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근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신재근은 1856년 12월 18일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영영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횡성 천도교회 봉훈(奉訓)를 역임하던 1919년 3월 교주 손병희가 조선독립선언을 발표하고 각지에서 3.1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횡성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3월 10일 자신의 집에서 회합을 갖고 장도훈에게 태극기 및 독립선언서 구입 자금으로 3원을 주었다. 장도훈은 이것을 가지고 3월 11, 12일경 경성에서 태극기 한 폭, 종이로 만든 태극기 20매 및 독립선언서 40매를 구입하고 3월 26일 돌아왔다.
장도훈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구입하여 고향에 돌아오자, 신재근은 이것을 향리인 영영포리를 비롯하여 횡성면 일대에 배포하였다. 또 강만형은 원주 소초면 지역에, 안승훈과 김인경(金麟卿) 등은 정곡과 갑천(甲川)·둔내면(屯內面) 등지에 각각 배포하였다.
3월 27일 신재근과 장도훈은 횡성시장에서 윤태환(尹泰煥)에게 태극기를 주고, 이를 휘두르며 장꾼 300여 명에게 태극기 및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본 경찰과 원주에서 파견된 기마병 7명에 의해 시위군중은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신재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