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ropa Universalis IV/공략/티베트
1. 역사
그 원류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정보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서기 4세기에는 이미 티베트의 선조라고 할만 한 정치 집단이 등장하여 천천히 중앙 티베트 부근에서부터 영향력을 키운 듯 보인다.[1] 티베트의 원류가 되는 집단은 라싸 남동의 얄룽(톨기 지방)을 기점으로 근처의 여러 부족을 흡수해 세력을 불려나갔다. 약 570년경 남리룬첸이 즉위하게 되는데 티베트는 이 때부터 연대 고증이 가능하다. 이 시기부터 티베트는 비로소 주변 경쟁 세력들을 능가하는 국력을 갖추는가 하면 중앙 집권화에 대한 준비에도 들어갔다. 그러나 지나친 확장에 대한 반발로 619년,[2] 남리송첸이 독살되고 속국들이 다시 독립한다. 그러나 그의 아들 손챈감포(재위 630~650년)가 불과 13세의 나이로 그 모든 것을 평정하고 통일 티베트의 서막을 열어 젖혔다. 633년, 손챈감포는 스키타이 계열 유목민을 평정하는 한편 티베트 일대를 통일한 후, 수도를 라싸로 정하고 토번(吐蕃) 왕국을 건설한다.
토번의 정복 활동은 계속되어 왕국의 힘은 8세기 후반 더욱 확장되었다. 토번은 파키스탄 북부와 네팔, 인도 북부와 벵골과 방글라데시는 물론 중국의 간쑤성(甘肅省)과 쓰촨성(四川省) 서부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실크로드를 장악, 거대한 국가로 발돋움하였고 763년 당이 안녹산의 대란으로 혼란에 빠지자 공물을 보내지 않았음을 빌미로 삼아 20만 대군을 몰아 당군과의 수차례에 걸쳐서 정면 대결을 시도, 여기서도 승리를 거두며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했고 자신들이 당의 황제를 마음대로 세울 정도로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791년 서역 전역에서 위구르에게 패하면서 조금씩 영향력이 줄어들더니 800년대 초반부터는 남조 왕국에서까지 견제를 받았다. 결정적으로 아바스 왕조와의 대결에 국력을 소모하고 당, 위구르와의 전쟁에서도 큰 성과를 얻지 못해 결국 당과 화친했다.
결국 토번과 당나라는 820년 협정을 맺어 국경선을 확정함으로써 서로 무력 충돌을 피하기로 했다. 이때의 확정조약은 티베트의 수도 라싸의 조캉사원[3] 앞에 당번회맹비라는 내용으로 새겨져 지금까지 있다. 여담이지만 '이 비문이 세워진 날부터 토번인은 토번인의 땅에서, 당나라인은 당나라인의 땅에서 각자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이다.' 라고 쓰였고 '''1950년 대지진으로 국경 지방의 비석이 파괴되기 전까지 이 비문은 그 역할을 훌륭히 이행하였다.''' 다행히 라싸 지방의 당번회맹비는 아직 무사하고 조사도 가능하다.
토번은 줄곧 당나라와 대립을 반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대적인 관계만을 지속했던 것은 아니었다. 손챈감포 본인부터 당나라의 제도와 기술 수용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아내가 당나라 공주이기도 하고… 문성공주는 티베트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는다. 이 시기 율령제와 한자를 비롯한 유교 경전 등 다른 한자문헌들을 받아들인 기록도 있다. 그러나 티베트는 인도 문자 계열을 잇는 티베트 문자를 따로 만들어 활발히 씀으로써 한자, 한문 사용은 정착하지 않았고, 불교도 한역 불경이 아니라, 티베트어로 바로 번역하여 받아들여 중국 문화권과는 선을 그었다.[4]
토번은 9세기 이후 마지막 왕인 랑다르마가 암살당하면서 실질적으로 붕괴하고 만다. 당시 그는 승려 강제 결혼, 강제 사냥, 사원 및 불경 화형식 등으로 불교를 매우 강력하게 탄압했는데 이에 반발한 한 승려가 신의 계시를 받고 티베트 전통 종교인 본교 사제처럼 검은칠을 한 흰옷을 입고 역시 검은 칠을 한 백마를 타서 당과 토번 간의 회맹비를 보던 랑다르마의 미간을 맞추어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친위대가 쫓아갔으나 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검은 칠이 벗겨서 흰 옷을 입은 사람과 흰 말을 탄 사람으로 변해 친위대가 알아보지 못해 성공적으로 도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랑다르마는 생전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 둘은 첫 번째 부인의 아들이자 적자인 염탄과 둘째 부인의 아들 오성이었다. 그러나 죽기 전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었는데, 이 두 이복형제의 싸움이 내전으로 이어져버렸고, 300년 역사의 토번 제국의 종말을 고하게 된다.
오성의 반란은 성공적이지 못했는지, 결국 그의 무리는 제국의 서쪽 경계선인 응아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지역의 귀족 자제와 결혼해 구게 왕국의 기원이 된다. 염탄은 반대로 티베트의 중앙 지역인 우 지역을 갖게 되지만 제국의 힘은 결국 상실하게 되고 각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결국 이어지는 내전과 반란으로 토번 제국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티베트는 분열되고 말았다.
2. 목표
[image]
기본적으로 토번의 영역, 위용을 되찾고 역사적 진행에 따라 티베트의 종교적 문화유산을 회복하게끔 설계돼 있다.
- 6티어 : 서부 티베트 통합[5] , 동부 티베트 통합[6]
- 5티어 : 티베트 통합[7]
- 4티어 : 대초원 정책[8] , 거루파 학교 지원[9]
- 3티어 : 카슈미르 개종[10] , 중국 국경[11] , 네팔 계몽[12]
- 2티어 : 타림 분지[13] , 중국의 위협 종식[14] , 팔라 왕조 복원[15]
- 1티어 : 토번 복원[16]
- 번외 : 향신료 무역, 실크 로드
3. 전략
티베트 지역은 3부족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Kham"으로 시작하면 중국의 조공국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 변신은 임무의 의존적이지 않으며, 티벳을 형성하면 신정으로 변경할 기회가 확률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좀 더 유연한 대처로써 임무에 대한 보상을 무시한 진행이 가장 좋습니다.
임무는 림부완의 일부 지역을 요구하지만 소국 림부완과 동맹을 하여 봉건주의를 수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티베트는 좋지 않은 노드로써 장악 및 개발을 하더라도 가치를 빼앗기기 쉬운 구조입니다.
지형도 나빠 세금, 생산 같은 가치를 늘리기도 나쁘기 때문에 근처 다른 노드를 장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허약한 국력과 주변의 분리한 외교 정세는 티베트를 성장하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 외교적 우위를 점하여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뵌교를 가진 국가는 티벳이 유일합니다.
언제나 약한 소수 종교는 외교적 고립이 심합니다.
외교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정세에 맞는 대세 종교를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좋은 종교로써 "상좌부 불교(theravada)"를 추천합니다.[17]
추천 이유는 일단 개종이 쉽고 개종으로 인한 피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단 관용도 불교(+2), 시민 특권(+2), 세계 교회주의(+2)]'''
이 전에도 말했듯. 티벳은 임무와 상관없이 신정정부로 변경하는 이벤트가 확률적으로 발생합니다.
신정은 개종 시 종교 통합도를 따라 헌신도가 변경되며, 비율은 종교 통일성을 기준으로 합니다.[18]
따라서 개종 전 정수 3의 관용도를 유지한다면 헌신도의 변동 없이 유지합니다.
또한, 0이상의 종교 관용도는 세금, 생산, 인력, 무역에 대한 패널티를 받지 않고
외교적으로 상좌부 국가들과 같은 위치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역 강국 아바 보다 강한 위치"'''입니다.
이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큰 국가들 아유타야, 란상, 아바 같은 불교 국가의 동맹과 중국의 조공국으로써의 위치를 가진다면 상대적으로 확장에 대한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19]
이 뿐 아니라 신정은 후계 구도를 정할 때, 외국의 군주를 옹립할 수 있습니다.
문화가 다른 군주가 집권하면 해당 문화와 관련된 국가들과 추가적인 이벤트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따라서, 동남아로의 진출 시 동맹을 맺기에 도움을 주고 코어링에 대처하기가 한결 수월하게 합니다.
라이벌 국가가 모욕을 하였다면 추가적인 관계도 혜택을 받으며, 해당 문화권에 추가적인 국가 불만도 혜택을 받습니다.
이러한 무수한 외교적 우위를 점한 이후 신정 정부 8단계 개혁을 통과해 강력한 정부를 수립할 수 있습니다.
4. 맺음
[1] 사실 꽤나 늦은 출발이다. 왜냐하면 티베트 지역에서 발원했던 강족, 저족 등이 중국으로 침투하여 왕조를 세웠던 탓에 남은 지역의 국가발달이 늦춰졌다. 이미 서부 일대에는 샹슝국도 있고 탕구라산맥 동부에는 숨파와 같은 부족 연맹 형태의 국가가 이미 등장했기 때문이다.[2] 630년 즉위설도 있다.[3] 대조사(大照寺)라고도 한다. 문성공주가 세웠다.[4] 그러나 극소수의 중국계 불교 서적이 티베트어로 번역되었는데 그중에는 신라인으로 당에서 끝발을 날린 고승 원측(613~696)의 책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도 있다. 참고로 이 책은 중국, 한국에서는 이미 소실되었고 '''티베트어본만 남아있다!''' 한국과 중국의 불교학자들이 역으로 이 책을 번역하는 상황이다.[5] Unite Western tibet[6] Unite Eastern[7] Unite tibet[8] steppe politics[9] supprt the gelug school[10] convert kashmir[11] the chinese forntier[12] enlighten nepal[13] the tarim basin[14] end the chinese threat[15] restore the pala kingdom[16] restore great tibet[17] 위신 -100을 소모합니다.시민 특권 예술 후원을 통해 위신 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18] 허나 증가하진 않습니다.[19] 명의 조공국 이벤트는 주변 국가들에게 추가적인 관계도를 제공하는 이벤트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