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1기
1. 개요
2003년 전체 1라운드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 르브론 제임스의 2003년부터 2010년까지의 커리어를 정리한 문서이다. 데뷔 초반부터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대활약을 펼치며 팀을 단숨에 우승후보로 올리고 실제로 컨퍼런스 파이널 2번, 파이널에도 1번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우승의 벽은 높았다.[1]
2. 엄청난 실력으로 3년만에 스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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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드래프트 유망주 중 제임스는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했다. 1순위 지명권을 얻기위해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덴버 너겟츠가 꼴찌하기(탱킹)를 시전할 정도. 심지어 덴버는 미리 제임스를 지명하기도 전에 제임스의 이름이 들어간 유니폼을 제작하는 등 열의를 보였으나, 결국 1순위 지명권은 클리블랜드 차지가 되었다.[2]
클리블랜드는 오랜만에 찾아온 오하이오 주 출생의 프렌차이즈 스타인 제임스를 애지중지 아꼈다. 팀 로스터 구성도 제임스의 입맛에 맞게 구성해주었고, 제임스가 언론에 공격을 받는다 싶으면 아낌없이 실드를 쳐주었다. 제임스도 이런 구단의 배려에 좋은 플레이로 보답했고, 지역봉사를 통해 팬들과 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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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경기전 파우더를 손에 바르고 이를 허공에 뿌리는 퍼포먼스로 팬들의 환호를 유도하는 장면은 일종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클리블랜드 팬들 역시 제임스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었다.
또 팀은 르브론 제임스가 프로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 03-04시즌 인성을 중시하는 폴 실라스를 감독으로 선임했고, 제임스를 위주로 팀이 돌아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리키 데이비스[3] 를 트레이드시키기도 했다.
팀의 이런 지원에 르브론도 성적으로 보답했다. 르브론은 03-04 시즌 20.9득점 5.5리바 5.9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신인상을 수상한다. [4]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 진출도 잘 하지 못하던 팀을 이후 일약 우승 후보 팀으로 만들었다. 데뷔 시즌의 성과는 상당해서 직전시즌 17승 65패를 했던 팀이 35승 47패로 많은 승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당시의 팀은 르브론 이외에도 리키 데이비스가 있었다. 그는 직전시즌 20득점을 할정도로 가능성 있는 슈팅가드였다. 하지만 르브론의 성공가능성을 확인한 후 시즌 중간에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시킨다. [5]
사실 르브론의 신인왕 보다도 중요했던것은 고의 탱킹으로 암을 유발하는(...) 경기력에 팬들 조차 등을 돌렸는데, 르브론 한명이 온것으로 관객수가 크게 증가한 점이다.
그런데 04-05 시즌으로 들어가기 직전 팀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던 파워포워드 카를로스 부저의 배신사건으로 인해서 팀 코어를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어수선한 상황이었으나 04-05 시즌은 오히려 직전 시즌보다 더 강한팀으로 거듭난건데 이유는 간단하다. 르브론의 능력이 작년 시즌에 비해서 일취월장했기 때문이다. 다소 어리숙했던 돌파 마무리 능력이 리그 최정상급으로 발전했고, 정확해진 3점슛, 야투율이 무려 5% 가까이 증가해서 평균 27득점을 해내는 등의 뛰어난 활약으로 팀을 5할 승률 42승40패로 만들어버린다.
'''최종 성적'''
27.2득점 7.4리바 7.2어시스트 2.2스틸
만 20세 나이로 역대 최연소 트리플더블 기록[6]
만 20세 나이로 All-nba 세컨팀에 선정 : 리그 최연소 기록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시즌을 보냈다. 이러한 기록을 이제 갓 만 20살이 된 선수가 낸 기록이니 당시 언론들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블락과 득점이 가능한 빅맨 Z맨의 헌신적인 골밑 사수로 좀더 편안한 경기를 할 수 있었고, 트레이드된 포인트가드 제프 맥키니스 역시도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05-06시즌 부터는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된다. 시즌 중간에는 만21세 나이로 올스타 MVP를 수상하는데 리그 최연소 기록이다. 팀은 50승 32패로 성적을 대폭 끌어올렸다.
'''최종 성적'''
31.4득점 7.0리바 6.6어시스트 1.6스틸
기록하면서 리그 차세대의 아이콘이 됐으며 동부컨퍼런스를 지배할 준비를 끝마치게된다.
이런 르브론을 앞세워 클리블랜드는 급기야 06-07 시즌엔 동부 컨퍼런스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동부 컨퍼런스의 상대는 이제 내리막길이긴 했지만 막강한 수비력으로 2000년대를 지배하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였는데, 반면에 클리블랜드는 르브론을 제외하고는 어정쩡한 멤버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 당시 르브론은 경이로운 수준의 활약으로 당대 최강팀의 수비를 완전히 찢어버렸고, 팀을 NBA 파이널로 인도하였다. 이 당시 르브론의 퍼포먼스에 대해 '''디트로이트 침공''' 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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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나... 계속되는 좌절
엄청난 활약을 하며 파이널로 팀을 인도한 르브론 제임스였지만, 파이널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대는 왕조를 이룬 당시 최강의 팀 샌안토니오 스퍼스였고 스퍼스엔 NBA 역대 최고의 파워포워드 팀 던컨, 슈퍼 식스맨 마누 지노빌리, 탑클래스 PG 토니 파커 이른바 빅3가 기다리고 있었고 시리즈 내내 클리블랜드는 '''완벽하게 관광당하고 말았다.''' 클리블랜드가 믿을 수 있는 건 르브론 밖에 없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돌파 외에는 별다른 공격 수단이 없었던 르브론은 샌안토니오의 수비에 막히자 별다른 수도 써보지 못했다. 르브론을 공격에서 도우려고 데려온 래리 휴즈는 뭐…
일단 스퍼스는 역대급 수비수인 브루스 보웬[7] 이 있었고, 보웬이 1선에서 압박하고 르브론이 돌파하는 순간 스피드가 아직 살아있던 던컨이 순식간에 리커버리 하면서 샷을 컨테스트 하면서 르브론을 압박했다. 파이널에서 르브론은 스텟상으로는 22득점 7리바 6.2어시 1스틸 0.5블락으로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게임당 평균 턴오버가 5.8개에 야투율이 35.5%(32/90)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이 파이널은 역사상 가장 일방적으로 끝난 시리즈가 되었으며,[8] 클리블랜드도 르브론도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0:4로 박살이 나버렸다. 그렇지만 던컨은 처참하게 무너진 르브론을 위로하면서 '''"앞으로 이 리그는 너의 것이 될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던컨의 말처럼 르브론은 시즌이 지날수록 기량을 향상시켰지만, 전체적인 팀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 당시는 레이커스가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파우 가솔을 희대의 사기 트레이드로 데려왔고, 이에 자극을 받은 다른 강팀들이 전력보강을 위해 파닥파닥하고 있을때였다. 이에 클리블랜드도 트레이드를 통해 벤 월라스, 월리 저비악, 딜론테 웨스트 등을 받아왔지만 실제로는 큰 도움은 주지 못했다. 르브론은 이 멤버들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보스턴을 7차전까지 물고 늘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보스턴을 넘지는 못했다. 이 시리즈에서 르브론은 보스턴의 수비에 고전하다가 7차전 원정 경기에서 45득점을 해내며 41득점으로 맞불을 놓은 폴 피어스와 엄청난 쇼다운을 벌이기도 했다.
다음 시즌인 08-09시즌, 클리블랜드는 모 윌리엄스를 받아와 전력을 강화했다. 르브론 제임스을 골자로 하여 롤플레이어들이 갖추어지면서 정규시즌에서 클리블랜드는 강력한 모습을 보였고, 전년도 45승을 거뒀던 팀이 무려 21승을 더 보태며 66승 16패로 창단 최초 정규시즌 전체 1위라는 최고의 성적을 냈다. 르브론 역시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는 등 잘 나갔지만, 문제는 플레이오프였다.
클리블랜드는 1,2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애틀란타 호크스를 연달아 스윕하면서 그야말로 거침없는 기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2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떨어뜨리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라온 복병 올랜도 매직을 상대로 경기를 치렀고, 초월적인 활약을 하는 드와이트 하워드를 상대로 르브론은 '''WS/48 0.399, PER 37.4''' 라는 경이적인 활약을 하며 맞섰다. 특히 팀이 종료 1초 남겨두고 2점차로 지고있던 2차전에서 역전 3점 버저비터를 작렬시킨 장면은 전율 그 자체. 그러나 올랜도의 양궁이 미친듯이 터지면서 경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또한 정규시즌 르브론을 잘 도왔던 롤플레이어들은 슈퍼스타의 오버롤 싸움이 되는 플레이오프에서는 제대로 된 조력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르브론의 필사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는 침몰하고 말았다.
시리즈의 분수령은 사실상 1차전이었는데, 클리블랜드 홈에서 치뤄진 경기는 캐벌리어스가 그야말로 전반전을 압도적으로 잘 풀어나갔고 2쿼터에서 모 윌리엄스의 말도안되는 하프코트 버저비터가 들어가며 이 시리즈도 쉽게 풀어가나 했다. 그러나 전열을 정비하고 나온 올랜도가 후반전에 반격을 가하면서 클리블랜드의 수비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경기는 묘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래도 경기 종료 25.6초전 르브론은 팀이 1점차로 뒤처지고 있는 가운데 하워드에게 바스켓 카운트 앤드원을 얻어내고 하워드가 6파울 아웃을 당하며 승기를 잡았다. 자유투까지 성공시키며 2점차로 역전하여 그렇게 클리블랜드의 승리로 끝나나 했는데, 라샤드 루이스의 기가막힌 역전 3점포가 터져버렸다. 이후 클리블랜드는 딜론테 웨스트의 오픈 3점이 아깝게 들어가지 않았고, 경기종료 1초를 남기고 일어난 점프볼에서 모 윌리엄스가 공을 따내 터프샷을 시도했지만 실패하며 르브론이 49득점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1점차로 석패하고 말았다. 이후 2차전에서도 종료 1초전 히도 터코글루의 클러치샷으로 2점차로 뒤처졌다가 상술했던 극적인 버저비터로 기사회생했지만, 홈코트를 뺏긴 상황에서 올랜도 원정 세경기를 전부 패배하며 탈락했다. 이때 컨퍼런스 파이널을 넘었다면 코비 브라이언트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파이널에서 격돌하는 상황이었다. 08-09 플레이오프 직전부터 이 두 사람의 파이널 맞대결 성사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결국 리그 최고의 스타들끼리의 격돌이 아쉽게 무산된 것. 이 시기로부터 7년 후 코비 브라이언트가 은퇴 시즌을 뛰고 있을때 르브론은 관련 인터뷰에서 이때를 언급하며 파이널에서 코비와의 승부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만나지 못한 사실을 굉장히 아쉬워하기도 했다. 더불어 클리블랜드 팬들도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파죽지세여서 창단 첫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굉장히 컸었는데, 그렇게 시즌을 마치게 되어서 기대했던만큼 큰 아쉬움을 가졌고 그 아쉬움은 7년이 지나서야 풀리게 된다.
참고로 08-09시즌의 르브론 제임스는 '''31.67의 PER을 기록'''했는데 이는 '''단일시즌 PER순위'''에서 1,2위 윌트 체임벌린(1962-63시즌 / PER 31.82, 1961-62시즌 / 31.74), 3위 마이클 조던(1987-88시즌 / 31.71)에 이어서 '''4위의 기록'''이다. 그야말로 전설급 활약을 펼쳤다는 것.
09-10시즌 클리블랜드는 샤킬 오닐을 데려오고,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맞추어서 앤트완 재미슨까지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는 등 우승을 위해 사활을 걸었으나, 2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에게 2년전과는 달리 너무 무기력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당시 찰스 바클리는 평소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던 르브론을 두고 쓴소리를 남기기도...[9]
4. 팀의 문제였는가? 르브론의 문제였는가?
르브론이 클리블랜드에서 뛸 당시, 팀의 지원에 대해서 말하자면 분명 팀은 르브론을 지원하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스몰마켓임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상위권의 페이롤을 지불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몰마켓의 클리블랜드는 한계가 있었다. 레이커스같은 빅마켓에 매력적인 도시를 연고지로 하는 팀들이 슈퍼스타를 비교적 수월하게 데려오는 반면에, 매력 없는 스몰마켓 팀들은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나, 정말 가치 있는 롤플레이어들은 데려올 수 없었고, 거품이 낀 선수들이나 과거의 S급인 노장들에게 실력 이상의 돈을 줘야 간신히 데려올 수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클리블랜드가 같은 상황인 07년 파이널 상대 스퍼스만큼 스카우팅 능력이 뛰어났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게 데려온 래리 휴즈, 월리 저비악, 벤 월러스 등의 퇴물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르브론을 도울 능력이 되지 못했다. 르브론이 이들을 이끌며 꾸역꾸역 좋은 팀을 꾸렸지만, 어중간한 A급 세명 보다 S급 선수들의 조합으로 씹어먹는 플레이오프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조력자를 한 명 구해야 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나이가 많거나 어중간한 선수들을 거액을 주고 영입하다 보니, 르브론의 클리블랜드 시절 말년에는 팀의 샐러리 유동성은 엉망이 되고 악성계약으로 가득차 답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슈퍼스타로서 팀의 선수 영입에도 입김을 불어넣고 있던 르브론의 책임이 없지도 않았겠지만, 일단 다 떠나서 스몰마켓의 문제가 가장 컸다.[10]
꼬일대로 꼬인 상황에서 경쟁팀인 셀틱스 등은 여전히 강력하고, 반면에 르브론은 "르브론이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니 팀원들이 제 능력을 발휘 못한다." 는 역버프설까지 듣는 지경이었다. 이때 고평가를 받었던 모월, 웨스트 등 대부분의 선수들은 정작 르브론이 팀을 떠나고 망했지만 여하간 이런 상황에서 르브론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고, 모든 팀들의 눈은 클리블랜드로 향했다. 하지만... 역사적인 실수가 될 수 있는 선택을 해버리게 되었다.
5. 수상
- 2009-2010 NBA 정규시즌 MVP
- 2006, 2008 NBA 올스타전 MVP
- 2004 NBA 신인왕
- 2008 NBA 득점왕
6. 관련 문서
[1] 이 때 한계를 느낀 르브론은 결국 이적을 선택하게 되고, 4년 후 다시 이팀으로 돌아온다.[2] 여담으로 당시 멤피스는 수년 전의 트레이드를 통해 그 해 지명권을 디트로이트에 보낸 상태였고, 이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추첨에서 1순위를 뽑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확률 대로라면 6순위에 불과했던 멤피스의 추첨 순위가 점점 올라가면서 마지막 두 팀에 들게 되었다. 여기서 1순위에 뽑히면 기적적으로 르브론을 지명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멤피스는 2순위에 그쳤고, 제리 웨스트 단장이 머리를 감싸쥔 가운데 지명권을 디트로이트에 넘겨야 했다. 한편 희희낙락하며 그 2순위 지명권을 받아든 디트로이트가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쉬, 드웨인 웨이드'''를 거르고 뽑은 선수가 바로 '''다르코 밀리시치였다...'''[3] 르브론 제임스 이전 클리블랜드의 주축 득점원이었지만, 멘탈 문제가 심각했고 트리플 더블하려고 자기 골대에 자살골을 던지려는 이상한 짓을 저질렀다. 게다가 데이비스는 이후 보스턴 셀틱스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뛰면서 수준급의 스탯에 비해 팀공헌도가 형편없다는게 들통났고 30세도 되기 전에 후보급으로 전락했다가 결국 해외와 하부 리그를 떠돌다 초라하게 은퇴했다. 개인득점력은 좋았지만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팀플레이가 안되는데다 수비도 안 좋아서 빛 좋은 개살구였던 선수.[4] 다만 신인왕을 두고 경쟁했던 카멜로 앤써니가 받았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때의 성적으로 보면 앤써니는 르브론에 전혀 밀리지 않았으나 이후로는 좀 차이가 벌어진 상태.[5] 르브론은 포인트 포워드 역할, 리키 데이비스는 3점슛과 점퍼가 좋은 다재다능한 슈팅가드[6] 아쉽게도 이 기록은 LA레이커스의 론조 볼에게 빼았겼다. 르브론이 최연소 트리플더블을 했던 나이는 '''만 20세 20일'''이었고 론조 볼이 그보다 5일 앞선 '''만 20세 15일'''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하면서 최연소 트리플더블 기록은 론조 볼이 가져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록은 다시 마켈 펄츠가 가져가게 되었다가, 2021년 론조볼의 막내동생 라멜로 볼이 '''만 19세 140일'''로 최연소 트리플더블 기록을 가져가게 되었다.[7] 2001년부터 2008년까지 All-Defensive Team 8년 연속 수상[8] 본래 두 팀 다 스몰마켓이기도 하고 경기 자체도 너무 일방적이라 스포츠 기자들도 NBA 파이널을 안 보고 소프라노스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려고 했다고 한다.[9] 당시 르브론이 왜 부진했는가에 관해 별별 루머들이 돌았을 정도로 다소 부진하긴했었다.[10] 물론 스몰마켓 팀인데도 불구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는 오클라호마 시티나 샌안토니오도 있지만, 클리블랜드 프런트는 명백히 능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리그에서 가장 완벽한 프런트를 가진 샌안토니오도 팀 던컨이라는 파워포워드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선수를 뽑고 나서야 우승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