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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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장도훈(張道勳)
본관
안동 장씨
생몰
1870년[1] 4월 30일 ~ 1940년 4월 4일
출생지
평안도 성천도호부 삼기방 운봉리
(현 평안남도 성천군 운봉리)[2]#
사망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종교
천도교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도훈은 1870년 4월 30일 평안도 성천도호부 삼기방 운봉리(현 평안남도 성천군 운봉리)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로 이주했고, 천도교 순회교사로 근무했다.
1919년 3월 횡성군에서 신재근, 강만형, 윤태환(尹泰還), 안경춘(安敬春) 등과 함께 장날인 3월 27일에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후 신재근으로부터 3원을 받고 3월 11~12일경 서울에 상경해 태극기 20매 및 독립선언서 40매 등을 구입했다. 이후 3월 27일 장터에 모인 장꾼들에게 태극기와 선언서를 배포하고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재판에 회부된 그는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6월 6일 경성복심법원과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7월 16일 만기출옥하였으며 그 후 횡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0년 4월 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장도훈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1919년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1871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안동 장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장도익도 이 마을 출신이다.