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국가/미국
1. 뉴욕 5대 패밀리
'''해외 마피아 분석 사이트 블랙핸드 포럼에서 작성한 2010년대 뉴욕 5대 패밀리 예상 조직도.'''[1]
미국 전역의 마피아 패밀리들은 별개의 조직이면서도 라 코사 노스트라로 봤을 때는 하나의 조직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뉴욕은 미국 마피아의 시작 지점이자 본거지로 여겨진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의 총 두목(Capo Di Tutti Capi)이었던 살바토레 마란자노 이후 그런 직책은 없어졌고, 가장 강력한 패밀리의 두목들이 모인 위원회(The Commission)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뉴욕의 다섯 마피아 패밀리는 영화 대부 속 뉴욕 5대 패밀리, 게임 GTA HD 세계관 속 리버티 시티 5대 패밀리 등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 영향을 줬다. 1890년대부터 시작되어 130년이 넘는 미국 마피아 역사 동안 각각의 패밀리 내에 하나로 이어지는 조직 계보가 존재하기 때문에 x대 두목이란 표현이 가능하다.[2]
각 마피아 패밀리의 정규조직원 숫자는 1931년에 러키 루치아노가 정해놓았다고 알려져 있다. 만약 정규조직원의 사망이나 은퇴 등으로 결원이 생기면 준 구성원 중 한 명을 패밀리에 입단시킨다. 마피아 패밀리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숫자보다 지나치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정한 정규조직원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 전 마피아 지부장 마이클 디레오나르도(Michael DiLeonardo)는 자신이 활동했던 2002년을 기준으로 감비노 패밀리의 정규조직원 숫자가 약 200명이었고, 그 숫자는 최대 260명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되어 있었다는 증언을 했다.[3][표기에관해][참고]
2000년대 들어 일선 수사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마피아를 수사하는 뉴욕 FBI 팀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왔다. 2013년부터는 제노비스 패밀리만 담당하던 C5 팀이 보난노 패밀리와 콜롬보 패밀리까지 담당하고, 감비노 패밀리만 담당하던 C16 팀이 루케시 패밀리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마피아 수사가 FBI의 최고 목표였던 1980~90년대에 300~400명에 달하던 전문 인력은 여러 차례 개편을 통해 10분의 1 수준으로 감축되어 30~40명만 남았다. 이는 2000년대에 이르러 테러 방지가 FBI의 최고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1.1. 감비노 패밀리
1963년 이전 명칭은 망가노 패밀리. (2004년 기준 추정치) 정규조직원: 150~200명, 준 구성원: 1500~2000명. 주 구역: 브루클린, 퀸스, 맨해튼, 스태튼 아일랜드, 롱아일랜드[4] 1910년에 살바토레 다퀼라가 패밀리의 모태가 되는 조직을 결성했다. 다퀼라는 1928년에 마세리아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주세페 마세리아에 의해 살해된다. 이후 여러 차례 두목이 바뀌어오다 카스텔람마레 항쟁이 끝나고 라 코사 노스트라가 정식으로 창설되는 1931년에 빈센트 망가노가 패밀리의 두목이 된다. 망가노는 1951년에 러키 루치아노와 결탁한 자신의 부두목 앨버트 아나스타시아에게 살해된다. 1957년에 그 아나스타시아를 제거하고 두목이 된 카를로 감비노가 1976년에 사망할 때까지 19년간 군림하며 본인의 조직을 제노비스 패밀리를 뛰어넘는 가장 강력한 미국 마피아 파벌로 만들었다.[5] 감비노는 애틀랜틱 시티 카지노의 배당금을 올리고 뉴욕 시의 건설산업을 실질적으로 장악하여 노동 공갈 사업을 확장했다. 돈 세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합법적인 사업도 다각화했으며 조직을 마약시장에서 큰손으로 성장시켰다. 동시에 바티칸은행 비리의 관계자로 추정되는 이탈리아인 은행가 미켈레 신도나로 하여금 헤로인 사업 수익을 세탁하게 했다. 1985년에 감비노의 후계자 폴 카스텔라노를 제거하는 쿠데타로 두목이 된 존 고티 시대를 맞아 뉴저지 주 데카발칸테 패밀리를 사실상 산하 조직으로 두게 되지만 동시에 이때를 기점으로 세력이 약화되어 제노비스 패밀리에 주도권을 내줬다.[6] 예로부터 이들은 미국 마피아 중 시칠리아 마피아와 가장 유대가 깊은 패밀리로 알려져 있다.[7][8][9] 2002년에 강력한 카리스마로 교도소에서 패밀리를 통제하던 존 고티가 사망한 이후 그의 형 피터 고티가 두목으로 추대되지만 이내 장기 징역형 선고를 받아 수감되면서 이름뿐인 명목상 두목으로 남아있다. 현재 패밀리의 실권은 막강한 시칠리아 파벌이 쥐고 있다.[10]
2002~05년경 호아킨 가르시아라는 FBI 요원이 잠입하여 많은 감비노 패밀리 조직원들을 기소한 잭 팔콘 작전이 있었다. 호아킨 가르시아는 잠입 요원으로는 1970년대 도니 브래스코에 이어 2번째로 정규조직원 입단을 제안받을 정도로 패밀리의 신임을 얻었다. 이때 그가 잠입해서 얻은 정보로 당시 패밀리의 두목 대행 아널드 스퀴티에리, 부두목 앤서니 메갈레, 지부장 그레고리 데팔마를 포함한 32명의 조직원들을 기소하는데 성공했다.
감비노 패밀리는 현재에도 전 시대를 걸쳐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미국 마피아 패밀리로 남아있다. 막대한 거액이 움직이기 때문에 '''감비노 주식회사(Gambino Corporation)'''로도 불린다.[11][12][13][14][15] 패밀리의 알려진 주요 사업으로 도박, 고리대금, 포르노그래피, 카드 사기, 주식 사기, 유류세 사기, 의류 산업 갈취 등이 있지만 건설 노동 공갈이 최대 수입원이 되고 있다. 또한 합법적인 음료 산업에 침투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정교한 금융 사기를 수행하는 데 적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5대 패밀리 중에서 주도적으로 성 로잘리아 축제에 영향력을 행사한다.[성_로잘리아_축제] 2015년에는 미국 NBC 방송에 패밀리 간부의 아들이 출연해 마피아가 뉴욕 시민들을 이슬람 테러집단 IS로부터 지켜주겠다고 선언했다.[16] 2019년에는 실세 부두목 프랭크 칼리가 젊은 정치 음모론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현 지도부는 수감 중인 10대 두목 피터 고티(Peter Gotti), 두목 대행은 도메니코 세팔루(Domenico Cefalù)[피터_고티][도메니코_세팔루][그_밖의_지도부]
1.2. 루케시 패밀리
1963년 이전 명칭은 갈리아노 패밀리. (2004년 기준 추정치) 정규조직원: 110~140명, 준 구성원: 1100명 이상. 주 구역: 브롱스, 맨해튼, 브루클린, 뉴저지 주[17] 1922년에 가에타노 레이나가 마세리아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의 브루클린 지부로 패밀리의 모태가 되는 조직을 결성했다. 마세리아는 카스텔람마레 항쟁 중인 1930년에 토마소 갈리아노를 새 두목으로 지명한다. 갈리아노는 마세리아가 살해된 후에도 러키 루치아노와 결탁한 뒤에 라 코사 노스트라 창설에 함께한다. 그는 자신이 은퇴하는 1951년까지 조직을 이끌었다. 그 후 갈리아노의 부두목으로 있던 토마스 루케시가 본인이 사망하는 1967년까지 패밀리의 주도권을 쥔다. 전성기 시절엔 루케시의 영향력으로 특히 정치권과 연계가 좋았다. 그 후 앤서니 코랄로가 두목이 되어 1985년 마피아 위원회 재판으로 유죄판결을 받기 전까지 NYPD 소속 경찰관에게 살인을 지시하고 그들로 하여금 내부 정보를 빼돌리며 도시의 운송노조와 건설노조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18] 1980~90년대에는 코랄로의 뒤를이은 두목 빅터 아무소와 부두목 앤서니 카소가 지나친 학살극을 자행했고 둘 다 법의 심판을 받는다.[19] '''영화 좋은 친구들 속 주요 등장인물들이 속해있던 조직이다.''' 2007년 루케시 패밀리는 FBI로부터 뉴저지 주와 코스타리카에서 자행해온 22억 달러 규모의 범죄 사업 혐의로, 2009년엔 4억 달러 규모의 또 다른 범죄 사업 혐의로 적발되었다. 이 혐의들의 정점에는 당시 패밀리의 두목 대행이었던 매튜 마돈나가 있었고 다수의 경찰관과 교도관이 매수된 정황 역시 포착되었다. 패밀리의 알려진 주요 사업으로 불법 도박, 고리대금, 노동 공갈, 건설 공갈, 마약 유통, 다양한 사기 등이 있다. 이들은 범죄 기획을 진전시키기 위해 다른 마피아 패밀리들과 협력하며 가끔 유라시아계 조직범죄 파벌과 결탁한다. 그 증거로 러시아계 범죄조직에 복종하는 많은 매춘부들은 루케시 패밀리가 소유한 뉴저지 주 남부의 술집과 클럽에서 일해왔다. 이 여성들은 매춘부로 일하는 것 외에도 엑스터시와 같은 특정한 불법 마약의 유통을 돕는 데 이용된다. 현 지도부는 1992년부터 종신형 수감 중인 7대 두목 빅터 아무소(Victor Amuso), 두목 대행은 마이클 데산티(Michael DeSantis)[20]
1.3. 제노비스 패밀리
1963년 이전 명칭은 루치아노 패밀리. (2004년 기준 추정치) 정규조직원: 250~300명, 준 구성원: 1000명 이상. 주 구역: 맨해튼, 브롱스, 브루클린, 뉴저지 주[21] 1890년대에 미국 최초의 마피아 두목이라는 안토니오 모렐로와 그 형제들의 조직에 악명 높은 검은 손 갈취자 이그나지오 루포가 합세해 패밀리의 모태가 되는 조직을 결성했다. 이후 주세페 마세리아•러키 루치아노•프랭크 코스텔로•비토 제노비스•필립 롬바르도•빈센트 지간테 등 미국 마피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계보를 이어온다. 이들은 5대 패밀리 중 가장 오래된 조직이며 타임지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하나로 선정한 러키 루치아노의 계보를 잇는 조직으로 오메르타 같은 마피아 패밀리의 규율과 원형을 현재까지 가장 잘 지켜온 까닭에 '''조직범죄계의 아이비리그(Ivy League of Organized Crime)'''라고 불리며 21세기에도 미국의 라 코사 노스트라 패밀리 가운데 최고의 조직으로 남아있다. 특히 마피아 세계에서 간부급으로 분류되는 정규조직원의 숫자가 가장 많은 패밀리이기도 하다.[22][23][24][25][26][27][28] 이들은 뉴욕 주와 뉴저지 주의 대도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마권업과 대부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외에 알려진 주요 사업으로 건설 갈취, 건설 노동 공갈, 철거, 석면 제거, 재생 사업, 트럭 운송, 항만 사업, 연금 횡령, 연금 착취, 보험 사기, 마약 밀매, 합법적인 사업체 침투, 공공 부패 등이 있다. 또한 몇몇 카지노에 지분을 갖고 있으며 뉴욕 시 전역의 노점상을 관리한다. 특히 5대 패밀리 중에서 주도적으로 성 젠나로 축제와 풀턴 어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한다.[성_젠나로_축제][풀턴_어시장] 과거 이들은 버팔로 패밀리와 함께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과 결탁하여 바티칸은행에 9억 5000만 달러 상당의 위조 채권을 매각하려는 계획을 공모한 적 있고 미국 내 범죄조직 중 러시아계나 쿠바계 같은 비전통적 범죄조직과의 접촉이 가장 많으며 그들을 지휘하는 돈과 힘을 갖고 있다.[29] 패밀리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 사기, 주식 사기, 증권 사기, 의료 사기 같은 보다 정교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진화했다. 보통 이 조직은 다른 패밀리에 비해 하급 구성원들이 범죄수익의 더 높은 부분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며 법 집행기관에서 파사드(façade) 구조라고 부르는 방식을 취해 패밀리 지도자들의 신분을 위장하고 그들을 감시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등 외부에 자신들의 두목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조직원들이 뉴욕 주에 거주하며 뉴저지 주에서 불법 활동을 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들을 찍은 FBI 감시 사진. 21세기 들어 패밀리는 도박업의 영역을 해외 사이트를 이용한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시켰고 은드랑게타 같은 본토 조직과 연계해 국제 마약 유통에 개입했다. 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잘 알려진 신종 모기지저당증권 사기의 물결을 이뤄냈으며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재건 공사에 자신들의 건설사를 참여시켰다. 여기에 도시의 일부 지역에서 새롭게 생겨난 대마초 시장을 통제하며 펌프 앤드 덤프(Pump and Dump) 주식 사기도 감행한다. 현 지도부는 11대 두목 리보리오 벨로모(Liborio Bellomo)
1.4. 보난노 패밀리
1963년 이전 명칭은 마란자노 패밀리. 주 구역: 브루클린, 퀸스, 스태튼 아일랜드, 롱아일랜드[30] 1890년대에 시칠리아 카스텔람마레 델 골포를 떠나 뉴욕으로 온 기존의 마피아 조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패밀리의 모태가 되는 조직이 결성됐다.[31] 1912년에는 초창기 패밀리 두목 세바스티아노 디가에타노가 실종되기도 했다. 이후 미국 마피아를 통일하라는 지시를 받고 시칠리아에서 건너온 살바토레 마란자노가 디가에타노의 뒤를 이은 니콜로 스키로에게 조직을 넘겨받은 후 약 50명이 사망한 카스텔람마레 항쟁에서 승리하지만 곧 러키 루치아노에게 살해당한다. 마란자노에게 패밀리를 물려받은 조셉 보난노는 4개 패밀리가 맞물려 있는 뉴욕 시에서 더 이상 사업 확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도시 밖으로 눈을 많이 돌렸는데, 특히 캐나다와 아이티, 애리조나 주에 진출했다. 1960년대에 보난노가 카를로 감비노, 토마스 루케시 두 마피아 두목의 암살을 모의하다 적발되어 조직이 둘로 쪼개졌고, 보난노가 버팔로 패밀리에 의해 납치되어 2년간 실종되기도 했다. 보난노는 다시 돌아와 위원회를 상대로 '바나나 항쟁'을 일으키지만 패배하고 은퇴한다. '''1970년대에는 FBI 요원이 조직에 잠입했던 도니 브래스코 작전이 있었다.'''[도니_브래스코] 1981년에는 도니 브래스코 사건에 대한 징계로 패밀리가 위원회에서 제명되었다.[32] 2004년에는 뉴욕 마피아 최초로 패밀리 두목 조셉 마시노가 변절해 정부 증인이 되는 등 이런저런 고난을 겪었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5대 패밀리 내 가장 작은 집단으로 분류되었지만 조직범죄 세계에서 규모가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또한 감비노 패밀리와 더불어 시칠리아 마피아와 유대가 깊은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고리대금, 불법 도박, 갈취, 마약 밀매 등 실질적인 범죄 활동을 지속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여전히 캐나다의 이탈리아계 마피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33] 현 지도부는 10대 두목 마이클 맨쿠소(Michael Mancuso)[34]
1.5. 콜롬보 패밀리
1963년 이전 명칭은 프로파치 패밀리. (2004년 기준 추정치) 정규조직원: 112명, 준 구성원: 약 500명. 주 구역: 브루클린, 퀸스, 롱아일랜드[35] 1928년에 조셉 프로파치가 처음 조직을 결성했다. 5대 패밀리 중 가장 늦게 생겨났고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조직이었지만 1931년에 라 코사 노스트라가 정식으로 창설될 때 당당히 한 축으로 인정받았다.[36] 창설 이후 1차 콜롬보 항쟁으로 불리는 갈로 삼형제의 하극상을 겪긴 하지만, 프로파치가 군림하는 34년간 보난노 패밀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강력한 조직으로 자리 잡는다.[37] 후에 조셉 콜롬보가 두목이 되어 이탈리아계 미국인 민권 연맹을 결성했다. 1970년대에 콜롬보가 이끌던 연맹은 한 번에 3만~4만 명의 군중을 시위에 동원할 수 있었지만 이는 다른 패밀리들을 불편하게 한 지나친 정치적 활동이었다.[38] 얼마 뒤 콜롬보는 히트맨에게 저격당해 식물인간이 됐다.[2차_콜롬보_항쟁] 이들은 5대 패밀리 중 가장 폭력적인 조직으로 평가받으며, 마피아들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이들의 항쟁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위험천만했다. 일례로 1987년 콜롬보 패밀리는 자신들을 수사한 연방검사 출신 변호사 살인 계획을 주저 없이 실행하면서 그의 판사 아버지를 살해했다.[39] 1990년대의 '''3차 콜롬보 항쟁(1991~93년)은''' 1987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었던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의 지시를 따르는 파벌과 따르지 않는 파벌 간의 갈등이 폭발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2019년 기준 '''가장 최근에 벌어진 뉴욕 마피아의 전면전(Full-scale war)이다.'''[3차_콜롬보_항쟁] 더욱이 1997년에는 마피아 사업과 아무 관계 없는 NYPD 소속 경찰관을 살해해 동료 마피아들까지 격분하게 했다.[40] 현재 패밀리는 항쟁으로 입은 피해를 추스르고 회복 중이다.[41] 패밀리의 알려진 주요 사업으로 갈취, 불법 도박, 노동 공갈, 고리대금, 포르노그래피, 트럭 강탈, 담배 밀매, 마약 밀매, 기업 파산, 증권 사기 등이 있다. 때때로 이들은 다른 마피아 패밀리들과 범죄 활동을 조정하고, 자동차 유류세 탈루나 증권 사기와 관련된 보다 정교한 계획에 참여해왔다. 현재 앤드루 루소(Andrew Russo)가 수괴로 추정됨.[42]
2. 뉴욕 마피아 주요 인물
3. 다른 도시의 마피아
4. 다른 도시의 마피아 주요 인물
5. 미국 마피아의 동업자들
[1] 사진을 구할 수 없거나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일선에서 물러난 원로 조직원들은 행동대원(Soldiers)에 위치해있다.[2] 두목 대행은 제외하고 공식 두목만 카운트해서, 각 패밀리 별로 적게는 4대 많게는 14대 이런 식으로 차이가 난다.[3] 뉴욕 5대 패밀리의 주요 사업과 조직원 수에 관한 출처: "The Changing Face of Organized Crime in New Jersey – A Status Report State of New Jersey Commission of Investigation. May 2004."라는 보고서.[표기에관해] 이탈리아 식으로 'Genovese'를 제노베세, 'Lucchese'를 루케세로 표기해야 하지 않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으나 이들이 이탈리아계 미국인이고 미국의 마피아인 걸 감안하면 영어식인 제노비스, 루케시가 맞다. 만약 축구선수 티에리 앙리(Thierry Henry)가 영국인이었으면 티에리 헨리로 발음하겠지만 프랑스인이기에 티에리 앙리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 비슷한 논리로 키티 제노비스 사건도 보통 제노비스로 표기한다.[참고] 주요 언론이나 수사기관에서 공표한 각 패밀리 지도부의 현황을 서술해놓았는데, 베일에 싸여진 범죄조직의 그 특성상 알려진 수괴와 실제 수괴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 역시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 속 등장하는 검은 조직의 두목처럼 실제로 십수 년간 자신을 대외적으로 철저히 숨겨온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의 사례도 있기 때문.[4] 그 외 구역: 브롱스, 뉴저지 주, 뉴욕 주 웨체스터 카운티, 라스베이거스, 코네티컷 주, 그랜드래피즈 시, 미시간 주, 플로리다 주, 로스앤젤레스.[5] 실화 기반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 주인공 헨리 힐이 감비노 패밀리를 ‘손대어서는 안되는(Untouchable)’ 조직이라고 묘사한다.[6] 두목 존 고티의 개인적 실책과 더불어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던 조직범죄와의 전쟁 탓.[7] 1980년 이탈리아의 조반니 팔코네 판사는 1970년대 후반까지 인제릴로-감비노-스파톨라 네트워크가 매년 6억 달러 상당의 헤로인을 미국으로 밀반입하고 있다고 추정했다.[8] 시칠리아의 코를레오네시 패밀리(Corleonesi Family)가 1992년에 자행한 조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 판사 암살 당시, 존 고티의 지시로 감비노 패밀리가 폭파 전문가를 시칠리아로 파견해 사건에 관여한 사실이 2019년에 드러났다. 실제로 팔코네 판사 부부와 그들을 경호하던 3명의 경찰관은 폭탄에 의해 사망했다. 그간 감비노 패밀리는 코를레오네시 패밀리의 라이벌 파벌들과 가깝다고 알려져 왔기에 의외의 사실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모든 시칠리아와 미국의 마피아 조직은 파벌을 막론한 사촌 조직들이기에 이상할게 전혀 없다는 시각도 있다.[9] 2008년에는 감비노 패밀리와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원 62명을 기소한 FBI의 올드 브리지 작전(Operation Old Bridge)이 있었다. 이 작전으로 기소된 피고인 중에는 감비노 패밀리의 최고 상층부와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의 총 두목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의 부관 지아니 니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단, 미국 마피아를 겨냥한 공소는 그 증거가 약해 대부분 단기형을 선고받는데 그쳤다.[10] 전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디레오나르도는 2015년 인터뷰에서, "시칠리아 계보가 패밀리를 장악한 건 합당한 일이다. 뉴욕 마피아 태동기부터 빈센트 망가노가 살해되는 1951년까지 시칠리아 출신들이 패밀리를 주도해오다 칼라브리아 출신인 앨버트 아나스타시아에게 잠시 주도권을 내줬다. 이후 다시금 시칠리아 출신 카를로 감비노•폴 카스텔라노가 오랜 세월 존재했고 1985년에 나폴리 출신 존 고티가 그 자리를 차지했었지만, 이제 다시 시칠리아인이 돌아온 것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특히 마피아 세계에서는 각 가문의 출신 지역별로 파벌이 형성되며 친척 관계가 맺어진 경우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11] 감비노 패밀리는 존 고티 주니어가 두목 대행이었던 1990년대에 전화카드 사기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 범죄의 원리는 간단하다. 마피아가 뉴욕 시를 비롯한 미국 주요 대도시에 5달러에서 500달러 가격에 판매되는 전화카드를 유통했다. 그 카드는 실제로 아주 짧은 통화시간만을 제공했는데, 소비자가 카드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려고 돌아올 때쯤이면 기존의 영업을 중단하고 새로운 변장을 하고 거리에 교체 카드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이 전화카드는 당국에서 추적할 수 없었고 AT&T나 MCI 월드컴 같은 통신회사들은 미지급 송장에 발이 묶인 반면 마피아는 부유해졌다. 미 사법당국은 전화카드 사업이 1993년 4천만 달러에서 1998년 20억 달러로 급증한 산업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 조직범죄 수사관은 "전화카드 사업이 마약 사업보다 좋다. 수익성은 높은 반면, 처벌은 약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1990년대 말에 미국 시크릿 서비스와 FBI가 공동으로 뉴욕 마피아가 연루된 전화카드 사기를 수사했다. 이런 마피아의 범죄행각은 2002년 분식회계로 파산하며 미국 2위의 부도 기록을 갖고 있는 월드컴 사태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12] 감비노 패밀리는 사이버 범죄의 선구자로, 지부장 살바토레 로카시오(Salvatore Locascio)와 휘하 행동대원 앤드루 캄포스(Andrew Campos), 리처드 마르티노(Richard Martino)가 주축이 되어 1996년~2003년 사이 7년간 총 피해 금액이 7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사이버 범죄망을 운영했다. 이 당시 이들의 범죄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소비자 사기’로 남았다. 일찍이 캄포스와 마르티노를 가리켜 '패밀리의 미래'로 규정했던 존 고티의 예상대로, 이 사건은 다른 마피아 패밀리들을 새로운 범죄 수법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2005년에 이 범죄행각으로 로카시오는 2년형에 470만 달러 몰수, 캄포스는 2년 3개월형에 170만 달러 몰수, 마르티노는 9년형에 910만 달러 몰수를 선고받았다. 시간이 흐른 2019년에 캄포스와 마르티노는 11명의 다른 마피아 조직원 및 관련자들과 함께 기소되었다. 검찰 측 공소장에 의하면 캄포스는 승진하여 패밀리의 지부장이 되었고, 마르티노가 여전히 캄포스 휘하에서 함께 일한다고 한다. 공소사실로 적시된 내용 중에는 전직 프로복서 2명이 징수원으로 가담한 대부업 같은 전통적인 마피아 사업부터, 세계적으로 100억 달러 이상의 개발을 담당하는 HFZ 캐피탈 그룹의 전무이사 존 시몬카라즈가 연루된 화이트칼라 범죄까지 다양한 혐의가 적시되어 있다. (시몬카라즈는 기소와 동시에 회사에서 퇴출되었다.) 그중 눈길을 끄는 점으로, 14년 전 마르티노가 선고받은 910만 달러 몰수 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마르티노는 범죄활동으로 얻은 자산은 대부분 은닉했고 2014년 출소 후에도 건설•식음료 등 각각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여러 회사를 본인이 실질적으로 운영해 오면서도 자신의 수입이 한정되어 있다고 거짓 신고하는 등, 편법과 탈법을 이용해 법 집행을 피해왔다. 이는 정부에 대한 일체의 협조를 기피하는 오메르타 정신을 기반으로 단 1달러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마피아와 끝까지 받아내려는 정부기관의 지루한 싸움으로 보인다.[13] 감비노 패밀리는 부패한 NBA 심판 팀 도나히(Tim Donaghy)와 함께 2005년 6월부터 2006년 7월까지 진행된 여러 프로농구 경기를 조작하는데 가담했다고 알려져 있다. 도나히는 2007년에 유죄판결을 받았고 15개월의 수감생활 중 어느 뉴욕 마피아 수감자에게 수술이 필요할 만큼 공구로 폭행 당했다고 한다. 그는 출소 후 인터뷰를 통해 감비노 패밀리가 "정보를 주지 않으면 플로리다 주에 있는 당신 아내와 아이들을 누군가가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협박했고, 마피아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후 수백만 달러를 벌었지만 자신에게는 정확한 예측 한 건당 2000달러 밖에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더불어 마피아는 항상 프로 스포츠의 일부였고, 도박에서 이점을 얻기 위해 심판, 선수, 지도자, 그 외의 내부 정보를 갖고 있는 어느 누구든 이용한다며 스포츠계에서 조직범죄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건 도박 합법화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04년에는 MLB 뉴욕 메츠 소속 투수 존 프랑코와 보난노 패밀리의 유착설이 불거졌고, 2010년에는 뉴욕 메츠의 홈구장 시티 필드를 마피아 관련 기업에서 건설했다는 이야기가 불거지는 등 21세기에도 여전히 미국 프로 스포츠계와 마피아 사이에 여러 의혹이 있다.[14] 2014년 감비노 패밀리와 보난노 패밀리가 은드랑게타와 공모해 500kg의 코카인을 남미 가이아나에서 이탈리아로 들여오다 FBI와 이탈리아 경찰의 합동 작전으로 적발되었다. (국내 기준 코카인 1kg은 시가 30억 원이다. 500kg은 1조 5000억 원 규모. 물론 외국은 시가가 다르다.) 이 작전으로 은드랑게타 측에서는 우르시노 일족의 두목인 프란체스코 우르시노가 검거되었고, 감비노 패밀리 측에서는 은드랑게타와 미국 라 코사 노스트라를 잇는 범죄 브로커 프랑코 루포이(Franco Lupoi)가 검거되어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루포이는 대외적으로 브루클린에서 제과점을 운영했고, 감비노 패밀리의 정규조직원은 아니었다.[15] 2020년에 감비노 패밀리의 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공소장에 의하면 수사의 일환으로 피의자들의 주거지와 파 펀딩이란 회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현금 250만 달러, 은행 계좌 1000만 달러, 800만 달러 상당의 전용기, 다수의 부동산을 압류했고 AR-15가 포함된 총기 7정을 압수했다고 한다. 아울러 공소장은 감비노 패밀리를 전국구 범죄조직(Nationwide Criminal Organization)으로 묘사하며 지부장, 행동대원, 준 구성원 같은 조직 체계와 범죄수익 분담의 윤곽을 보여주고 있다.[성_로잘리아_축제]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수호성인 성 로잘리아를 기념하기 위해 뉴욕 시 브루클린 벤슨허스트에서 개최되는 축제. 매년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다.[16] 기사 속 인터뷰에 응한 지오바니 감비노(Giovanni Gambino)는 마피아 조직원이 아니지만, 마피아 집안에서 자란 인물이다. 그는 오메르타의 왕자(Prince of Omerta)라는 마피아 소설을 쓴 작가다.[피터_고티] 존 고티의 형 피터 고티는 녹내장 탓에 한쪽 눈이 하얗게 변해 일명 외눈박이(One Eyed Pete)로 불린다. 그는 1998년 존 고티 주니어가 체포되면서 패밀리의 두목 대행이 되었다. 이후 2002년에 존 고티가 사망하자 은퇴한 조카 대신 두목으로 추대된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갈취죄, 살인공모죄 등으로 장기 징역형 선고를 받아 수감되었고 출소 예정일은 2032년이다. 2011년 뉴욕 데일리 뉴스는 마피아 전문가 제리 카피시의 칼럼을 인용해 피터 고티의 두목 직책을 도메니코 세팔루가 정식으로 승계했다고 보도했지만, 4년 후 카피시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기고하는 칼럼을 통해 '''감비노 패밀리의 공식적인 두목은 여전히 피터 고티라고 정정보도를 했다.''' 실제로 라 코사 노스트라 두목은 본인 스스로 사임하거나, 위원회에 의해 강등되거나, 밀고자가 되지 않는 한 사망할 때까지 직책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고령의 나이에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을 확률이 상당히 높은 장기 징역형을 앞두고도 동료를 밀고하지 않은 피터 고티의 태도는 부하 조직원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교도소에서도 패밀리를 통제한 동생과 달리 피터 고티는 수감된 이래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단, 2008년 재판 과정에서 감비노 패밀리가 수감된 두목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범죄수익의 일부를 피터 고티의 친족에게 지급해온 사실이 밝혀지긴 했다. 2019년 피터 고티는 가석방 신청 요건에 도달했고 그의 변호사는 가석방을 신청하며 자신의 의뢰인이 나이와 지병 탓에 폭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에서는 ‘피터 고티와 같은 감비노 패밀리 지도자가 제기하는 위험은 그가 개인적으로 폭력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 결국 가석방 청구는 기각되었고, 그는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여담으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폭력의 역사에 등장하는 아일랜드계 폭력배 칼 포가티는 애꾸눈 캐릭터인데, 피터 고티의 눈과 꽤 흡사하다. 감독이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도메니코_세팔루]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Zip'이라는 은어로 불리는 시칠리아 출신 마피아들은 미국 현지 마피아들보다 더욱 비밀스럽고 폭력적인 걸로 알려져 있다. 감비노 패밀리 내 시칠리아 파벌의 대표적인 인물인 도메니코 세팔루는 고향 시칠리아를 떠나와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준조직원이 되어 마약을 취급하는 일로 범죄 경력을 시작했다. 1982년 헤로인 밀수와 은행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6년을 복역한 그는 1990년 감비노 패밀리에 정규조직원으로 입단했는데, 이는 당시 두목 존 고티가 수감 전 마지막으로 주관한 입단식이었다. 정규조직원이 된 세팔루는 행동대원-지부장-부두목을 거치는 18년간 총 3차례에 걸쳐 수감되었는데, 1992년과 1996년의 증언 거부로 인한 법정 모독죄와 2008년의 공갈•갈취죄로 도합 6년 3개월의 수감 경력이 있다. 특히 2008년에는 건설 공사에서 출토된 흙을 운반하는 트럭 운송업계를 갈취하면서,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인 자신의 영향력과 뉴욕 시의 시멘트 업계를 주름잡는 마피아 조직의 통제력을 이용해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새로이 가게를 차리려는 회사들로부터 불법적인 세금을 상납 받았다고 알려졌다. 소식통에 의하면 2011년 세팔루가 패밀리의 실권을 장악했으며, 전문가들은 그가 감비노 패밀리를 정통(Old-Fashioned) 마피아 조직으로 돌려놓았다고 말한다. 또한 그의 집권은 존 고티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세팔루는 뉴욕 타블로이드 신문 1면에 신임 마피아 수괴로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 책임자의 삶과는 전혀 닮지 않은 저자세를 유지했다. 그는 표면적인 직업으로 제빵 재료 회사의 영업사원 행세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회사로부터 고액의 봉급을 받으며 실적에 따라 수수료까지 수령하는 영업사원은 마피아들이 아주 선호하는 직업이다. 이들은 결코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영업도 일반적인 방법으론 하지 않는다.) 브루클린의 대표적인 이탈리아인 거주 지역 벤슨 허스트에서 노모와 함께 산 세팔루는 2015년부터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 당국에서는 벤슨 허스트를 뉴욕 마피아 내 시칠리아 파벌의 본거지로 파악하고 있다. 2020년 그의 삼촌이자 감비노 패밀리 정규조직원인 리카르도 세팔루가 92세로 사망했다. 리카르도 세팔루는 한평생 마피아로 살며 단 1건의 유죄판결도 받지 않은 인물로 유명하다. 현역으로 활동 중인 도미닉 세팔루라는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 역시 도메니코 세팔루의 사촌이다.[그_밖의_지도부] 2019년 정치 음모론자에 의해 살해된 부두목 프랭크 칼리 사후 그의 직책을 꿰찬 인물로 보고 있는 로렌조 만니노(Lorenzo Mannino) 역시 시칠리아 파벌 소속이다. 그는 1988년에 발생한 프란체스코 올리버리의 살인을 공모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이 살인 공모죄와 마약 밀수죄로 15년의 수감 경력(1989-2004)이 있다. 2010년에는 뉴저지 주에서 열린 감비노 패밀리와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수뇌부 회의에 당시 조직의 수괴였던 존 감비노를 보좌하는 수행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현시점에서 당국은 만니노를 패밀리의 실세로 보고 있다. 미국의 한 기사에서는 수사기관 관계자의 입을 빌려 "여전히 세팔루가 두목이지만 만니노가 진짜 지도자다.(Cefalu is still the boss, but Mannino is the real leader)"라고 전하기도 했다.(출처) 만니노는 특히 역대 미국 대통령의 연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 유일한 마피아다.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제임스 코미를 신임 FBI 국장으로 지명할 당시 '코미가 연방검사 시절 기소했던 감비노 패밀리 조직원 로렌조 (만니노)'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상담역(Consigliere)을 맡고 있는 마이클 파라디소(Michael Paradiso)는 1970년대 젊은 시절, 친구였던 존 고티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일화를 가지고 있다. 그는 1980년대에 발생한 루케시 패밀리 부두목 앤서니 카소 저격사건의 배후이며, 총 25년의 수감 경력이 있는 베테랑 마피아다. 2016년 파라디소는 도박업 및 캘리포니아 주에서 뉴욕 주를 가로지르는 1500만 달러 상당의 대마초와 옥시코돈(마약성 진통제) 사업 혐의로 20명의 다른 감비노•제노비스•보난노 패밀리의 정규조직원 및 준 구성원들과 함께 기소되었다. 그 이후로 후속 보도는 없고, 파라디소 또한 현재 수감된 상태는 아니다. 아마 공소가 취하된 듯.[17] 그 외 구역: 퀸스, 롱아일랜드, 스태튼 아일랜드, 뉴욕 주 웨체스터 카운티, 라스베이거스, 플로리다 주.[18] 교정시설에 수감되어도 대리인을 통해 패밀리를 운영하는 다른 마피아 두목들과 달리, 코랄로는 자신이 기소되자 수뇌부 회의를 열어 빅터 아무소를 패밀리의 두목 대행으로 임명했고 자신의 유죄가 확정되자 그에게 두목 자리를 승계하고 전권을 위임한다.[19] 이들이 지도부로 재직 중일 때의 패밀리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일화로, 앤서니 카소가 "죽여라, 죽여라,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녀석들을.(kill, kill, get what you can, even if you didn't earn it.)"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20] 최근 보도에 의하면 조직의 두목 대행을 맡고 있던 매튜 마돈나(Matthew Madonna)가 2007년과 2009년에 기소되고 2015년부터 재판이 확정되어 수감되면서, 2017년 즈음 두목 빅터 아무소는 마이클 데산티를 새 대리인으로 삼을 것을 명하는 암호화된 서신을 교도소에서 보냈고 만약 마돈나 측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시 실행에 옮길 암살 리스트도 함께 작성하여 보내왔다고 한다. 결국 유혈사태 없이 마돈나는 두목의 뜻에 따라 일선에서 물러났고 데산티가 두목 대행을 맡아 루케시 패밀리의 실권을 쥐고 있다. 데산티는 1980년대 젊은 시절에 두목 아무소를 위해 2건의 암살을 수행해 18년의 수감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한편 2000년~2015년대에 매튜 마돈나, 조셉 디나폴리(Joseph DiNapoli)와 함께 집단지도체제로 루케시 패밀리를 이끌던 구성원 중 유일하게 아니엘로 밀리오레(Aniello Migliore)만 기소되지 않았고 평화롭게 은퇴했다.[21] 그 외 구역: 퀸스, 스태튼 아일랜드, 롱아일랜드, 뉴욕 주 웨체스터 카운티, 뉴욕 주 로클랜드 카운티, 라스베이거스, 코네티컷 주, 매사추세츠 주, 플로리다 주.[22] 미국의 모든 범죄조직을 통틀어 FBI 홈페이지에 조직의 역사가 따로 정리되어 있는 집단은 제노비스 패밀리뿐이다.[23] 마피아 전문가 프레드릭 마르텐스는 뉴욕 타임스와의 1997년 인터뷰에서 "제노비스 패밀리는 오랫동안 위원회의 지배세력이었고 마피아들 간의 주요 분쟁을 해결하는 기관이다."라고 설명했다.[24] 뉴욕 주 조직범죄특별수사팀장 조셉 코피는 2001년 인터뷰에서 "제노비스 패밀리의 경우, 우리는 생채기도 내지 못했습니다."라고 시인했다.[25] 제노비스 패밀리의 강력한 내부 규율을 알 수 있는 일화로 2004년 조직의 두목급 간부인 도미닉 시릴로가 마피아 조직의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라는 지시를 내려 자식을 처형했다는 강한 의혹이 있다.[26] 전 FBI 조직범죄전담팀장 데이브 셰퍼(Dave Shafer)는 "제노비스 패밀리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이다. 그들은 아주 비밀스럽고 조직 내부인조차 서로를 모르며 누가 책임자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범죄 음모에 고도로 단련되어 있고 작은 규모의 작업조(Hit-Team)를 운영한다. 법 집행기관의 내부 침투가 상당히 힘들다."라고 얘기했다. 한 암흑가 소식통에 의하면 제노비스 패밀리는 중요한 회의 때마다 매번 다른 사람을 보낸다고 하는데,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상대를 지치게 하여 자신들이 담판에서 이익을 얻음과 동시에 수사기관의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27] 2016년에 제노비스 패밀리를 주요 타깃으로 한 대대적인 기소가 있었다. 마피아들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 앞에서 결코 사업 논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한 FBI 특수요원이 직접 제노비스 패밀리의 준조직원으로 수년간 활동하며 신뢰를 쌓았다. 결국 그는 수천 시간에 달하는 불법 사업에 관한 대화를 녹음할 만큼 내부 침투에 성공했다. 그 결과 46명의 마피아가 기소되었는데, 진행된 재판에서 주요 피고인으로 있던 필라델피아 패밀리 두목 조셉 멀리노가 2년형을,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유진 오노프리오가 2년 6개월형을,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파스칼레 파레로가 7년형을 선고받았다. 뛰어난 성과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요원이 밝히길 1970년대에 보난노 패밀리에 잠입한 도니 브래스코나 2000년대에 감비노 패밀리에 잠입한 호아킨 가르시아 같은 선배 요원들은 모두 정규조직원 입단 제의를 받았고 그들은 공무원 신분으로 살인에 가담할 순 없어 불가피하게 위장수사를 그만두었지만 자신은 제노비스 패밀리로부터 정식 입단 제의를 받지 못했으며 작전 기간 동안 '''패밀리 두목 리보리오 벨로모와 그 외 주요 지도자들은 만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수사의 한계점을 보임과 동시에 제노비스 패밀리의 정교하고 단단한 조직 구조를 알 수 있다.[28] 전 제노비스 패밀리 준조직원 마이클 디우르소(Michael D'Urso)는 마피아 항쟁으로 사촌이 살해되고 자신은 머리에 총격을 당했다. 결국 패밀리 수뇌부로부터 처형당할 위험에 직면하자 정부 측 정보원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당대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와 후계자 리보리오 벨로모가 포함된 70여 명의 조직원들을 상대로 재판에서 불리한 증언을 한 뒤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2020년에 그의 새 신분과 주소가 마피아 측에 새어나갔고 FBI는 그 사실을 본인에게 통보했다. 어느덧 리보리오 벨로모는 패밀리의 두목이 되었으며 당국에 의하면 몇몇 마피아들이 뉴욕 시에 위치한 'TBar Steak & Lounge' 레스토랑에서 디우르소의 근황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이에 디우르소는 마피아 측에 전하는 공개편지를 언론사에 보내 사건을 공론화시켰다. 편지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자신은 여전히 과거에 몸담았던 마피아 세계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폭력은 원활한 사업에 안 좋으니 지금처럼 계속 현명하게 사업을 전개하며 본인을 살해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또 연방증인 살인사건은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살해하면 언젠가는 관련자들이 법적으로 책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본인은 브라질리언 주짓수 검은띠에 종합격투기 수련만 14년째라고 하며 굳이 보복하려면 칼이나 야구방망이가 아닌 총을 지참하고 오라는 엄포를 놓았다.[성_젠나로_축제] 1926년부터 개최된 맨해튼 리틀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축제. 영화 대부 2편과 3편에 등장하는 바로 그 축제다. 매년 9월이면 200만 명 이상의 뉴요커와 관광객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리틀 이탈리아를 찾는다. 한 전직 마피아는 성 젠나로 축제를 마피아 조직원들의 가을 소풍에 비유하며 축제에 개입해 이권을 추구하는 걸 넘어 마피아끼리 사적인 친교를 다지는 행사로 설명했다. 축제에서 포착된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 2명. 부패 척결에 앞장선 루돌프 줄리아니는 뉴욕시장 재직 시절인 1996년에 축제가 비로소 마피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선언했지만 2014년 시점에도 여전히 제노비스 패밀리가 축제에 개입하고 있다.[풀턴_어시장] 연간 10억 달러 가치인 91000톤의 생선을 취급하는 뉴욕 시의 초대형 어시장이다. 과거 신임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가 본격적으로 어시장에 개입하기 전인 1994년까지 풀턴 어시장을 통제해왔던 인물로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카마인 로마노(Carmine Romano)가 유명하다. 로마노는 어시장에서의 불법 활동으로 약 5년간 복역하고 1999년에 출소했다. 2001년부터는 시위원회에서 어시장을 관리하게 되면서 조직범죄의 영향력을 줄이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피아가 존재한다는 의혹이 있고, 1995년부터 법령이 바뀌어 어시장 내에서 사업하는 사람이 물고기를 하역하는 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게 바뀌면서 마피아가 개입할 여지가 오히려 더 무궁무진해졌기 때문에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29] 1998년 FBI는 러시아 레드 마피아의 전설적인 두목인 셰묜 모길레비치의 한 측근이 제노비스 패밀리 관계자 2명과 함께 미국에서 발생한 유독성 폐기물을 러시아에 버리는 계획을 획책했다고 밝혔다.[30] 그 외 구역: 맨해튼, 브롱스, 뉴욕 주 웨체스터 카운티, 뉴저지 주, 라스베이거스, 캘리포니아 주, 플로리다 주, 캐나다 몬트리올.[31] 즉, 제노비스 패밀리 다음으로 오래된 조직이다. 1915년~1920년 사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이 패밀리의 구성원이 된 인물 중에는 후에 버팔로 패밀리의 두목이 되는 스테파노 마가디노도 있었다.[도니_브래스코] 즉, 보난노 패밀리는 영화 도니 브래스코의 무대가 된 조직이다. 영화가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되긴 했지만 실제와는 상당히 다르게 각색되었다.[32] 보난노 패밀리는 1990년대에 다시 위원회에 진입한다.[33]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보난노 패밀리의 두목 대행이었던 살바토레 몬타냐(Salvatore Montagna)는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이었고, 2011년 캐나다에서 살해당했다. 몬타냐는 캐나다의 리주토 패밀리와 가까웠고, 살해된 것도 리주토 측의 항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게 정설이다. 몬타냐는 2017년 캐나다의 마피아 드라마 배드 블러드에 조연으로 등장한다.[34] 1984년 마이클 맨쿠소는 자신의 아내를 총으로 살해하여 과실치사 혐의로 10년을 복역했다. 그는 패밀리의 두목 대행이었던 2004년에 무용담을 여기저기 누설하고 다닌 입이 가벼운 히트맨의 살인을 지시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혐의로 2006년에 수감되었다. 맨쿠소는 조직 서열상 최선임자였기 때문에 복역 중 두목으로 추대되었다. 2012년 수감 중이었던 맨쿠소는 부하들에게 루케시 패밀리의 아지트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는 당시 루케시 패밀리 두목 대행 매튜 마돈나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람을 두목으로 추대한 보난노 패밀리의 결정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발언했다는 얘기를 맨쿠소가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안 가 루케시 패밀리 사교클럽에 여러 명의 보난노 패밀리 정규조직원과 준조직원들이 권총을 차고 들이닥쳐 그들의 부두목과 상담역을 모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사교클럽 내부에 젊은 루케시 패밀리 소속 행동대원들이 없었기 때문에 연로한 루케시 패밀리 지도부는 어이없이 사태를 지켜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보통 마피아의 사교클럽은 성역으로 여겨지며 한낱 준조직원이 상대 패밀리의 지도부를 모욕한 사실은 마피아의 규칙대로면 충분히 두 조직 간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결국 보난노 패밀리가 선을 넘었던 것으로 합의되었고 얼마 안 가 사건에 앞장선 보난노 패밀리의 준조직원은 처형되었다. 맨쿠소는 2019년 3월 12일에 출소했다. 두목의 출소 다음 날에는 맨쿠소 부재중 두목 대행을 맡아온 조셉 캄마라노 주니어(Joseph Cammarano Jr.)와 조직의 상담역(Consigliere) 존 젠코키호(John Zancocchio)의 재판이 열렸는데 둘은 무죄선고를 받았다. 이는 1987년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가 RICO 재판에서 승소한 이후 32년 만에 마피아 수괴급 피고인이 RICO 재판에서 승소한 사건이다.[35] 그 외 구역: 스태튼 아일랜드, 맨해튼, 브롱스, 뉴저지 주, 라스베이거스, 플로리다 주.[36] 예나 지금이나 콜롬보 패밀리는 다소 작은 규모의 조직원 숫자를 유지했다. 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자신이 현역이었던 1980년대 당시 패밀리의 정규조직원 숫자가 150명 내외였다고 밝혔다.[37] 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인터뷰에서 “1980년대에는 감비노 패밀리가 가장 강한 조직이었나?”라고 묻는 질문에 감비노 패밀리와 제노비스 패밀리의 조직원 숫자가 제일 많은 건 사실이지만, 가장 강하다는 표현은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특히 자신이 기억하는 콜롬보 패밀리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는 ‘우리가 가장 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즉, 조직원 수는 적을지언정 콜롬보 패밀리 역시 뉴욕 내 다른 4개 조직들과 대등한 입장에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5대 패밀리는 서로 간의 우위가 없는 관계다.[38] 당시 시위는 뉴욕 타임스 추산 3만 1200명, 경찰 추산 4만 명, 주최 측 추산 62만 명이었다.[2차_콜롬보_항쟁] 조셉 콜롬보를 저격한 인물은 제롬 존슨이라는 흑인이었다. 그는 사건 직후 콜롬보 경호원들에 의해 즉각 사살되었다. 이 사건은 콜롬보의 정치적 활동을 우려한 위원회가 배후라는 설과 당시 교도소에서 석방된 조셉 갈로의 쿠데타라는 2가지 설이 있다. 콜롬보 패밀리는 조셉 갈로 측에 책임을 물었고 그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살해당했다. 뉴욕 마피아 세계에서 지키는 규칙으로 '암살 대상자를 가족이 있는 집 앞에서 살해하지 않는다'가 있는데, 조셉 갈로는 최고 수준의 처벌을 받은 것이다. 이후 조셉 갈로의 동생 앨버트 갈로가 콜롬보 패밀리와 지속적인 마찰을 빚다 빈센트 지간테의 인도를 받고 제노비스 패밀리로 이적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2차 콜롬보 항쟁으로 부른다. 조셉 갈로는 영화 아이리시맨에 등장하며 영화에서는 쿠데타 설을 차용했다. 앞서 소개한 두 가지 가설을 절충하면, 당시 위원회에서 콜롬보를 제거함과 동시에 골칫거리였던 조셉 갈로도 함께 제거하기 위해 콜롬보 저격의 책임을 조셉 갈로에게 전가했거나, 그가 저격을 하도록 부추겼을(예컨대 콜롬보가 사라지면 조셉 갈로를 패밀리의 두목으로 인정하겠다고 약속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두목의 권위에 대항한 현실 속 갈로 삼형제는 영화 대부 2편에 등장하는 로사토 형제 캐릭터에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1차 콜롬보 항쟁 중 조셉 갈로의 형 래리 갈로는 어느 술집에서 교살될 위기에 처해있다가 우연히 들이닥친 경찰관 덕에 목숨을 건졌다. 실제로 대부 2편에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여담으로 콜롬보가 결성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민권 연맹은 지금도 존재한다.[39] 사건 발생 후 16년이 지난 2003년에 이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패밀리 고위 간부가 유죄판결을 받아 17년을 복역하고 2020년에 출소했다. 이 간부의 이름은 조엘 카카스(Joel Cacace)다. 전설적인 마피아 해결사로 통한 그는 1970년대에 자신을 노린 3명의 공격자를 상대로 총상을 입었지만 상대방의 권총을 빼앗아 그중 한 명을 사살하고 시신을 경찰서에 던져두고 간 전적이 있다. 또 1990년대 3차 콜롬보 항쟁 중에는 2명의 반대파에게 습격당해 총격전을 벌였다. 그 결과 복부와 하반신에 총격을 당해 한쪽 고환을 잃었지만 살아남았다. 2000~03년에는 수감된 두목을 대리하는 패밀리 내 두목 대행을 맡았다. 상술했듯 카카스는 2020년 초에 석방되었고 공교롭게도 그해 10월, 콜롬보 패밀리로부터 아버지를 잃은 전 연방검사 윌리엄 아론왈드가 7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3차_콜롬보_항쟁] 당초 콜롬보 패밀리의 부두목인 빅터 오레나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카마인 페르시코의 두목 대행이었다. 그는 카마인 페르시코의 아들 알폰세 페르시코가 석방되면 패밀리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부두목으로 돌아와야 했다. 정작 내려놓을 때가 오자 오레나가 거부했다. 위원회는 그런 오레나를 콜롬보 패밀리의 두목으로 인정했다. 이에 오레나 파벌과 페르시코 파벌은 서로를 척살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담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전면전이 발생한 것. 그 결과 '''일반인 3명 포함, 12명이 사망하고 18명의 관련자가 실종되었다.''' 항쟁은 페르시코 파벌이 승리하여 카마인 페르시코는 교도소에서 패밀리를 통제하는 종신 두목으로 인정받았다. 항쟁이 끝난 뒤 후유증으로 약 20여 년간 70여 명의 조직원들이 크고 작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는다. 항쟁의 두 주역인 오레나는 1992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알폰세 페르시코는 2001년에 연방 공갈, 대출 상거래 및 돈세탁 혐의로 수감되는데 후에 여러 살인 혐의가 입증되어 2009년에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후에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1980년대 후반 교도소에서 카마인 페르시코를 만났는데 그가 자신에게 “내가 멀리 있는 동안 오레나를 대리인으로 삼아야겠어.”라고 얘기해 “그건 안 좋은 생각 같지만 당신이 보스니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대답했다고 회상했다. 프란지스에 의하면 오레나는 누구나 야심가로 판단한 인물이었고, 카마인 페르시코는 그런 오레나를 통제할 자신이 있다고 단언했지만 결국 전면전이 일어났고 패밀리는 피해를 봤다.[40] 상술한 패밀리 고위 간부 조엘 카카스(Joel Cacace)의 전처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랄프 돌스(Ralph Dols)라는 경찰관을 살해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경찰 당국과 시민들을 화나게 한 건 물론이고 다른 패밀리 간부들조차 콜롬보 측에 책임 있는 관계자를 살해하라는 요구를 하게 만들었다. 사건 발생 후 16년이 지난 2013년에 관련자들이 정식으로 기소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41] 콜롬보 패밀리는 항쟁 기간 중 위원회에서 제명되었으나 항쟁 종결 이후 다시 진입했다.[42] 종신형 복역 중에도 콜롬보 패밀리를 통제해온 4대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Carmine Persico)가 2019년 듀크 대학 병원에서 사망하여, 카마인 페르시코의 사촌이자 최근까지 두목 대행을 맡아온 앤드루 루소가 5대 두목으로 추대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80세가 넘은 루소의 나이가 지나치게 고령이라는 점, 카마인 페르시코의 조카 시어도어 페르시코 주니어(Theodore Persico Jr)가 2020년 8월에 출소 예정이라는 점 때문에 두목 자리는 공석으로 남겨 둔 채 여전히 두목 대행이 이끄는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현시점에서 패밀리 내 최고위 인사로 알려진 인물은 루소가 맞다.[43] 마세리아 이전에 모렐로 형제나 빈센초 테라노바가 있긴 했다.[44]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마세리아의 최후.[45]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라 코사 노스트라 창설 장면. 상석에 앉은 이가 마란자노, 칼을 들고 구성원들의 손을 따며 의식을 치르는 이가 러키 루치아노.[46]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마란자노의 최후.[47] 루치아노의 위원회는 시칠리아 마피아가 '큐폴라'라는 민주적 기구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줬다.[48] 또 다른 별명으로 매드 해터(Mad Hatter)가 있는데 모자를 떨어뜨리는 순간 사람을 죽이는 기벽 때문이라고 한다.[49] 살인 회사는 400~1000명의 사람을 제거했다고 알려져 있다.[50] 처형의 직접적인 명분은 일반인 살해지만, 거국적으로 봤을 때 프랭크 코스텔로와 비토 제노비스 간 권력 다툼에서 아나스타시아가 희생된 게 진실에 가깝다.[51] 1957년 제노비스는 그 러키 루치아노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다 2년 뒤 마약 사범으로 몰려 감옥에 간다. 미국 최대 마피아 조직의 두목이 길거리에서 마약 거래를 했다는 말도 안 되는 혐의로.[52] 제노비스의 대리인들: 1959년~1962년: 앤서니 스트롤로(Anthony Strollo)→1962년~65년: 토마스 에볼리(Thomas Eboli)→1965년~: 필립 롬바르도[53] 영화 아이리시맨에 이 일화가 언급된다.[54] 영화 대부 2편부터 마이클이 서부 네바다 주로 이주하는 설정의 모티브 제공.[55] 그는 미국 내 최초의 이탈리아계 '''인권'''단체를 설립했다.[56] 콜롬보는 자신이 주도하는 시위 도중 저격되었다. 당시 시위에 참석한 빈센트 지간테의 동생 루이스 지간테 신부가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콜롬보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올렸다.[57] 에볼리는 롬바르도 보다 앞서 비토 제노비스의 대리인이었던 인물이지만 세력 다툼에서 밀려났다. 그는 훗날 카를로 감비노와의 불화로 살해되었다.[58] 마피아를 겨냥해 제정된 RICO 법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최초의 피고인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1981년에 10년형을 선고받지만 법정구속되지 않았다. 이후 항소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2개월 뒤 사망했다.[59] 바티칸은행 비리 의혹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롬바르도의 뒤를 이어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 된 빈센트 지간테 문서 참고.[안젤로_브루노_암살_사건] 이 사건은 1978년 애틀랜틱 시티에 도박이 합법화되면서 카지노가 들어서게 되는 것과 관련 있다. 뉴욕 패밀리들은 카지노 사업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지만 애틀랜틱 시티의 대부분은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영역이었다. 당시 필라델피아 두목 안젤로 브루노는 위원회에 표결권을 가진 명망 있는 마피아였고 자신의 구역 내에서 뉴욕 패밀리들이 사업을 전개하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노비스 패밀리는 필라델피아 패밀리 내 쿠데타를 조장해 브루노를 제거했고 사건 관계자들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실제로 브루노의 사망 이후 뉴욕 마피아 세력은 애틀랜틱 시티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여담으로 실화를 각색한 2013년 영화 아메리칸 허슬이 애틀랜틱 시티 내 카지노 합법화와 마피아 이야기를 약간 다루고 있다. 작중 등장하는 마피아 거물 빅터 텔레지오의 모티브는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빈센트 알로다.[60] 작중에선 주로 별명인 토니 프로라고 불린다. 한글 자막에서 지부장을 뜻하는 'Capo'를 두목으로 번역해 뉴저지의 두목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는 제노비스 패밀리 뉴저지 지부의 수장이었다. 영화의 주요 시간적 배경이 롬바르도가 두목으로 재직하던 시기와 많이 겹친다.[61] 라스텔리는 징역복이 많았던 탓에 두목 재직 기간 중 4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항상 수감된 상태에서 조직을 통제했다. 그는 1991년에 가석방되고 그해에 사망했다.[62] 이후 살바토레 파루지아가 위원회에 의해 지명되어 한동안 두목 대행을 맡는다.[63] 미드 소프라노스에서 이에 대한 대화가 나오는데 마피아 팬으로 보이는 토니의 골프 친구들이 그것에 대해 감탄하고 토니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64] 고티와 함께있는 델라크로체. 두목 폴 카스텔라노를 우습게 보던 존 고티가 델라크로체만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두려워했기에 고티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65] 영화 대부 3편에 등장하는 모스카라는 이름의 암살자가 가톨릭 성직자 의상을 입고 대상을 살해한다. 아마 델라크로체에서 영감을 얻은 듯.[66] 어린 시절 베네로 망가노의 어머니가 계란 가게를 운영해서 붙여진 별명.[67] 뒷모습 인물은 식별할 수 없고 제일 오른쪽 인물은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비토 팔미에리다.[68] 망가노가 수감되어 있는 동안 마이클 제네로소(Michael Generoso)가 부두목 대행을 맡았다.[69] 타임지 표지에 오른 마피아 두목으로는 알 카포네, 프랭크 코스텔로에 이어 3번째.[70] 보통 종신 두목을 자처하는 다른 마피아 두목들과 다른 결정이다.[71] 데치코 암살 후 감비노 패밀리의 반격으로 카소가 총격을 당했다. 이에 카소는 감비노 패밀리 준조직원 제임스 하델을 NYPD 소속 강력계 형사를 시켜 납치한 뒤 자신이 직접 고문한 끝에 권총 탄창이 텅 빌 때까지 사격을 가해 살해했다. 훗날 카소는 이에 대해 '''"그는 날 죽이려고 했어... 그게 마피아의 법칙이야.(He tried to kill me... that was the law of the Mafia.)"'''라고 대답했다.[72] 훗날 카소가 인터뷰에서 밝히길, 치오도의 아내는 마피아 사업에 연루되어 수입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 케이스로 취급하면 충분히 살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73] 1993년 정보원이 되기 전의 카소는 체포되자 탈옥을 시도했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에서 매수된 교도관의 안내를 받아 구치소 문을 거의 통과할 뻔했으나 다른 교도관에 의해 발각되어 실패했다. 거기다 자신의 재판장인 유진 니커슨을 살해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74] 밀리오레는 1992년에 샷건으로 총격을 받지만 살아남았다. 이후 아무소와의 오해를 풀고 계속 고위 간부로 활동하다 2010년경에 이르러 평화롭게 은퇴했고 2019년에 85세를 일기로 자연사했다.[75] 1998년 공개 인터뷰 시점만 해도 예전의 전설들은 다 죽었고, 현재의 마피아는 타락했다는 식으로 자신의 배신을 합리화했다. 태도가 바뀐 걸 보아 심경의 변화를 겪은 듯.[76] 정보원 출신이니 만큼 신변 안전을 위해 일반 수용자(general population) 들과 분리 수용되어 있을 것이다.[77] 뉴잉글랜드 지방의 페트리아카 패밀리 소속 총잡이가 아나스타시아를 살해했다는 대체 이론도 존재한다.[78] 당시 페르시코는 검찰의 공소장이 발표되자 잠적했는데, 약 4개월의 짧은 도피 기간이었지만 FBI에 의해 세계 10대 지명수배자로 등재되었다.[79] 일선 히트맨들의 착각으로 아버지가 살해된 것. 2명의 히트맨은 실수의 대가로 처형되었다.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은 16년이 지난 2003년에 밝혀졌다.[80] 139년 형을 선고받은 마피아 두목의 형 집행을 정지한다는 사실을 보도자료로 냈다가 교정당국이 세간의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안 낸 것으로 보인다.[81] 두목 대행까지 포함하면 1991년에 정부 증인이 된 루케시 패밀리 소속 알폰스 디아코(Alphonse D'Arco)가 있다. 디아코는 수감된 두목 빅터 아무소로부터 처형 대상이 되었고,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지만 부하 조직원이 화장실에 총을 숨기는 장면을 목격하고 자신이 처형 대상이라는 걸 깨달은 뒤 그대로 도주해 정부 증인이 되었다.[82] 외국에서 회동을 가질 때는 간부들이 아내를 데리고 와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83] 당시 제노비스 두목 대행 로렌스 덴티코, 감비노 두목 대행 피터 고티, 루케시 두목 대행 루이스 다이도네, 콜롬보 두목 대행 조엘 카카스가 참석한 이 회합에서, 기존의 부계만 이탈리아 혈통이면 정규조직원으로 입단할 수 있었던 것을 100% 이탈리아 혈통만 정규조직원으로 입단할 수 있도록 고쳤고, 각 패밀리 별로 5명의 신입 정규조직원을 충원하기로 했으며,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은 5년의 유예기간이 지나야지만 정규조직원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결의했다.[84] 당시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던 미국 법무부 장관 존 애쉬크로프트의 숙원 사업 중 하나가 마시노의 유죄판결이었다. 그만큼 양질의 수사관이 집중 투입됐을 것이다.[85] 사실 미국에서 마지막 연방 사형 집행은 2003년이다. 연방 사형수를 대상으로는 사실상 집행을 하지 않고 있는 중이었는데 2020년에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약 17년 만에 집행을 재개하여 총 13명을 형장에 세울 예정이라고 밝혔다.[86] 부동산 중에는 보난노 패밀리의 본부격이었던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의 자신이 운영하던 레스토랑도 있다. 마시노는 현재 협조에 대한 공로로 석방되었다. 정부에 제공되지 않은 나머지 5채의 부동산은 마시노의 어머니와 아내의 집 등이다.[87] 다만, 결정적인 증거를 캐치하지는 못했다.[88] 바시아노는 마시노와 달리 오메르타를 깨는 증언을 하고 감형 받으라는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생을 교도소에서 보내는 걸 택했다. 최근 전해지는 사진을 보면 교도소에서도 아주 행복해 보인다. 그의 변호사는 바시아노가 자신이 만나본 사람 중 가장 터프하고 굉장한 사람이라고 전했다.[89] 2004년 마시노의 변절 이후 2007년까지 연달아 4명의 보난노 패밀리 정규조직원들이 사법거래를 위해 오메르타를 깨고 정부에 협조한다.[90] 식당은 1996년에 폐업하지만, 2000년에 원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재오픈하여 지금도 영업 중이다. 현 주인 로버트 이아니엘로(Robert Ianniello)는 매튜 이아니엘로의 동생. 실질적인 영업은 로버트의 아들이 맡고 있다. 조셉 갈로 암살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 아이리시맨에 이 레스토랑이 나온다.[91] 알로는 1970년에 사법방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었다. 그는 3년간 복역한 뒤 출소했고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했다.[92] Gilded Grape나 the Hay Market 같은 전설적인 게이바 역시 이아니엘로가 관리했다.[93] 작중에선 주로 별명인 '매티 더 호스'로 불린다.[94] 이아니엘로가 이 당시엔 반쯤 은퇴 상태였다는 대체 이론이 있다. 2004년 뉴저지 주 조사 위원회(State of New Jersey Commission of Investigation)는 빈센트 지간테가 수감된 이래 일상적으로 패밀리를 운영해온 두목 대행(Acting Boss)으로 그의 형 마리오 지간테(Mario Gigante)와 조직의 상담역(Consigliere) 로렌스 덴티코(Lawrence Dentico)를 지목했다. 실제로 이아니엘로는 빈센트 지간테 쪽 계보가 아닌 프랭크 티에리 쪽 계보로 분류되며, 지간테의 대리인이 되기에는 비교적 연관성이 떨어진다.[95] 85세의 노회한 마피아 수괴가 가상의 마피아 두목 마이클 콜레오네의 말년을 묘사한 대부 3편을 보다 체포되었다는 사실이 묘한 느낌을 준다.[96] 이아니엘로의 자택은 뉴욕 주 올드 웨스트베리(Old Westbury)에 있는데 이 마을은 2011년 블룸버그지에 의하면 미국 전체에서 2번째로 부유한 마을이다. 매튜 이아니엘로의 조카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유력 간부 콘라드 이아니엘로다.[97] 이 외에도 현재 남아있는 존 고티의 사진들을 보면 다미코와 함께 찍힌 사진이 아주 많은 걸 알 수 있다. 거의 항상 옆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실제로 존 고티가 다미코를 좋아한 가장 큰 이유로 다미코는 포커게임을 할 때 고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동료 도박꾼이었고 그 과정에서 빚을 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98] 나머지 구성원으로 피터 고티와 니콜라스 코로조 등이 있다. 존 고티 주니어가 이끌던 1990년대 감비노 패밀리 모습. 제일 하단이 고티 주니어, 바로 위 은발머리가 다미코.[99] 2008년 경 마피아를 취재하는 기자의 전화를 받은 허스코비츠는 다미코에대한 질문이 나오자 잠시 침묵한 뒤 “그는 우리 직원입니다.”라고 얘기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후 허스코비츠가 다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만나서 인터뷰하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한 전직 마피아는 합법적인 사업가인 허스코비츠가 감비노 패밀리와 교류해서 얻는 이점으로 ‘보호’와 ‘마피아 조직원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꼽았다.[100] 다미코가 감비노 패밀리의 새 수괴가 되었음을 알리는 뉴욕 일간지 1면. 이 시기 다미코는 수감된 두목 피터 고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스스로 '거리 책임자(Street Boss)'로 불렸다.[101] 다미코는 맨해튼 인근의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 ‘Fresco by Scotto’의 단골손님으로 알려져 있다.[102] 2005년 다미코를 취재하기 위해 뉴저지 집을 찾아온 기자를 향해 그의 아내는 “당신은 나에게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할 거예요. 그이는 왔다 갔어요. 지난 40년간 쭉 그래왔는걸요."라고 밝혔다.[103] 본래 마피아의 오메르타는 동료를 밀고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가 자신에게 제기한 혐의를 받아들이는 ‘유죄인정(a plea of guilty)'을 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는 개념이다. 유죄인정이란, 범죄자가 자신의 변호인과 함께 수사기관에서 수집한 증거를 살펴본 후 재판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법정에서 유죄인정을 해 형량을 축소시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유죄인정을 한다고 해서 마피아 세계에서 제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 마피아 세계에서 유죄인정은 흔한 일이 되었고 동료를 밀고하지 않는 의리 있는 마피아들도 유죄인정을 통해 자신의 형량을 감소시키는 경제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당장 상단의 빈센트 지간테, 도미닉 시릴로, 매튜 이아니엘로, 존 다미코 같은 전설적인 마피아들도 유죄인정 경력이 있다. 반면 프란지스는 일생에 유죄인정을 한 일이 없다. 그가 조금만 타협했더라면 1965년과 2011년 재판에서 더욱 줄어든 형량을 선고받을 수 있었텐데도 하지 않았다. 본인 입장에서는 정부에게 하는 유죄인정조차 치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의 마피아 전문가 조지 아나스타시아는 프란지스는 마피아 세계의 ‘아이콘’이었고, 그가 사망함으로써 전통적인 오메르타 정신을 가진 세대가 비로소 끝났다고 보았다. 여담으로 존 고티 역시 프란지스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정통파 중 하나였다.[인터뷰_내용] 불세출의 연예인 프랭크 시나트라를 아냐는 질문엔 “프랭크 시나트라한테 소니 프란지스를 아냐고 물어야지.”라고 대답했고, 자신을 교도소에 보낸 판사, 검사들에 대해서는 “지옥에서 그들을 만나겠다.”라고 대답했다. 반면 오메르타, 암흑가의 사업을 운영하는 방법, 프랭크 코스텔로나 조셉 보난노를 묻는 질문엔 “오메르타가 무슨 뜻이지? 질문이 이해가 안 간다.”라며 대답을 피했다. 동료를 밀고하지 않은 이유엔 "감옥이 어떤 곳인지 알기 때문에 동료들을 보낼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자신의 삶에 후회가 없으며 단 한 번도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살 폴리시라는 전직 마피아 관계자는 "프란지스가 이룩한 금융 제국은 너무 광대하고 그의 권력 역시 너무 강력해서 진정한 터프가이들도 그를 두려워했고 여전히 두려워한다."라고 밝혔다.[104] 프란지스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패밀리 내에서 최근까지 1.5인자 급의 위상을 지닌 제노비스 패밀리의 도미닉 시릴로, 감비노 패밀리의 존 다미코, 루케시 패밀리의 아니엘로 밀리오레 같은 인물들과 비교해보면 프란지스의 수감 경력이 훨씬 많긴 하다. 물론 프란지스가 이들보다도 약간 앞 세대의 사람이다.[105] 사망 기사. 프란지스의 관을 성조기로 덮은 이유는 그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106] 2010년대 가치로 환산하면 저 금액의 3배를 하면 된다. 프란지스는 두목에게 “지금껏 본적도 없을 만큼의 큰돈을 벌어다 주겠다고 얘기하면서 휘발유 밀매 사업건을 허가받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수입의 20%만 두목에게 상납하고 나머지는 본인 몫으로 가지는 마피아 조직의 특성상 프란지스는 당대 가장 부유한 마피아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지부장 시절 두목에게 1주일에 200만 달러씩 상납했다고 밝혔다. 이 시기 그는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프란지스와 비슷한 인물로 감비노 패밀리 소속 카마인 롬바르도지가 있다. 그 역시 패밀리 내 최고 고소득자였다.[107] 그에 의하면 고티는 절대 굴복시킬 수 없는 남자라고 한다.[108] 파가노는 3개 뉴욕 마피아 패밀리가 참여한 협회의 주축이 되었고, 이를 통해 레드 마피아의 불법 휘발유 사업을 약 12년간 갈취하며 큰돈을 벌었다. 1999년 연방정부는 파가노가 7700만 달러에 달하는 자동차 유류세를 탈루한 혐의를 입증했다. 파가노는 그로 인해 약 8년간 복역했다. 그는 프란지스와 달리 마피아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고 2015년엔 공갈 혐의로 2년 3개월형을 선고받기도 했다.[109] 사실 프란지스는 유죄판결과 동시에 마피아 생활 청산을 선언했기 때문에 다른 고위급 마피아와 달리 복역 중에 사업을 관장할 수도 없었고, 조직으로부터 지원은커녕 목숨마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가계 수입이 0에 가까운 상황에서 그간 모아놓은 재산만으로 총 7년의 수감 기간 동안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북부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여섯 식구를 부양했다. 여기에 더해 유죄판결에 따른 벌금과 1400만 달러의 손해 배상액, 재판에서 탈세 혐의가 인정됨에 따라 국세청으로부터 청구 받은 5000만 달러가 넘는 세금까지 성실하게 납부했고, 출소 후에는 새로 시작한 사업이 연달아 3차례나 실패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자가용 비행기, 전용 헬리콥터, 뉴욕과 캘리포니아, 플로리다에 위치한 저택 등 마피아 생활을 통해 얻은 재산들을 하나씩 잃었다. 제일 어려웠던 시기에는 다시 범죄 사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오른 적도 많았지만 끝내 잘 이겨내어 합법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110] 그가 공개활동을 나서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1번이 "정말 사람을 죽였나요?"이고 2번이 "당신 자산은 어디에 은닉했나요?"이고 3번이 "지미 호파는 어디에 묻혀있나요?"라고 한다. 1번 질문에는 굳이 살인을 하지 않아도 패밀리로부터 가치 있음을 인정받으면 입단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밖에 살인을 했냐는 직접적인 질문을 받으면(영상) 답변을 회피한다. 2번 질문의 경우, 조직 세계를 그만둔 뒤 대부분의 돈을 소비했고, 바닥부터 새 출발을 했다고 얘기하지만, 할리우드 연예계와 마피아 사이의 브로커로 알려진 오리 스파도는 마이클 프란지스의 말은 거짓말이고 그가 과거 파나마에 5천만 달러를 은닉했다고 주장한다.(영상) 스파도는 연루된 변호사를 알고 있으며 이름은 밝힐 수 없는 대신 이니셜을 밝혔는데 'R.P'라고. 스파도는 소니 프란지스와 콜롬보 패밀리의 40년 동업자로 알려진 인물로, 5년의 수감 경력이 있고 소니 프란지스를 상당히 존경했다. 다만, 그의 아들인 마이클과의 사이는 상당히 나쁜 편. 실제로 마이클은 휘발유 밀매 사업을 파나마와 연계해 주관했으며 사업 과정에서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에게 뇌물을 줬다고 밝힌 바 있지만 스파도의 주장처럼 정말로 5천만 달러를 파나마에 은닉했는지는 알 수 없다.(스파도란 인물에 관해서는 마피아/기타 문서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3번 질문은 프란지스 자신도 지미 호파가 어디 묻혔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물에 잠겨있다는 것만 안다고 대답한다.[논평내용] 조직범죄는 뭐고, 연 매출 500억 달러의 산업은 또 무슨 소리인가. 미국 철강산업보다 높은 수익률? 컨설턴트, 변호사, 노동법 전문가? 대기업과 흡사한 비즈니스 구조라니, 우리의 토니 소프라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 물론 현실 속 마피아와 '토니 소프라노'는 전혀 다른 존재다. 대통령 자문위원회에 제출한 조직범죄 보고서에 등장하는 '마피아 비즈니스'와 토니와 그 수하들이 대표하는 마피아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바로 뉴욕 5대 마피아 중 하나인 콜롬보 패밀리의 지부장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토니 소프라노와 그의 조직 이야기가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마피아의 광범위하고도 복잡한 비즈니스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과 여의사에게 조직 이야기는 물론이고 속내까지 털어놓다 걸린 마피아 두목이 있다면 십중팔구 자동차 트렁크에서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내에.[111] FBI 요원 로버트 그랜트에 의하면, "할리우드에 의해 여러 차례 미화된 시카고 아웃핏의 정규조직원 숫자가 얼마나 적은가와는 상관없이, 그 작은 지도자 집단은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라고 얘기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웃핏은 주요 이권을 쥐고 있는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조직 구성을 가진 걸로 보인다. 애초에 마피아 형태의 범죄조직은 그 특성상 자기네들이 다른 조폭들을 직접 지배하는 숫자는 매우 적고, 패밀리의 정규조직원 숫자 또한 적은 편인데, 고대 로마 시대 대가문을 연상시키는 암묵적 합의나 독점의 방식을 이용해 그 영향력과 세력은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다. 이는 시대가 변하면서 암흑가의 패러다임이 바뀐 영향도 있다. 유독 뉴욕의 마피아 패밀리들은 다른 도시의 라 코사 노스트라 패밀리나 주로 20여 명 안팎의 혈족으로 구성되는 은드랑게타의 은드리나와 비교했을 때 몸집이 큰 편이다.[112] 작전 1년 후 아웃핏 부두목 앤서니 지조(Anthony Zizzo)가 실종되었다. 아내에게 점심 식사를 하러 간다고 얘기한 후 그대로 실종된 지조는 조직 내부를 정화하는 차원에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FBI에서 지조의 행방을 아는 신고자에게 1만 달러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법 집행기관에서는 지조의 뒤를 이어 아웃핏 신디케이트의 부두목이 된 조셉 안드리아키(Joseph Andriacchi)를 유력한 용의자로 꼽고 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할 수 없었다. 여담으로 안드리아키가 400만 달러 대출금에 대한 담보로 잡아놓은 자신 소유 20개 부동산에 대한 압류 소송에 휘말렸다가 이내 대출기관과 합의한 후 사건을 취하했다는 내용이 2014년에 기사화되기도 했다.[113] 1976년부터 38년 동안 도합 1642명의 시카고 공무원이 부패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13년에만도 45명의 공무원이 유죄로 판결됐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 과거 이 대학 정치학과의 교수이자 알 카포네 시대를 직접 목도한 찰스 미리엄은 시카고를 위부터 아래까지 완벽히 부패한 미국 유일의 도시라고 했다.[114] 도박업과 공갈 혐의로 복역했다가 2006년에 석방된 드로렌티스는 표면적으로 합법적인 카펫 세탁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드로렌티스는 공개 인터뷰에서 "우리는 도박을 합니다. 마피아에 관해서는 그것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주로 위스콘신 주에 머무르고 있으며 실질적으로는 앨버트 베나가 조직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115] 안젤로 브루노는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하비 카이텔이 연기한다.[116] 마피아가 아닌 일반 범죄자들이 불법 행위로 수입을 올릴 경우에도 마피아에게 수입의 일부를 바치라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많은 범법자들이 반항했으나 스카르포는 항의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했다.[117] 필립 테스타가 해당. 테스타는 영화 아이리시맨에 1컷 등장한다. 그의 아들 역시 패밀리의 지부장이었는데 아버지가 살해되고 3년 후에 살해되었다.[118] 니키 스카르포와 존 스탠파가 해당. 니키 스카르포는 1989년에 종신형이 확정되었다. 직후 그의 아들이자 대리인이었던 니키 스카르포 주니어가 암살자로부터 목, 팔, 몸통 등에 8차례 총격을 당하지만 살아남는다. 당국은 이 사건을 통해 니키 스카르포가 패밀리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었다고 판단했다. 그 후 니키 스카르포 주니어는 살아남기 위해 뉴욕 루케시 패밀리로 조직을 옮긴다.[119] 랄프 나탈레가 해당. 나탈레는 미국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두목 중 최초로 정부 증인이 된 인물이다. 1995년에 조셉 멀리노가 자신은 부두목을 맡고 나탈레를 두목으로 추대한다. 나탈레가 1998년에 가석방 규정 위반 혐의로 재수감되었을 때 멀리노가 패밀리의 전권을 장악하고 수감된 그에게 일체의 지원을 끊는데, 나탈레는 그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낀 후 오메르타를 깬다. 나탈레는 멀리노의 재판에서 불리한 증언을 한 건 물론이고, 뉴저지 주 캠든 시의 시장이었던 정치인 밀튼 밀란과 마피아의 관계를 폭로해 현직 시장으로 하여금 유죄 판결을 받게 만든다.[120]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필라델피아 마피아는 여전히 뉴저지 주 남부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고, 북부에서도 1개의 도박 사업을 전개한다고 알려져 있다.[121] 감비노 패밀리의 후원을 받아 1991년에 필라델피아 마피아의 두목이 된 존 스탠파와 스탠파를 인정하지 않은 조셉 멀리노 사이의 필라델피아 마피아 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참고삼아 봐보자.[122] 항쟁이 끝나고 멀리노가 부두목이 되어 실질적으로 조직을 장악한 1995년 때 나이가 불과 32세였다. 그는 젊고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러한 큰 규모의 범죄조직을 운영했고, 주위 측근들의 나이도 모두 비슷한 동년배였다. 그 시절 멀리노는 필라델피아 전역의 도박장에서 큰돈을 걸어놓고도 자신이 지면 결코 돈을 내지 않는 안하무인적 행동을 했다. 특히 커다란 자선사업을 벌인 뒤 언론을 초대하는 등 눈에 띄는 혈기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BI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3건의 살인과 2건의 살인 미수 재판은 멀리노 측이 모두 승소했다. 다만 갈취죄로 유죄판결을 받는다.[123] 과거 3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겪은 리감비는 두목 대행 기간 내내 자신에게 가해진 기소를 물리치고 무죄로 풀려났다.(영상) 리감비의 젊은 시절 멘토가 패밀리의 부두목이었던 처키 멀리노였는데, 처키의 아들이자 패밀리의 두목이 된 조셉 멀리노를 위해 리감비가 스스로 상담역(Consigliere)을 자처했다. 리감비는 2019년에 자신의 80번째 생일파티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124] 상술했듯 멀리노는 화려한 옷차림에 롤스로이스 컨버터블을 몰고 다니며, 언론과도 거리낌 없이 인터뷰하는 등 과거 시카고의 알 카포네나 뉴욕의 존 고티처럼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었다. 수감 중에도 패밀리 사업 수익이 리감비를 거쳐 멀리노에게 상납됐다는 증거로, 12년간 수감되었던 인물이 출소 직후 곧바로 플로리다 주의 호화 저택으로 이사를 갔다. 출소 후에는 경험과 경력이 한층 깊어진 탓인지, 과거와 같은 눈에 띄는 행동을 자제하고 있다. 아예 멀리노 본인은 마피아 세계를 떠났다고 주장하지만, 마피아들이 조직원임을 부정하는 일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가 플로리다 주로 이사 간 이유 역시 수사망을 효과적으로 피하기 위함이라는 설이 정설이다. 사법 당국에서는 여전히 그를 필라델피아 마피아의 두목으로 파악하고 있다. 멀리노는 최근 뉴욕의 제노비스•루케시 패밀리와 공동으로 진행한 공갈과 도박업 혐의로 단기 자유형 선고를 받고(영상) 재수감되었고 2020년에 출소했다.[인터뷰_내용_요약] 1989년에 45년 형을 선고받은 후 정부 증인이 되어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간 필 레오네티는 전 패밀리 두목 니키 스카르포의 조카다. 그는 1970년대에 삼촌과 플로리다 주에 갈 때면 항상 마이어 랜스키를 만났다. 랜스키는 자신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으며, 그가 자기 앞에서 말하고 손짓하는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랜스키는 자신에게 전설적인 과거 얘기들을 직접 해줬다. 다만, 자신이 보기에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랜스키가 돈이 많은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한다. 랜스키는 벅시 시겔의 죽음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자책했다. 레오네티는 필라델피아 현역 마피아 중 조셉 리감비에 대해 자신이 필라델피아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호평했지만, 조셉 멀리노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사람 중 최악의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과거 삼촌의 명령으로 살해된 살바토레 테스타에 대해 묻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감정이 격해지는 모습을 보였고, 반면 자신이 제거한 빈센트 팔코네에 대해 묻자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대답하며 웃음을 보였다.[125] 잭 지아칼로네는 지미 호파 실종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디트로이트 마피아의 전 거리 책임자(Street Boss) 겸 지부장 앤서니 지아칼로네의 조카다. 앤서니 지아칼로네는 영화 아이리시맨에 등장한다. 작중 앤서니 지아칼로네의 별명인 토니 잭으로 불릴 때가 많다. 잭 지아칼로네의 아버지는 앤서니 지아칼로네의 동생 비토 지아칼로네인데 2012년에 사망할 때까지 도박 사업을 관장하는 패밀리의 지부장으로 있었다.[126] 프로비던스 파벌 출신. 각각 레이먼드 시니어, 레이먼드 주니어라고 불렸다.[127] 영화 디파티드와 블랙매스로 잘 알려진 윈터 힐 갱단은 1955년에 보스턴에서 결성된 아일랜드 혈통과 이탈리아 혈통으로 구성된 범죄조직이었는데, 활동 지역이 겹치는 페트리아카 패밀리의 보스턴 파벌과는 적대했지만 프로비던스 파벌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3대 두목 제임스 벌저의 카리스마와 부패한 FBI 요원과의 연계로 한때는 라 코사 노스트라를 제치고 보스턴 제일의 범죄조직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정부에 협력한 마지막 두목 케빈 윅스를 끝으로, 1999년 즈음에 조직 계보가 끊긴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FBI로부터 세계 10대 지명수배자가 되어 1995년부터 도피 행각을 이어가다 2011년에 체포된 제임스 벌저는 2018년에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 출신 수용자에게 교도소에서 살해당했다. 벌저에 협력했던 부패한 FBI 요원 존 코널리도 2002년에 10년, 2008년에 40년으로 도합 50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128] 1968년~2001년까지 복역한 그는 후에 마피아 행동대원이라는 신분 탓에 FBI의 표적 수사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그는 정부로부터 그 대가로 260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다. 리모네는 두목으로 있는 내내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대리인을 내세웠고, 한차례 도박업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영상)[129] 리모네의 대리인이기도 했던 디넌지오는 현존하는 마피아 중 가장 뚱뚱한 사람으로 꼽힌다. 현 부두목과 상담역(Consigliere)은 프로비던스 파벌 출신.[130] 1990년에 리지가 수감되자 그의 대리인을 자처한 부두목 존 다마토는 시간이 흐르자 스스로 두목으로 자칭하는 오만함을 보였고 패밀리의 돈을 횡령했다. 결정적으로 그의 동성애 행각이 발각되어 1992년에 처형되었다.[131] 출소한 리지는 2015년에 사망했다.[132] 위암으로 사망한 이 인물은 소프라노스 속 재키 에이프릴 시니어의 모티브로 평가받는다.[133] 대니 그린은 마피아와 동업관계에 있었지만 결국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전면전이 진행됨에 따라 클리블랜드에서 40여 개의 폭탄이 터져 당대 언론은 클리블랜드를 미국의 폭탄 도시(Bomb City U.S.A.)라고 불렀다. 대니 그린과 클리블랜드 마피아의 항쟁을 다룬 영화로 2011년에 제작된 킬 더 아이리쉬맨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2019년에 제작된 아이리시맨과는 다른 영화다.[134] 뉴욕 5대 패밀리의 두목과 부두목들을 겨냥한 1985년 위원회 재판으로 가는 본격적인 수사의 시작이 클리블랜드 마피아 수사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측의 결정적인 증인이 된 마피아 변절자로 로스앤젤레스 패밀리 행동대원 레이 페리토(Ray Ferritto)가 있다. 페리토는 대니 그린을 직접 암살한 인물이다.[135] 이아코바치는 정부의 눈길을 끄는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최대한 배제하고 화이트칼라 범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1995년에 뉴저지 은행에서 약 300만 달러를 사취한 혐의로 30개월간 복역한 경력이 있다. 그의 지도하에 클리블랜드 패밀리는 뉴저지 데카발칸테 패밀리, 시카고 아웃핏과 강한 관계를 맺고 디트로이트 마피아와의 연결을 다시 설정했다. 이아코바치는 2020년에 70세로 사망했다.[136] 템파 시는 야구팀 템파베이 레이스의 그 도시다. 홈구장은 템파의 위성도시인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위치.[137] 산토 트리피칸테 시니어, 산토 트리피칸테 주니어라고 불렸다. 특히 트리피칸테 주니어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마피아가 맡은 부분이 있다면 가장 깊이 관여했던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는 영화 도니 브래스코에도 잠깐 등장한다.[138] 로스칼조는 플로리다 주 전역에서 술집, 라운지, 식당, 나이트클럽, 주류 가게를 운영한다. 1987년에 공갈 혐의로 3개월의 보호관찰을 받고, 1992년에 템파공항 세관을 통과하는 중 자신의 서류 가방에서 38구경 권총이 발견되어 그 일로 2달간 수감되기도 했다. 2007년에 이르러 사실상 은퇴한 상태.[139] FBI에 의하면 전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의 아들 존 고티 주니어가 감비노 지부장 신분으로 2005년부터 템파 시의 조직범죄를 총괄했다고 한다. 그는 2008년에 공갈, 납치, 살인 공모, 마약 밀매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재판에서 승소했다. 고티 주니어 본인은 2001년을 끝으로 마피아를 은퇴했다고 주장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믿지 않는 상황. 여담으로 2017년에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 로에라가 고티 주니어의 무죄를 이끌어낸 변호사 제프리 리치만(Jeffrey Lichtman)을 선임했지만, 종신형을 피할 순 없었다.[140] 영화 갱스터 스쿼드로 유명한 1940~60년대 LA 암흑가를 지배한 미키 코헨(Mickey Cohen)은 러키 루치아노의 측근 중 하나인 거물 유대계 폭력배 벅시 시겔의 죽음 이후 그의 조직을 장악했던 인물이며, 유대계와 이탈리아계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범죄조직을 이끌었다. 그는 마피아 위원회와도 가까운 사이였지만, 엄연히 라 코사 노스트라 LA 패밀리의 두목은 아니었다. LA 패밀리는 그런 독립적인 코헨 조직과의 싸움에서도 무능함을 보였다.[141] 한 마피아는 LA 마피아가 한일이라고는 슈퍼맨을 죽인 것 밖에 없다고 했는데, 1950년대 TV 시리즈에서 슈퍼맨을 연기했던 조지 리브스의 사망 사건을 빗댄 농담이다. 당시에는 자살로 알려졌지만 여러 법의학자들은 타살을 의심했고 암흑가에서는 리브스와 정을 나누던 정부의 남편이 LA 마피아에게 청부 살인을 요청해 암살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142] 크립스와 블러즈 갱단에 마약을 공급했던 LA의 흑인 마약왕으로 ‘프리웨이’ 릭 로스가 있다. 그는 활동 시기는 다르지만 2007년에 제작된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로 유명한 뉴욕 할렘의 흑인 폭력배 두목 프랭크 루카스와 비견된다.[143] 밀라노의 부두목 토마소 감비노(Tommaso Gambino)는 감비노 패밀리 행동대원 로사리오 감비노(Rosario Gambino)의 아들이다. 또한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들인 존 감비노, 프랭크 칼리와 사촌지간이기도 하다.(존 감비노는 로사리오 감비노의 형이다.) 토마소 감비노는 2001년에 아버지 로사리오 감비노의 가석방을 위해 당시 대통령 빌 클린턴의 이복형제인 로저 클린턴 주니어에게 현금 5만 달러와 롤렉스 시계를 뇌물로 준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된 바 있다. 결국 로사리오의 가석방은 무산되고 5년 후인 2006년에 가석방되어 이탈리아로 추방되었고 2019년에 시칠리아-미국 양대륙 간 불법 마피아 공조에 다시 한번 연루되었다.[144] 굳이 캔자스시티 패밀리가 미국에서 3번째로 강력하다기보다는 미국 북동부와 중서부의 도시들을 대표적으로 꼽은 것으로 보인다.[145] 뉴올리언스의 이탈리아인 게토는 미국에서 가장 빈곤하고 큰 규모를 자랑했다.[146]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피아 전성시대인 금주법 기간을 전후해서는 지역 내에서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했을 것이다.[147]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콜로시모의 최후.(2분 48초부터.)[148] 2005년에 진행된 재판에서 생존한 일부 암살자들이 약 18년 만에 유죄판결을 받았다.[149] 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이런 얘기를 하면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앙카나가 대통령 암살에 관여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영상)[150] 당시 언론에서 존 디프론조의 동생이자 마피아 정규조직원인 피터 디프론조를 찾아갔는데, 시카고 아웃핏에 대한 취재를 하고 있다고 하자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신형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타고 떠났다.[151] 영상을 보면, 디프론조는 70년의 범죄 경력을 통틀어 단 한차례의 장기 징역형 선고도 받지 않은 진정한 기소 면역성 두목(Teflon Don)이며, 과거 전설적인 시카고 마피아 두목 앤서니 아카르도와 선대 두목 사무엘 칼리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되었다고 소개한다. 앞서 말했듯, 시카고 아웃핏을 겨냥한 2005년의 대대적인 마피아 기소에서도 검찰의 창끝이 디프론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152] 1990년대~2000년대까지 약 10년의 수감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디프론조의 참모 역할을 해왔다.[스포일러] 영화에서는 버팔리노가 수형자 병원에서 사망하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1989년에 석방되었고 5년 후 민간 병원에서 사망했다. 대리인을 내세웠지만 공식적으로는 사망할 때까지 패밀리의 두목이었다.[153] 조지 맥마누스라는 도박꾼이 용의자로 검거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살해 동기는 로스스틴이 암살자에게 진 도박빚을 갚지 않아서라는 게 정설.[154] 미국 조직범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둘의 첫 만남은 이렇다. 어린 랜스키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량배였던 루치아노가 랜스키의 돈을 갈취하려고 했다. 이에 랜스키는 격렬하게 반항했는데,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덩치도 작았지만 그 배짱을 높이산 루치아노는 랜스키를 존중했고 그 뒤 평생 동안 지속되는 우정을 쌓는다.[155] 한 FBI 요원은 랜스키가 합법적인 길을 걸었으면 제너럴 모터스의 사장이라도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156] 이때 약 1800만 달러가 넘는 호텔을 날리고 700만 달러가 넘는 개인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 랜스키는 말년에 인터뷰를 했을때도 쿠바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고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157] 요양원에서 고생하던 랜스키의 장애인 큰아들 벤자민 랜스키는 아버지가 사망 후 의료비로 남긴 돈도 부족해서 결국 요양도중 의료비가 끊겼고 온갖 고생을 하다가 저렴한 시설로 옮긴 뒤 결국 빈궁 속에서 사망한다. 그나마 벤자민을 돌본 건 후처 테디로 차남 폴이나 막내 산드라는 벤자민을 도와주지 않았다. 나중에 미국의 시사프로그램 60분에 나와서 인터뷰한 후처 테디도 3억 달러 소문에 대해 바보 같은 루머라고 부인했다. 랜스키가 유족한테 남긴 돈이 많았다면 그의 큰아들이 빈궁 속에 죽은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158]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1957년에 러키 루치아노의 정당한 후계자였던 프랭크 코스텔로가 비토 제노비스에 의해 밀려나고, 1962년에는 그 러키 루치아노가 사망하면서 마피아 세계에서 랜스키의 입지가 좁아졌고, 그저 지난 시대의 전설로 현직 마피아들에게 전관예우를 받으며 사망할 때까지 최소한의 생활만 영위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특히 랜스키는 이탈리아 혈통이 아니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159] 산드라에 말에 따르면 랜스키 형제의 자손들은 모두 부자가 됐는데, 그의 형제가 랜스키의 돈을 가로챘을 가능성이 있다. 차남 폴과 막내 산드라의 손자들은 랜스키의 숨겨진 재산 찾기에 몰두했지만 여태까지 직계친족들이 발견한 돈은 없다. 실제로 수사기관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과장하기 위해 갱단이 버는 돈을 부풀려서 발표 하는 경향이 있는데 마피아의 위력을 과장할 수록 그들을 잡는 자신들의 업적이 빛나기 때문이다.[160] 이 조직은 유대계인 시겔이 수장인 조직으로써 당연히 라 코사 노스트라 LA 패밀리와는 별개의 조직이었지만, 시겔의 영향력으로 전미범죄연합체(National Crime Syndicate)에도 참여하고 뉴욕의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패밀리들과 아주 가까웠으며 1961년에 조직이 해산되기 전까지 줄곧 LA 패밀리를 압도해왔다.[161] 러키 루치아노가 1946년 아바나 회합에서 시겔의 삶이 종결되어야(conclusion) 한다고 주장했고, 마이어 랜스키가 동의했다고 한다. 암살은 루케시 패밀리 행동대원 프랭키 카보가 수행했다.[162] 시겔 사후 그의 조직은 같은 유대인 혈통의 '로스앤젤레스의 왕(King of Los Angeles)'이라고 불린 미키 코헨(Mickey Cohen)에게 넘어갔다.[163] 우리나라 기준으로 야인시대를 본 이들이 이성순이 최고냐 김두한이 최고냐라며 논쟁하듯이 더 와이어에서 볼티모어의 한 흑인 마약상이 "뉴욕의 범피라는 인물이 경찰도 두려워할 정도로 흑인 조직폭력배 중 최고였다."라고 언급한다.[164] 2019년에 범피 존슨을 주인공으로 한 ‘갓파더 오브 할렘’이란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작중 실존 마피아 두목 프랭크 코스텔로와 조셉 보난노가 등장하고, 행동대원 시절의 빈센트 지간테가 등장한다. 특히 지간테는 사사건건 주인공 존슨과 마찰을 빚는 악역이다. 실제론 작중 묘사와 달리 둘 사이가 나빴다는 기록은 없고 동업자에 가까웠다.[165] FBI에서도 호파 살인을 실행한 인물로 살바토레 브리구글리오, 가브리엘 브리구글리오, 토마스 안드레타, 스티븐 안드레타를 유력 용의자로 여기고 있다. 이들의 윗선으로는 뉴욕의 앤서니 프로벤자노와 디트로이트의 앤서니 지아칼로네를 의심했다.[노조에_관해] 지미 호파의 전미 트럭운송조합 외에도 국제 항만 노동자 조합, 지붕 수리공 조합 등 셀 수 없이 많은 미국의 노동조합들이 여러 이유로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와 결탁 관계에 있었거나, 결탁 관계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마피아의 수지맞는 핵심 사업이 바로 노조 장악이기 때문.[166] 지미 콘웨이는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다.[167] 바라오는 단순한 지부장이 아니라 약 6년간 루케시 패밀리의 대행 상담역(Consigliere) 직책을 맡은 인물이다. 그의 동생 역시 루케시 패밀리의 조직원이었고 바라오가 부재할 때는 형을 대신해 대행 지부장 역할을 수행했다. 바라오의 영화 속 이름은 폴 시스로.[168]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600만 달러어치의 현금과 보석이 강탈된 사건으로, 이를 2013년 가치로 환산할 경우 약 3배인 1790만 달러에 달한다. 이 사건을 뉴욕 5대 마피아 패밀리가 배후조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건 대부분의 관련자가 검거되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600만 달러 강탈 기록은 2019년까지 깨지지 않았다.[169] 에이스 로스스틴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다.[170] 로젠탈이 배팅하면 미국 지하 도박판의 판도가 바뀔 정도였다고 한다.[171] 앤서니 스필로트로를 모델로 한 캐릭터 니키 산토로는 영화에서 조 페시가 연기한다. 스필로트로는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유독 폭력성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상대방이 주먹으로 때리면 자신은 야구 방망이를 들었고, 상대방이 칼을 휘두르면 자신은 총을 꺼냈으며 상대방이 총을 겨누기라도 하는 날에는 끝까지 쫓아가 살해했다고 한다.[172] 보르 브 자코녜는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173] 아그론 암살의 배후로 감비노 패밀리가 경유세 사기를 일으킨 보복의 일환으로 살해한 것이라는 설과, 1989년에 RICO 법으로 기소되는 보리스 골드버그라는 레드 마피아 두목이 배후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174] 바라굴라는 후에 루케시 패밀리 부두목 앤서니 카소와 호흡이 잘 맞아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도 함께 했다.[175] 2명의 레즈니코프 암살자들은 1989년에 10건의 살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이 사건의 자세한 인과 관계는 시간이 흐르고 1994년에 루케시 패밀리 부두목 앤서니 카소가 정부 측 증인이 된 이후 언론에 사건을 회고하기 시작하면서 알려졌다. 여담으로 크리스토퍼 퍼나리는 1986년에 보난노 패밀리 두목 대행 카마인 갈란테 살인 혐의가 포함된 여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8년 복역 후 2014년에 출소했고, 앤서니 카소는 증언을 했음에도 다른 마피아 출신 증인들과 달리 감형이 인정되지 않아 1994년에 36건의 살인이 포함된 여러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미국의_레드_마피아에_관해] 이탈리아계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와 직접적인 연관이 드러나지 않아서 표를 작성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레드 마피아의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자면 첫째로, 드러난 정보가 워낙 적지만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러시아계 폭력배라는 보리스 카민(Boris Komin)이 있고, 미국 교도소에서 9년을 복역하고 2004년에 러시아로 추방된 뱌체슬라프 이반코프(Vyacheslav Ivankov), 2010년에 연방 의료 보험 사기로 3년형을 선고받은 아르멘 가자리아란(Armen Ghazaryan), 2017년에 기소된 라즈덴 피테르스키(Razhden Pitersky) 등이 있다.[176] 미국 마피아는 이탈리아 본토의 친척들은 물론이고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의 범죄조직과 연계하여 대륙 간 다양한 사업을 주관했다. 미국 마피아의 영국 내 파트너 중 하나가 크레이 형제.[177] 영화에서 묘사하는 크레이 형제와 안젤로 브루노의 담판 장면. 할리우드의 마피아 전문 배우 채즈 팰민테리가 안젤로 브루노 역을 맡았다. (다만 조연이기 때문에 작품 내적으로 큰 비중은 없다.) 여담으로 링크 속 유튜브 영상에서 수익의 6:4를 요구하는 안젤로 브루노에 맞서 5:5를 주장하는 크레이 형제의 모습을 보고 영국의 자존심을 세웠다는 재밌는 댓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