최루탄 발사를 명령한 저스틴 셰이브 (Justin Shave) 경사도 있다. 심지어 작년 송환법 반대시위에 영국인 총경사인 루퍼트 도버[65] 경찰기동대 전 교장은 무려 경무관 계급인 조리처장 계급을 받으면서 현장 PTU와 랩터부대 부대원들을 이끌고 진압작전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자기 관할 구역의 시위 진압 작전에 사령관이 나서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진짜 문제는 진압 방식이 심히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영국인 백인 경찰관들은 영국령 홍콩 왕립경찰 막바지인 1980년대 말 ~ 1990년대 중반 입직한 사람들로 현재는 고위 간부들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비중국계 외국인의 홍콩경찰 입직은 계속되고 있어서 중국으로의 반환 후에는 인도/파키스탄 혈통의 홍콩 시민들도 경찰직에 입직 중이며 경찰에서 이를 적극 홍보하기도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도 친중파 성향이 강하다.[66]
하물며, 2014년 우산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하던 퇴역경찰이자 경찰 최고간부 2인자였던, 앨런 라우 경무처 소속의 작전부청장을 반강제로 소환하여 과격시위나 평화시위 할 것 없이, 전부 폭력적이고 과격하게 진압하였다.
결국 초강경파인 크리스 탕 취임 후 과격시위는 홍콩이공대학에 토끼몰이 후 가두어 놓고 물과 전기, 식량 공급을 끊어버리는 초강수를 두어 제압했으며 구의회 선거 투표장에는 자동소총을 보유한 무장 기동경찰을 배치하고, 곳곳에 저격수를 배치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더 이상 시민사회도 경찰을 비판하지 못하고 엎드려 있게 되었다.
6.4. 중국 무경의 홍콩 경무처 현장 비공식 지원
당시 시위진압 현장에서 폭동적 시위진압을 저지르는 인원들이 홍콩경찰로 위장한 중국본토 경찰관 즉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광동성 공안부 내지는 광동지역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소속 인원들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이유로 대만 언론이 한 경찰관의 근무복에 부착된 배지와 명찰을 통해 경찰의 신원을 조회해봤는데 엉뚱한 인물이 나오기도 했고[67] 갑자기 표준중국어로 경찰들이 대화하거나, 혹은 영어도 할 줄 몰라 외신기자에게 사진 찍지 말라며 '''We Are not background'''(...)[68] 라는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는 사례도 있었으며 심지어 '''홍콩경찰에선 절대 쓰지 않는 중국본토 기동경찰의 진압자세'''인 기마자세 봉술을 구사하는 장면도 포착되었기 때문이다.[69] 2014년부터 경찰과 대치해 왔던 반정부 인사들은 홍콩 경찰은 절대 저 기마자세 봉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심지어는 경찰관 제복과 계급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경우까지 발생하였다. 규정상 비간부급 경찰관은 하늘색 제복을 입고 간부들은 흰색 제복을 입어서 신분을 구분한다.[70] 그런데 하늘색 비간부 제복에 경서경장의 간부 계급장을 착용한 경찰관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비간부 출신 경찰관이 간부로 승진할 경우 본부에서 제복을 새로 맞춰 주기 때문에 '''저런 조합은 나올 수가 없다.'''
경무처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직접 해명하였다.
https://www.facebook.com/HongKongPoliceForce.
그리고 종주국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역시 '''홍콩특별행정구와 홍콩 경무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허위사실 유포'''라며 유언비어 유포자를 엄벌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등 정색했다.
위 사안이 루머이든 아니든 간에, 어쨌든 스티븐 로 경무처장의 '집에 안가면 남은 여생동안 평생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망언만큼은 처장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이미지의 실추를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종합해 보면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가 독하게 심했던 2019년 하반기에 일시적으로 보조경찰을 늘릴 때 광동 지역 무장경찰대원들을 1~2만 명 정도 홍콩으로 사복 차림으로 여행객을 가장해서 파견한 후 일부는 시위대로 변장시키고[71] , 일부는 7월 21일 윈롱역에서 있었던 백색테러에 동원했으며[72] 나머지는 보조경찰관으로 홍콩경찰 PTU대에 끼워넣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73]
결국 경무처는 자꾸만 중국경찰 위장잠입설이 득세하자 공개적으로 징교서 및 세관, 이민국 등에 협조를 얻어 경비교도대원과 세관 특수기동대, 이민국 특수단속반 등을 보조 경찰로 지하철역이나 정부청사 등 주요 시설에 실탄이 장전된 자동소총으로 무장시켜 투입하였으며 진압용 전투복의 배지와 명찰 등은 '''쌈빡하게 제거했다'''.
6.5. 병원의 진료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백도어의 악용
게다가 홍콩 각지의 병원에서 치료받던 시위 참가 시민들이 연이어 체포되는 일이 벌어지자 의구심을 느낀 병원 관계자들이 홍콩 의료전산체계를 조사한 결과 전산망에 진료 기록을 무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홍콩 경찰용 백도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백도어는 원래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경찰 추적을 받는 범죄자를 추적하거나, 대형사고 발생 시 희생자들의 신원 파악을 위해 만든 건데 이를 악용한 것이다.
그야말로 나치 독일이나 구소련, 일제강점기나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한국 같은 감시국가의 경찰 그 자체라고 할 만한 내용.
6.6. 홍콩 경찰에게 반체제 시위대는 그저 바퀴벌레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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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에 한 PTU대 간부급 경찰관이[74] 경찰을 공격한 것도 아닌, 인터뷰 중인 노인 시위자의 팔을 끌어당겨 쳐다보게 한 다음, '''최루가스를 얼굴에 직접 분사'''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과잉진압을 넘어선 희롱이나 다름없는 짓이기에 파문이 일고 있다. 건강한 청년도 잘못 맞으면 실명할 수 있는데 노인한테 캡사이신 최루가스를 눈에 직사하면 '''쇼크사할 수 있다'''. 옆에 있던 동료가 놀라 제지 할 정도의 과잉진압인데 위 문단의 1990년대와 2019년 비교 그림과 더불어 홍콩 경찰의 악화된 자질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카메라가 돌아가는데도 저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답이없다.
2019년 8월 31일 프린스에드워드역 일대에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도중 과격 시위대와 친중파 시민 간 패싸움이 벌어지자 이를 진압하려 출동한 PTU 기동대원들과 랩터부대원들이 역 내부와 전동차내에 난입, 과격 시위대 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위 참가자들 심지어 '''시위와 아무 상관없는 시민들'''에게까지 대대적인 폭행을 일삼은 야만적인 폭동적 시위진압을 벌인 동영상이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의해 공개되었다. 이 때문에 홍콩인들의 공분을 사서 분노가 매우 커진 곳이다.
6.7. 홍콩의 반정부 성향 구민의 가라않지 않는 분노
2019년 9월 4일 홍콩 범죄인 인도법이 철회되었지만, 몽콕 지역 주민들과 동맹휴학 중인 학생들이 역에서의 시민을 공격하는 홍콩 경찰의 야만적인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으며 현재도 매월 30일이나 31일에는 이 역 앞에서 집회를 연다. 현재는 시위가 누그러들어 폭력시위는 사라졌으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며 경찰을 규탄하고 있고, 구의회 선거에서 압승한 민주파는 이 사건과 7월 21일 윈롱 백색테러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의결한 상태다.
6.8. 경찰을 일컫는 속어
반정부 성향의 홍콩인들은 경찰을 '''POPO'''라고 부른다. 영어로 '''짭새''' 비슷한 뜻의 욕이다!!! [75]
그 외 중공의 개라는 뜻의 견찰(狗官) 등의 욕도 흔히 쓰이며 시위가 한참 강렬하던 지난 여름에 몇몇 시위에서는 시민들이 경찰서에 개밥(...)을 놓고 가기도 했다. 그리고 7월 21일 백색테러 직후 폭력배들의 폭력을 방치하자 삼합회와 똑같은 놈이라며 암흑 경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위가 누그러든 현재에도 경찰에 대해서 인터넷 상에서 저 별명으로 조롱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나쁜 경찰이라는 뜻의 흑경(黑警)[76] 이라는 말도 많이 쓰인다.
6.9. STS/특별전술소대
참고로 랩터부대[77] 는 한국경찰의 백골단 못지 않은 만행으로 악명 높다. 외신기자들도 이 랩터부대원들에게 여럿 얻어 맞고 연행되었을 정도다. 시위 기간 동안 경찰이 외신에 대해 아주 히스테릭한 거부 반응을 보여서 외신기자들도 마구 때리고 끌고 가고 카메라를 빼앗았다.
6.10. 엠네스티의 보고서
2019년 9월 20일, 국제앰네스티에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관련 보고서가 출간되었다.
앰네스티는 시위 기간 동안 홍콩경찰이 폭동적 시위진압을 하고, 체포한 시위대에 대해 '''고문을 자행하고 자백을 강요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계 지역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사람에 따르면, 이 인원은 시위를 마치고 집에 가는 도중에 경찰에 체포되어 근처 경찰서로 압송된 후, 경찰서에서 경찰에 의해 집단구타를 당하고 자백을 안 한다며 물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하였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는 경찰이 "자백하지 않으면 '''전기고문을 시행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진술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홍콩정청과 중국 공산당 등 유관기관과, UN과 유럽연합 등 국제기구에 홍콩 인권 상황 관련 해당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기사
블룸버그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하며, 홍콩인들의 홍콩 경찰 신뢰도가 낮고 반감이 매우 큰 상황에서, 국제앰네스티의 고문 사용 보고서가 알려질 경우 '''시위 규모를 매우 극단적으로 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사
국제엠네스티는 해당 보고서에서, 8월 25일의 여성 시위대 '''공개 알몸수색''' 건과, 여성 시위 참가자를 경찰이 체포하여 경찰서로 압송한 이후, '''"진술을 거부하면 성고문을 하겠다"'''며 대놓고 위협한 것이 '''성고문에 해당할 수 있다'''며, 홍콩 경찰이 여성폭력, 성폭력도 저지르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기사
9월 20일 국제앰네스티가 발간한 홍콩 경찰의 폭동적 시위진압 및 시위대 폭력, 고문 등의 행위를 저질렀다는 보고서에 대해, 스티븐 로 홍콩 경무처장은 '''"홍콩 경찰이 폭력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전혀 없다. 순수한 거짓말(Pure Lying)이다. 국제앰네스티는 홍콩 경찰을 모욕하고 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국제앰네스티를 거세게 비난했다. 기사
6.11. 불심검문
한편 홍콩 경찰의 경우 '''무차별 불심검문'''으로도 악명 높다.
영국령 시절부터 경찰관들은 한밤중에 3인 1조로 전우조를 편성해 순찰을 돌다가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무조건 연행해 가곤 했다. 물론 여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불법체류자들이나 마약 중독자가 꽤 많기 때문. 그래서 구룡반도 특히 조던과 야우마테이, 몽콕 일대에서 단속이 심한 편이고 홍콩 섬은 안전한 지역인지라 덜하다.
우산혁명 그리고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등 최근 들어 여러 시위가 계속되자 이제는 기자나 의료인력 등 '''신분이 확실한 사람에게조차 무차별 검문을 행하고, 이에 항의할 경우 연행해 간다'''. 이 불심검문에 외신기자도 예외는 없다.
참고로 홍콩은 한국과 달리 신분증 제시를 거부할 시 100% 연행된다. 거의 일본 경찰 수준의 불심검문이다. 그나마 외국인에게는 굉장히 부드러운 편이다.
물론 이러한 불심검문으로 민생치안이 세계 최고급 수준이기는 하지만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불심검문하는 경찰들의 태도가 아주 고압적이다.
7. 반정부 구민의 홍콩 경찰 신상털이
홈페이지
결국 홍콩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홍콩 시민들을 탄압해온 것에 대한 결과로 아예 '''홍콩 경무처 소속 경찰관 특히 권력을 남용하거나 무자비한 진압을 한 경관들의 신상을 박제하는 사이트''' 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찰관의 신상이 털리면 범죄자들에 의한 보복 범죄가 일어날 거라는 것을 시민들이 모를 리가 없는 데도 이런 사이트까지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2019년 민주화 운동 당시 홍콩 경찰들의 만행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수준이었으며 반체제 홍콩 시민들이 홍콩 경찰을 본격적으로 '''죽여야 할 적 수준으로 증오'''하기 시작했다는 증명이다.
8. 경무처장
홍콩 경찰청장의 정식 직책명은 경무처장이다.
8.1. 영국령 홍콩 왕립경무처장
1990년대 임명된 마지막 두 명의 중국인 처장들을 제외한 모두가 영국인이다. 이 때 이름은 왕립 홍콩경찰 경무처였다.
- 윌리엄 케인(William Caine) - 1841년 ~ 1844년 2월[78] : 홍콩 경찰과 홍콩 소방처의 기초를 닦았기에[79] 현지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간주되는 인물이다. 홍콩 섬 완차이 경무처 본부의 건물들 중 하나가 그를 기리는 뜻에서 이름을 딴 케인 하우스(Caine House)이다.
- 조지 토마스 핼리(George Thomas Haly) - 1844년 2월
- 존 브루스(John Bruce) - 1844년 2월 ~ 1845년
- 찰스 메이(Charles May) - 1845년 ~ 1860년: 영국 런던광역경찰청 경정 출신 경찰관이다. 윌리엄 케인이 창설자라면 찰스 메이는 홍콩에 영국식 사법 체계를 이식시켰다.
- 에드먼드 헤이손(Edmund Haythorne) - 1860년 ~ 1862년: 임명 당시 영국 육군 대령. 이후 대장까지 진급했으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 윌리엄 퀸(William Quin) - 1862년 ~ 1866년: 또 다른 영국의 주요 식민지인 인도 제국 봄베이 경찰 출신이다.
- 월터 메레디스 딘(Walter Meredith Deane) - 1866년 ~ 1892년
- 직무대리 육군 소장 알렉산더 H. 애덤 고든 (Alexander H.Adam Gordon) - 1892년 ~ 1893년
- 프랜시스 헨리 메이(Francis Henry May) - 1893년 ~ 1902년
- 조셉 프랜시스 베들리(Joseph Francis Badeley) - 1902년 ~ 1913년
- 찰스 메서(Charles Messer) - 1913년 ~ 1918년
- 에드워드 두들리 코스카덴 울프(Edward Dudley Corscaden Wolfe) - 1913년 ~ 1934년
- 토마스 헨리 킹(Thomas Henry King) - 1934년 ~ 1941년
- 존 펜파더-에반스(John Pennefather-Evans) -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과 영국군 간 홍콩 전투 후 일본에 항복할 때까지 경무처장을 맡았다.
- 찰스 헨리 샘슨 대령(Colonel Charles Henry Samson) - 1946년[80]
- 던컨 윌리엄 맥킨토시(Duncan William McIntosh) - 1946년 ~ 1953년: 전직 싱가포르 경찰청 부청장이다.
- 아서 크로포드 맥스웰(Arthur Crawford Maxwell) - 1953년 ~ 1959년
- 헨리 히스(Henry Heath) - 1959년 ~ 1966년
- 에드워드 티러(Edward Tyrer) - 1966년 ~ 1967년: 이 사람 임기 때 구룡반도 침사추이와 몽콕, 자운산 등에서 67 구룡폭동 사태가 터졌으며 이 폭동을 진압했다. 당시에 아직 경찰기동대가 따로 없어서 일반 순찰경관들과 형사들이 나무로 된 원시적인 진압 방패와 진압봉을 들고 진압에 나섰다. 이후 이러한 국가비상사태에 대응하고자 경찰기동대인 PTU대가 창설되고 이후 1978년에 대테러부대로 SDU소대도 창설된다.
- 에드워드 이츠(Edward Eates) - 1967년 ~ 1969년
- 찰스 페인 수클리프(Charles Payne Sutcliffe) - 1969년 ~ 1974년
- 브라이언 슬레빈(Brian Slevin) - 1974년 ~ 1979년: 이 사람 임기 때 대테러부대인 SDU 즉 비호소대가 PTU대의 특수부대로 창설된다. SDU소대는 초창기 영국 SAS에 위탁교육으로 영국식 대테러 훈련을 이수했다.
- 로이 헨리(Roy Henry) - 1979년 ~ 1985년: 이 사람 임기 때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중영공동선언이 발효되었다.
- 레이먼드 애닝(Raymon Anning) - 1985년 ~ 1989년: 마지막 영국인 경무처장이다. 이후 홍콩 반환에 대비해 현지 중국인에게 처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 리콴하(Li Kwan-ha | 李君夏) - 1989년 ~ 1994년: 홍콩 경찰 역사상 최초의 중국인 처장이다. 1957년 입직했다.
- 에디 휘(Eddie Hui | 許淇安) - 1994년 ~ 1997년: 마지막 왕립 홍콩경찰 경무처장으로 홍콩 반환 이후에도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장으로 그대로 근무했다.
8.2.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 경무처장
- 에디 휘(Eddie Hui | 許淇安) - 1997년 ~ 2001년 마지막 왕립 홍콩경찰 경무처장이면서 동시에 초대 홍콩 특별행정구 경무처장이다. 홍콩 경찰의 2번째 현지 중국인 처장이다[81] .
- 창얌푸이(Tsang Yam-pui | 曾蔭培) - 2001년 ~ 2003년 2~3대 행정장관이었던 도널드 창의 동생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사람 임기 때 국가보안법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 리밍콰이(Lee Ming-kwai | 李明逵) - 2003년 ~ 2007년: 홍콩의 WTO 국제회의 반대시위 및 본토인들의 파업으로 재직하는 동안 골머리를 썩이는 사건들이 유독 잦았다.
- 탕깅싱(Tang King-shing | 鄧竟成) - 2007년 ~ 2011년: 이 사람 임기 때인 2009년 반국가분열법 반대시위가 벌어졌고 이를 진압했다.
- 앤디 창(Andy Tsang | 曾偉雄) - 2011년 ~ 2015년: 스티븐 로 경무처장의 전임자로 우산혁명이라 불리는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강제진압한 인물이다. 이 사람은 유엔마약범죄사무소 국장으로 추천받았으나, 기각되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처음으로 국제연합에 지명한 중국 각료이다.
- 스티븐 로(Stephen Lo Wai-chung | 盧偉聰) - 2015년 ~ 2019년: 이 사람 임기 때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다. 민주파 및 본토파 홍콩인들의 주적이다. 정년퇴임하고 처장직을 후임한테 인수인계한 뒤 현재는 경찰에서 손을 뗀 상황.
- 크리스 탕(Chris Tang Ping-keung | 鄧炳強) - 2019년 ~ 현재: 위의 스티븐 로보다 더 악질이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여 용무파라 불리던 과격 시위대에게 비참한 종말을 안겨준 인물로 민주파 진영에서는 이를 갈고 있지만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경찰에 공권력이 집중되면서 이 사람의 권한이 더 강해졌다.
9. 수사권
홍콩은 영미법이 적용되는 보통법계로 따로 검찰이 없다. 그래서 수사는 '''경찰이 전담한다'''. 이러한 수사 전담을 위해 경무처에는 형사보안국이 있으며[82] 형사보안국에는 삼합회 전담 조직범죄 및 강력사건 수사대, 마약을 잡는 마약수사대, 금융범죄나 컴퓨터 사용범죄인 해킹, 그리고 보이스피싱이나 몸또 등 통신매체 이용 사기범을 잡는 첨단수사대, 외사 사건 수사를 전담하는 보안수사대 등이 있다. 테러리스트를 수사하는 대테러 수사는 외사 업무를 전담하는 보안수사대가 맡는다.
경찰은 수사 전담기관이기는 하지만 당연히 기소는 율정사 검찰관의 몫이다. 홍콩은 한국 등 대륙법계처럼 별도 검찰청은 없으나 율정사가 검찰 역할을 한다. 율정사가 기소 후 재판에 넘기는 형식이다.
공직자 부정부패나 횡령, 탈세, 공문서/사문서위조, 승부조작 등 부정사건 수사만 별도의 행정장관 직속기구 염정공서가 맡는다. 염정공서는 영국 총독부 시절부터 총독 직할기구였으며 현재도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 직속기구이다.
10. 홍보
11. 매체에서의 등장
홍콩 영화는 경찰을 주연으로 한 영화가 많다.
성룡이 주연한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의 1, 2편은 1980년대 후반 홍콩 경찰의 여러 모습이 잘 고증되어 있다. 1편은 삼합회 보스 주도 일당과 성룡이 주연한 주인공 진가구 형사의 사투[83] , 2편은 폭약공장에서 은신하며 외로운 늑대 식으로 부동산 재벌에 불만을 품고 테러를 벌이는 테러리스트와의 사투이다.[84] 그리고 1992년 나온 3편에선 무려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와 협조 잠입수사로 진가구 형사가 임복생이라는 가명을 쓰며 광동성 광저우의 한 노동교화소에 잠입해 일부러 흑사회 보스 표강을 탈옥시켜 홍콩에 데려온다.[85]
또한 1992년에 나온 성룡의 코미디 액션영화인 시티헌터에서는 후반부에 경찰특공대 SDU가 헬리콥터 레펠로 등장하여 선상을 점거한 테러조직인 국제 떼강도단과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이 때 다국적 강도단은 최후의 발악으로 배에 폭탄을 설치했으나 결국 제압당했다.
유덕화가 주연을 맡은 여락 시리즈는 1950년대부터 염정공서가 생길 때인 1970년대까지의 홍콩 경찰사회 속 부패한 모습을 그려낸다. 이 때 경찰 조직은 영국인만 최고위직을 할 수 있었고 중국인은 끽해야 본청 국장급, 보통은 일선 경찰서의 서장이나 과장 급만 할 수 있어서 경찰서장을 달면 한 몫 단단히 챙겨 나가는 풍토가 만연했다. 이 때 부패경찰로 승승장구하던 뇌락(유덕화)의 아들(곽부성)은 결국 염정공서 초대 멤버가 되고, 경찰 내부는 물론이고 삼합회까지 주무르던 경찰간부 뇌락은 해외로 도피해서 법망을 피하게 된다.
유덕화는 이후 추룡이란 영화에서 또 한 번 여락 시리즈의 주인공 뇌락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그외에도 금전제국이란 영화에서 양가휘가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다크 나이트(영화) 에서 배트맨(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이 라우를 홍콩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납치할때 모든 불이 꺼지고 라우와 라우 부하들이 쏘는 총격음을 듣고 건물 경비들이 신고 전화를 걸고 이내 SDU 대원들과 형사가 건물로 진입한다. 하지만 이내 배트맨이 건물 유리벽에 부착된 폭탄으로 탈출구가 확보되고 이내 배트맨이 풀톤 회수 시스템으로 라우를 대려가자 닭 쫓던 개(...) 마냥 지켜보기만 한다.
무간도에서 황지성 국장과 부하 경찰관들은 OCTB 소속이다. 작중 아예 OCTB라고 쓰인 자켓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유건명은 양질근무단(Service Quality Wing) 내사수사부 소속. 무간도 2 시점에선 둘 다 구룡반도 서부경찰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무간도 3에서는 지금은 폐쇄된 구 중부경찰서가 배경이며 오히려 구룡반도 서부경찰서가 폐쇄된 것으로 묘사된다.
콜드 워의 주인공 이문빈과 류걸휘는 각각 작전부처장과 행정부처장으로, 경무처장의 퇴직이 다가오면서 두 사람이 경찰 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과 이에 더불어 현장직 경찰관들과 내근직 경찰관들의 갈등이 영화 전반에 잘 드러난다. 그런데 스토리를 보면 현장직들이 부패하고 삽질한 걸 내근직이 보다못해 사무실을 뛰쳐나가 몸으로 때우며 수습하는 내용이라 은근히 내근직들의 편을 들고 있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에서 SDU 대원 잉, 리전이 등장한다.
1991년에 만들어진 주성치 주연의 작품인 도학위룡 시리즈의 주인공인 주성성이라는 경찰관이 대테러부대인 SDU 소속의 대원으로 등장한다. 특히 2편에서는 아담 스미스 국제학교라는 외국인 학교를 점거하여 폭탄테러를 일으키려는 테러리스트 조직들에게 맞서서 주성치가 이끄는 잘 훈련된 SDU 대원들이 MP5 기관단총 등의 총기를 사용하여 테러범을 때려잡는 등 멋진 활약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후반부에 가서야 나오는 거고 여기서 SDU는 코미디 액션 특성 상 대개 망가져서 나온다(...).
제대로 된 SDU의 모습을 볼려면 2005년 영화인 성룡의 뉴 폴리스 스토리 후반부도 있다. 테러리스트 조직과 성룡이 완차이 컨벤션센터에서 대치할 때 연막탄을 쏘며 나타나 단번에 테러범을 체포한다.
스카이스크래퍼(영화)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펄 타워의 테러가 발생하기 전부터 테러범들을 추적하고 있었으며, 중간에 윌 소이어를 방해하긴 하지만 그건 소이어가 경찰 오토바이를 훔친 데다 불타는 건물로 뛰어들려고 했기 때문이고 악의는 없었다. 이후 소이어가 테러범들로부터 가족을 지키려는 것임을 알자 그와 함께 테러범들을 일망타진한다.
12. 관련 문서
[1] 그려져 있는 건물은 왼쪽부터 퀸즈웨이 행정사무소, 중국은행 타워, 홍콩 시청, HSBC 본사, 익스체인지 스퀘어로, 1997년 7월 1일 부로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로 바뀌며 만들어졌다. 현지 경찰과 동일한 홍콩 보안국 소속 홍콩 소방처와 입경처, 그리고 해관 역시 같은 자형화 문양을 로고 (마크)에 적용해 사용하고 있다. 홍콩의 모습이 그려진 원을 품어주듯 감싸고 있는 것은 자형화가 아니라 미상의 잎과 가지다. 자양화 (바우히니아)의 잎으로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대영제국 시대의 다양한 영국령 식민지 총독부기에서 이와 같은 도안을 적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2] 약 3조2800억원[3] https://www.police.gov.hk/ppp_en/01_about_us/os_chart.html[4] 경찰본부에 써 있는 공식 명칭에는 香港警務處, 홍콩 경무처라고만 써 있다. 굳이 특별행정구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는다. 이는 영문에서도 마찬가지.[5] 참고로 영국령 홍콩 시절에는 경찰 소속 정치부(Special Branch)가 방첩기관 역할을 했다. 실질적으로는 영국 MI5의 홍콩 지부 역할을 했으며 1995년 해산했다.[6] 원래 해병대는 해군 헌병 역할과 해안선 육상 해군기지 방어 역할이 평시 역할, 적국 영토 상륙이 전시 역할로 출발하였다. 이 중 해안선 해군 육상기지/항만방어와 전시 적 해안 상륙이 현재까지 남은 임무고 해군 헌병은 지금 대부분 국가가 분리하여 별도로 갖고 있다.[7] 성룡, 홍금보, 원표 주연의 영화로 한국인들은 옷 보고 해군인 줄 알았지만 사실 해경이다. 이 때 해경은 해군 수병용 세라복을 말단 경찰들이 착용했고, 간부들은 영국 해군에서 파입된 장교들이었다.[8] 총독들의 경우 문관이라도 유사시를 대비해 군복을 갖추고 있었다. 홍콩은 섬이라 해군 군복을 갖고 있었다. 참고로 2차대전 당시 영국 왕실에서도 군복 차림으로 집무를 보았는데 군 통수권자가 국왕이기 때문이었다.[9] St. John Cathedral로 Cathedral은 대성당 혹은 성전이라는 뜻이며 큰 교회를 캐시드럴(Cathedral), 작은 교회를 Church라고 한다. 영어권에서는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간 예배당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성 요한 성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피크트램 타는 곳 바로 옆이다.[10] 가끔 보이기는 하는데 사람들, 특히 중장년층이나 노인들이 거칠게 욕하며 저거 당장 치우라고 항의하고는 한다.[11] 지금도 센트럴의 성공회 교회인 세인트 존 대성당에 가면 이때 산화한 경찰관들을 추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12] 정식명칭은 공안조례로 계엄령보다 낮은 조치이며,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선에서 총독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 질서를 단시간에 잡도록 한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는 적용하려 했으나 뜻밖에 위헌 크리를 맞아 적용되지 않았다.[13] 당시에는 야우마테이역(당시 워털루역)에서 타절하지 않고 지금의 췬완선처럼 센트럴역(당시 채터역)까지 운행했다. 췬완선 개통 후 지금처럼 바뀐 것.[14] 한편 이 폭동을 계기로 영국 정부가 구룡반도와 홍콩 섬 간 연결을 고려하게 되어 MTR 쿤통선[13] 과 크로스 하버 해저터널을 1975년 이후 만든다. 물론 삶의 질을 높이고자 1976년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테마파크인 오션파크를 개관한 것은 덤이다.[15] 특별임무부대, 통칭 비호대로 불린다.[16] 골든 바우하니아로 불리는 꽃으로 사실 자생하는 꽃은 아니고 유럽 꽃과 중국 꽃을 섞어 만든 잡종이다.[17] 모든 홍콩 경찰관은 뱃지에 경찰번호가 일종의 군번으로 적혀 있어 이름과 경찰번호로 신분을 조회하는 게 가능하다. 대테러부대 SDU만 이게 없다. 이런 식으로 대만 언론 하나가 한 경찰관의 신분을 조회했는데 분명 남경인 사람이 막상 엉뚱하게 여경이고 이름도 다르다고 떴다.[18] 항간에선 초강경파 크리스 탕 취임 후 중국에 의해 노골적으로 이것저것 지원받아 먹은 그의 경력을 보며 이제야 모든 게 설명이 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19] 이 영상도 참조. 이라든가 PTU 대원이 그 전까지는 광동어로 이야기하다가 53초 부근에서 별안간 표준중국어로 "동지들! 저쪽이야!(同志们! 那边!)"라고 한다.[20] 조던 지역에 인민해방군 소속 군 병원과 장교 사교클럽인 삼군회(三軍會)가 있다. 해당 시설들은 영국령 홍콩 때 영국군 시설을 그대로 인수받은 것들이다.[21] 참고로 2008년 티베트 소요사태 및 2009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소요사태 당시 중국은 본토에 속하는 저 두 지역에 인민해방군 대신 무장경찰부대를 투입했다. 쓰촨 성과 칭하이 성, 간쑤 성의 무경부대들을 칭짱철도 등으로 실어 날라서 라싸와 우루무치를 1주일 간 봉쇄 후 그냥 조져버려 두 지역의 소요는 한달도 안 되어 금방 진압되었다.[22] 글록 권총은 중국이 무단카피하여 공안에 지급한 권총이거나 홍콩 경찰의 사복경찰들이 쓰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서 보이는 권총이 글록 19 3세대이므로 홍콩 사복경찰이 유력하다.[23] 한 두 명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과 막상 수십 명 이상 대량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전혀 얘기가 다르다. 과격 시위대가 계속 무기를 사용하며 저항했으면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제2의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되며 경찰에 의한 대량 사살이라는 비극이 됐을 것이다.[24] 물론 영국은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이 아니면 식민지 왕립경찰에는 잘 손대지 않았던 편이었고 홍콩 총독과 한국의 경찰청장급인 왕립홍콩경무처장이 알아서 처리했다. 그리고 중국 반환 후에도 중국 공안부는 홍콩특구 경무처에 지휘권을 행사한다고 했어도 그냥 특구 정부가 알아서 하게 놔뒀다. 사실 이건 영국령 홍콩 시절이나 반환 초기인 2000년대만 해도 2010년대에 대대적으로 벌어진 민주화 운동처럼 큰 사건이 벌어진 일이 드물어서기도 하다. 처음부터 밑도 끝도 없이 홍콩인이라고 무조건 중국 반환을 비토한 것은 아니고 경제인 등은 환영하는 사람이 많았다. 단지 원래부터 중국의 경우 영국과 달리 중국 공산당이 통치하는 일당독재 국가일 뿐더러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좋았던 시절들의 장쩌민이나 후진타오 때는 1인 독재가 아니라 집단지도체제였고 장쩌민은 홍콩의 정치적 자유도 중요하다고 여겼으나 최악의 폭군 시진핑이 집권한 2013년 이후부터는 이제는 당이 아니라 시진핑 1인 독재로 굴러가고 있는 상황이고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이런 본토의 상황을 싫어한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시진핑 집권 후 이래저래 그 부작용이 나오는 중이다.[25] 중국은 50년 불변 원칙의 시점을 홍콩반환협정 이전으로 보고 있어서 1984년 반환협정 후 영국이 홍콩에 민주주의를 도입하자 '50년 간 아무것도 바꾸지 말자고 했는데 영국이 이를 어긴다'며 딴지를 걸었다. 영국은 이 시점을 1997년 반환으로 해석했으며 다른 제1세계 국가들의 해석도 이렇다.[26] 사실 영화 속 이미지와 달리 삼합회가 퇴물 조직이 된 건 한참 오래 전 일이기는 하다. 느와르라는 장르 자체가 1960년대풍 영화를 말하는 거라서 1950년대 및 1960년대의 이미지가 남았을 뿐이다.[27] 홍콩은 경찰청 내지 경찰본부를 경무처라고 한다.[28] 중국 공안 자체가 이미지 개혁을 하면서 1999년부터 복제에서 홍콩 경찰을 많이 모방했다. 당장 최근 공안 사진만 봐도 근무복부터 노골적으로 홍콩을 따라한 것이 보인다.[29] 한국 경찰 총경급이다.[30] 한국경찰 경사 급이다.[31] 이스라엘 국경 경찰 근무복과도 유사하다. 특히 색깔.[32] 용무파는 국가보안법 통과 후 대부분 체포되거나 대만으로 망명해 사라졌다.[33] 이들은 홍콩 경찰의 경찰기동대인 PTU 소속의 특별전술부대 '''랩터부대(速龍小隊)'''로 과거 한국의 백골단처럼 폭동적 시위진압에 특화된 체포조이며 과거 용무파 등 과격 시위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이들이 홍콩이공대학 포위 후 저격 등을 시도하자 용무파는 급속히 무력화되었고[32] 이후 비폭력으로 시위양상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속룡소대는 무력진압을 서슴치 않는다.[34] 이전 서술에서는 오성홍기와 특구기를 거는 국기 게양식에는 예복을 입는다고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홍콩 반환 기념일에만 예복을 입고 진행하며 평상시에는 그냥 위에서 보는 군청색 정복 입고 국가도 반주만 틀고 빠르게 끝낸다.[35] https://www.police.gov.hk/ppp_en/01_about_us/os_chart.html[36] 이 계급부터 경찰간부로 들어가며 제복이 흰색으로 교체되고 경찰번호가 생략된다.[37] 한자를 보고 총독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총'독찰 즉 독찰 계급에서 가장 높다는 뜻이다.[38] 이 계급부터 경무관 계급이다.[39] 홍콩 경찰내의 최고위급 계급으로써, 단 3명만 임명되며, 작전처, 행정처, 국가안전처로 나뉜다. 이중에 최고 권한을 가진 경찰은 작전처장이다.[40] 경찰 내에서 단 한 명만 있으며, 한국의 경찰청장급이다. 또한 경무처 최고 선임자이며, 이들을 지휘하는 총감독으로 홍콩 보안국 장관이 존재한다.[41] 정확히는 영국 해병대. 각 군마다 계급 체계가 유사하면사도 다르다.[42] 일본에선 이 계급을 순사로 번역하고 경서경장은 순사부장으로 번역한다.[43] 원래 삼합회 보스 한침이 경찰에 일부러 입직시켜 꽂아놓은 스파이였으나 나중에 한침을 배신하며 진정한 경찰관으로 살게 된다.[44] 진영인은 당시 경찰학교에서 파견한 스파이였으나 대외적으로는 삼합회 보스 한침의 주요 행동대원으로 1급 수배 대상자였다.[45] 중국어로 랩터소대라는 별명으로 부른다.[46] 현재도 미국, 영국 등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싫어하는 나라들의 이권이 모여 있고 국제범죄 특성 상 각종 조직범죄가 꼬이기 쉬워 SDU는 늘 최상의 대테러 대비태세를 유지한다. 홍콩에는 각종 자질구레한 국제 행사도 많다.[47] 2015년 3월부터 도입이 확인된 장비다.[48] 미국 SIG사에서 2009년 발표한 소총. 가스피스톤식 AR-15인 H&K HK416을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더욱 개선했으며(주임 설계자가 HK416의 설계자였다.) HK416과는 가스블록이 좀 더 큰 점과 4방향 쿼드 레일 핸드가드의 네모난 구멍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홍콩 SDU와 더불어 대한민국 해군 UDT/SEAL, 영국, 조지아, 태국, 터키 등에서도 사용한다.[49] 중국어로는 啟晴邨槍擊案이라 한다. 카이칭 단지는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 터와 가까운 곳에 있다.[50] 출처[51] 9.11 테러 이후 창설된 새 경찰 특수부대다.[52] VIP Protection Unit. 중국어 명칭은 要員保護組. G4라는 별칭으로도 자주 불린다.[53] 별명은 랩터부대다. 크리스 탕이 이 부대 소대장을 역임했다. 일반 기동대가 중대 단위지만 여기는 소수정예를 표방해 소대 및 분대 단위로 움직인다.[54]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스티븐 로 경무청장이 ''집에 안 가면 남은 평생동안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한 망언으로 인해 결국 홍콩 경찰도 중국 공안처럼 폭동적 시위진압을 부추기고 있음이 드러났다. 물론 이미지 자체는 이미 우산혁명 이후부터 많이 실추된 상태라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들이었다.[55] 싱가포르 역시 인민행동당 1당 독재로 욕 많이 먹는다. 여기는 아예 집회시위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다. 시진핑의 그것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리콴유 초대 수상 이래 인민행동당은 권위주의 통치로 외부에서 평가되고 있다.[56] 앞에서 예로 나온 싱가포르의 사례 역시 '''아시아적인 가치'''를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비판하던 리콴유는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근거로 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논쟁을 벌인 바 있다.[사례]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을 상대로 육체적인 제압을 가한 경찰의 사례가 있다. 이는 비단 홍콩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라 홍콩 사회의 퇴행를 보여주는 사례로 생각될 가능성이 있다.[57] 외국인이라고 해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거나 중국 및 홍콩 정부를 비난한다면 예외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거리에서 친절하던 경찰들의 태도가 돌변한다.[58] 이전에 도학위룡을 언급했는데 사실 도학위룡 시리즈에 나오는 경찰은 꽤 망가져서 나오는 편(...)에 속한다. 진짜 멋진 경찰은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에 나온다. 어린 세대가 잘 모르는 영화라서 인지도가 낮은데 폴리스 스토리 1,2,3편 모두 경찰이 멋지게 활약하여 1편에서는 마약 조직, 2편에선 부동산 재벌을 노리는 테러리스트를 무찌르고 3편에선 중국 대륙까지 날아가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와 공조작전을 벌인다.[59] 이유는 친중파들이 현지인들의 심리를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즉 친중파라서 푸쉬를 받은 것은 아니고 친중파들이 실적을 많이 올린 것.[60] 인도가 반중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아이러니하다. 다만 중국 휘하의 홍콩 특별행정구는 소수민족을 상당히 배려하므로, 중국과 홍콩 특구에 반대하는 시위대, 특히 그 중에서도 소수민족에 배타적인 본토파 시위대에 적대적인 것도 남아시아계 홍콩인으로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61] 이 사람은 2005년 한국 농민과 금속노조가 WTO 반대시위를 벌일 당시 첫 등장했다. 이때는 기동부대 소대장을 맡았다.[62] 그 와중에 무자격으로 공공주택에 입주했다가 '''보직해임'''을 당했다.[63] 뜻: 니네 대빵하고 면담 좀 하자![64] 당시 우 의원은 최루가스 때문에 마스크 쓴 거 빼고 아무것도 없었고 주변의 무장 시위대는 최루가스를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의원이 공격 행위를 하지 않았고 시위대는 이미 해산 중이라 더 이상 최루탄을 쏠 이유가 없는데 혼자 상관 불러오라고 항의중인 국회의원한테 최루탄을 쏜 것이다. 1발도 아니고 2발 이상을 조준해서 쐈다.[65] Rupert Dover/도휘라는 중국식 이름도 있다. 구룡반도 서부(Kowloon West) 지역대 사령관직을 맡고 있는 이 사람은 2020년 4월 사이쿵의 한 공공주택에 무자격으로 입주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은 바 있다.[66] 애초 인도계 홍콩인들은 친중 성향으로 따지면 아주 강한 친중 성향이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및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특히 홍콩 독립운동 진영이 주도한 작년 반송환법 시위는 대놓고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인도인이 폭력시위하는 홍콩 학생 시위대를 경찰에 신고하기도 할 정도였다. 물론 홍콩 독립운동이 워낙 배타적인 본토주의 성향이라 외국인들에게는 달갑지 않으며 차라리 중국 공산당이 낫다고 여기는 면도 있기는 하다.[67] 홍콩경찰의 모든 경찰관은 한국군의 군번처럼 경찰번호를 부여받아 배지에 부착한다. 경관0000 + 관등성명 식이다. 이 사람의 경우 이름도 그렇고 실제로도 남자 경찰관이었는데 막상 번호를 조회하자 이름도 전혀 다른 왠 여자 경찰관이 나와버렸다. 이 지적이 빈과일보에 나오자 경무처는 쌈빡하게 배지와 명찰이 부착된 근무복 대신 아무 표식이 없는 전투복을 착용하도록 지시한다.[68] 문자 그대로 '''우리는 배경이 아닙니다'''라는 뜻이며 명백한 엉터리 영어다. 홍콩경찰은 영어, 광동어, 표준중국어 세 언어에 모두 능숙해야 하기 때문에 이 경찰이 진짜 홍콩경찰 소속일 리는 절대 없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광동 무경대원이 보조경찰로 잠입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69] 기마자세로 하체에 무게를 실어 타격력을 늘리는 봉술은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소속 경찰관들이 배우는 진압술이다. 봉의 길이부터가 말도 안 되게 길다. 중국 여행 시 기차역이나 공항 등 다중 밀집장소에서 경계근무 중인 경찰들이 사람 키만한 봉이나 도깨비 방망이처럼 철심(!!!)이 박힌 장봉을 들고 근무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70] 자세히 설명하자면, 비간부는 하늘색 제복에 숫자가 포함된 계급장을 달고 다닌다. 간부는 흰색 제복을 입으며 계급장에 숫자가 없다.[71] 8월 31일 정부청사 앞에서 화염병을 투척하던 폭력시위 참가자가 글록 권총을 찬 모습이 언론에 딱 걸려버렸다. 정황상 무단복제된 글록을 사용하는 무경 장교나 중국 대외정보기관 국가안전부나 홍콩 경찰에서 보낸 스파이일 수 있다. 현재 중국 정부나 홍콩 경찰당국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의혹이 더 커져버렸다.[72] 마침 역 근처에서 무장경찰무대 장교 정모가 있는 렉서스 차량이 방치된 체 발견되었다. 당시 흰옷 입은 괴한들의 움직임도 전술적으로 일사불란해서 최소 무경부대 장교가 지휘한 것으로 보인다.[73] 위의 표준중국어 사용 사례 말고도 남경이 단 배지를 조회하니 이름도 다른 웬 여경이 나오는 등 엉터리 배지 및 명찰 착용, 본토 경찰들이 취하는 기마자세 봉술 사용 등 물증이 여럿 있다.[74] 흰색 근무복은 간부, 하늘색 근무복은 비간부 제복이다. 직책이 소대장이나 중대장급인 간부로 보인다.[75] 홍글리시는 아니고 80년대에 남캘리포니아 주에서 자전거 타고 다니던 경찰들을 일컫는 말이다 (출처가 SCMP 밖에 없어서 더 확인이 필요하다.). 흔히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으며 영미권에서는 Cops, Pig, 5-0라는 단어를 주로 쓴다.[76] 원래는 흑색에 가까운 군청색 제복을 입는 랩터부대를 일컫던 말인데,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이 랩터부대가 폭력진압으로 악명을 떨치며 시위대 여럿이 다쳐나가자 나쁜 경찰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77] 정식 명칭은 STS/특별전술소대로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이후 창설한 사복 체포조다.[78] 비공식으로 홍콩 경찰이 창설되기 전에 해안방어와 질서유지 업무를 맡고 있던 영국 해병대 장교다. 그의 직함은 최고 행정관(Chief Magistrate)이였으며 이후 홍콩 총독을 지냈다.[79] 홍콩 경찰이 은근히 영국군과 비슷한 제식을 채용하게 된 것도 군인이던 이 사람이 기초를 닦았기 때문이다. 특히 해군이었기에 영국 해군의 영향이 농후할 수밖에 없었다.[80]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의 원폭 후 무조건 항복한 뒤 홍콩은 영국에 반환되었고 1946년 한시적으로 영국령 홍콩은 영국군의 군정 치하에 있었다.[81] 전임 처장은 중국인은 맞았지만 반환 이전에 퇴직했다.[82] 정식 명칭은 형사보안부[83] 이 때 나오는 차량이 돌진해 개발살나는(...) 판자촌은 구룡반도 중부의 섹깁메이 일대로 현재는 판자촌이 싹 사라졌다. 그 당시엔 중국에서 넘어온 수많은 이주민들과 베트남 전쟁으로 졸지에 집을 잃은 베트남 화교들이 판자촌을 만들며 살다가 홍콩 반환이 확정된 후 전원 정부 아파트로 이주했다.[84] 이 때 진가구(성룡) 형사가 테러범들에 의해 강제로 둘러맨 폭탄조끼를 해체한 후 웃통 벗고 냅다 뛰는 장소가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 활주로 밑을 지나가는 카이탁 터널이다. 이 터널은 구룡반도 중부 토카완과 동부 까우룽베이를 잇는 터널로 구 카이탁 공항 활주로 밑을 지나가 카이탁 터널이라 명명됐으며 지금도 그 명칭을 유지하며 중요한 간선도로 역할을 한다. 2000년 이후 정관오 신도시가 들어서자 이 터널은 정체로 악명높은 곳이 됐다.[85] 이후 표강의 신임을 얻은 진가구(성룡) 및 중국 공안 외사과장 양건화(양자경) 이 두사람은 표강의 친구인 홍콩 마약조직 보스를 따라 미얀마로 가서 군벌 지도자와 마약거래에 나서고, 말레이시아까지 가서 결국 말레이시아 연방경찰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만다. 이후 표강 일당이 가진 돈의 귀속을 두고 두 사람이 서로 홍콩 것이다 아니 중국 것이다 하며 투닥거린다(...). 1997년 이후 홍콩 특별행정구가 들어서고 홍콩의 모든 국가재산은 원칙적으로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관된지라 아마 50%를 홍콩 특별행정구에 나눠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